-떠돌이 개들에 관한 작은 보고서
우리는 타인의 삶 혹은 떠돌이 개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때 우리는 남미 칠레의 수도 산타이고에서 여생을 살고 싶었다. 파타고니아 투어를 끝마치고 난 다음 우리가 내린 결정이었다. 따라서 칠레 시민이 되는 절차를 밟게 됐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칠레가 품고 있는 파타고니아의 대자연 때문이었으며, 산티아고에 둥지를 튼 후 짬만 나면 안데스 자락이며 파타고니아의 대평원이며 우리가 좋아한 또레스 델 빠이네 국립공원은 물론 피츠로이까지 마음껏 다니고 싶었다. 지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둥지를 틀고 살지만 그때만 해도 피렌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때였다.
파타고니아 투어는 내가 태어난 지구별 최고의 선물이었으며 인간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은 변함없어서 당시 촬영해 둔 사진을 짬짬이 열어보며 추억하고 있는 것. 그 속에는 산과 들과 강과 대자연 속에 파묻혀 살던 사람들과 동식물들이 고루 섞여 있었다. 결코 서두르지 법이 없는 사람들과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동식물들. 그 가운데 떠돌이 개까지 합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낯선 떠돌이 개는 남미 대륙에서 떳떳이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정말 개체구나 ㅜ )였다.
비록 사람들로부터 대접은 받지 못했지만 결코 업신여김 조차 당하지 않던 녀석들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들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이곳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 이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어 살았다.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후 스스로 야생의 길로 접어든 들개형 떠돌이 개와, 사람들 가까이에서 구걸을 하며 사는 구걸형 떠돌이 개로 분류할 수 있는 것. 떠돌이 개에 관한 작은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개 같은 삶은 늑대 스스로 선택한 것
브런치에 떠돌이 개와 길 잃은 고양이 매거진을 열어놓은 것은 남미대륙 일주를 통해 만난 특별한 녀석들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이들의 삶을 통해 인간사를 뒤돌아 보는 것. 지구별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은 이들의 삶에 어떤 이유로도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될 일 아닌가.
떠돌이 개들은 늑대의 후손들이었지만 오래전부터 인간들과 함께 살아오며 친근했던 동물이었다. 너무 친근했던 나머지 인간이 굶주릴 때 양식으로 둔갑했고 또 인간이 외로울 때는 놀잇감으로 변신을 시도하며 종족을 이어오고 있는 것. 희한한 이들의 운명은 늑대가 개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늑대가 개로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한 연구결과로 밝혀진 것이다. 이랬다.
옛 소련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1959년 매우 독특한 실험에 착수했다. 야생동물이 가축이 된 것은 온순함을 기준으로 선택을 계속한 결과라는 가설을 입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1985년 세상을 떴지만 뒤를 이은 과학자가 현재도 진행 중인 이 장기 실험은, 늑대로부터 어떻게 개가 탄생했는지를 알아보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벨랴예프는 은여우 암컷 100마리와 수컷 30마리를 1세대로 삼아 사람에 대한 공격성과 두려움이 작은 새끼만을 골라 번식을 이어갔다. 이런 새끼는 태어난 직후 서너 달 동안 사람이 젖을 먹이고 쓰다듬어 주는 등 접촉을 강화했다. 불과 4세대 만에 사람이 다가가면 낑낑대고 꼬리를 흔드는 ‘다정한’ 여우가 출현했다. 그 비율은 30세대 만에 49%에 이르렀고, 반세기가 지난 현재 약 70%를 차지한다.
멀리서 사람을 보면 달려와 만져달라고 조르고 꼬리를 치는 이 길들여진 여우는 성격뿐 아니라 형태도 달라져, 몸에 반점이 생기고 꼬리가 둥글게 말리는가 하면 귀가 접히고 두개골이 짧고 뭉툭해졌다. 늑대가 개로 바뀐 것처럼 북극에 사는 야생동물인 은여우는 가축이 된 것이다. 실제로 실험을 하고 있는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 연구소는 이 여우를 애완동물로 판매하기도 한다.
이 같은 실험의 단서를 제공한 사람은 종의 기원(L'origine delle specie)으로 잘 알려진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었다. (링크된) 자료에 따르면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 진화'의 이론을 찾기 위해 가축을 열심히 연구했다. 사람의 선택으로 야생동물이 어떻게 가축이 됐는지를 안다면 진화의 수수께끼도 풀릴 것이었으므로, 그는 관찰을 통해 가축은 야생 친척에 견줘 더 온순하고(사람을 덜 무서워하고), 주둥이가 짧으며, 이가 작고, 발정 주기가 짧으며, 귀가 누웠고, 피부나 털 색깔이 없다는 사실 등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를 '가축화 신드롬'이라 불렀다. 사람이 야생동물 가운데 마음에 드는 형질을 지닌 개체만 선별해 육종을 거듭하다 보면 이런 형질이 드러난다는 것. 앞서 언급한 실험 결과가 그것으로 드리트리 벨라예프는 1959년부터 수십 년 동안 은여우를 육종해 가축화의 과정을 재현했다. 그 결과 개처럼 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귀가 누워 있으며 사람을 반기는 ‘개 여우’는 불과 20세대 동안 육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른바 개 같은 삶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취침 자세의 떠돌이 개와 우리나라의 버려진 개의 현실
우리는 파타고니아 투어가 끝난 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숙소에서 가까운 공원(Parque Metropolitano de Santiago)으로 산책을 다녔다. 그곳은 산티아고의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자 산티아고 들른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원이었다. 공원 입구에는 공원 정상(Cerro san Cristobal)으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 후니쿨리 후니쿨라(Funiculi Funicula_나폴리 민요에 등장하는 이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관광객들은 주로 이곳을 출입했다. 따라서 구걸에 나선 떠돌이 개들은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을 찾아 얼씬거렸다.
그런데 우리가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저만치서 떠돌이 개의 이상한 모습이 목격된 것이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 머리 한쪽만 보였다. 그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 혹시나 하고 돌아가 보니 천하태평스러운 편한 자세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것. ㅋ
(바둑아 바둑아..) 곁에 다가가 셔터를 누르고 녀석을 불러도 꼼짝도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다. 녀석은 구걸형 떠돌이 개의 신분으로 낯선 도시에 살면서 득도를 했던지 아예 삶을 체념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녀석은 꿈속에서 그들 선조들이 들판을 누비며 무리를 지어 사냥하던 모습을 본 것인지, 가끔씩 눈가에서 작은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쯤 녀석은 스스로 선택한 개 같은 삶을 후회하고 있었을까. 관련 글을 매거진에 담는 동안 브런치 이웃 작가님이 댓글을 남겼다.
와 우리나라에선 산 같은 데서 그들 무리를 만나면 꽤 무서운데요. 더 이상 애완견이 아니고 들 개화되어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방송도 있었고 실제 보아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답니다.ㅎㅎ 산속에서 그들끼리 살아남으려니 그렇게 된다고 들었어요. 그들과는 다른 무리들 같군요ㅎㅎ
글쓴이도 우리나라에 살고 있을 때 떠돌이 개에 대한 방송을 본 적 있다.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한 애완견이 스스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민가 근처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녀석은 버림받은 사실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산속에 토굴을 파고 새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보를 하여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해치려고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인간들을 공격할 능력도 없거니와, 설령 공격을 해봤자 대가는 혹독함 이상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
버려진 개들이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너무 좁은 땅덩어리.. 인간이 좋아 스스로 개 같은 삶을 선택한 대가가 너무 큰 우리나라의 버려진 개들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애완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주인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지 않았던가. 남미의 파타고니아는 물론 산티아고 시민들은 구걸에 나선 떠돌이 개들에 대해 업신 여김도 없었지만 온정을 베풀고 있었다. 공원 한 모퉁이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출현에 대비해 먹이를 나누고 있었던 것. 떠돌이 개들의 삶은 우리의 거울일까. 누구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자.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면서 또 한편으로는 개 같은 삶을 호소하기도 한다는 거..
늑대는 왜 개가 되기로 했나 / 개가 된 늑대의 비밀, 떠돌이 개에서 찾았다
Amano i cani Vagabondi_CILE
Parque Metropolitano de Santiago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