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9. 2020

여행자와 방랑자의 길

#49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당신은 방랑자인가 여행자인가..?!!



그럴 리가 없지만 이런 풍경을 코 앞에 두고 "다음에 가 보면 돼지..!"라고 결정을 했다면 그다음은 언제쯤일까.. 시간은 우리를 절대로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일은 오늘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네 삶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연습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실패와 실수를 딛고 일어서야 보장되는 다음이자 미래인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


지난 여정 다음은 다음일 뿐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마침내 리푸지오 쀠쉬아두(Rifugio F. Cavazza al Pisciadù Hütte) 정상에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눈 앞에는 빠소 가르데나(Passo Gardena) 고갯마루가 저만치 보이는 곳. 쉼터가 있는 알타 바디아(Alta Badia) 고갯길까지는 발품을 더 팔아야 한다. 피곤이 몰려들었지만 셔터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곳은 다음에 다시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거나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 여행자의 눈에 비친 돌로미티 산군은 필설로 형용할 수 조차 없었다. 



여행자와 방랑자의 길




하니가 저만치 앞서간 뒤로 돌로미티 풀꽃들이 배웅을 하고 나섰다.



발아래로 돌로미티 다섯 잎 꽃(La Cinquefoglia delle Dolomiti_Potentilla nitida)이라 불리는 야생화가 어느덧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돌로미티의 야생화 대부분은 그냥 돌로미티 풀꽃으로 뭉뚱거려 부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예쁜 아이들의 이름은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가는 가운데 눈 앞에 펼쳐진 비경이 눈길을 끈다. 만약 우리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알타 바디아 주변에 널려있는 여행지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돌로미티 산군을 돌아보기 힘들다고 판단했으므로 두 번 다시 찾기 힘들 것이라 대못을 박은 것이다. 그땐 보다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서기 2020년 12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돌로미티 여행기를 쓰는 오늘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의 음색은 불만이 섞여있었다.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콕이 너무 지겹거나 외롭다는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지난 성탄절은 물론 연말연시도 나 홀로 집콕을 해야 할 것이므로 얼마나 답답할까.. 잠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도 그때뿐 하루빨리 이탈리아로 건너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어쩌라고..ㅜ) 운명은 하늘의 몫이자 코로나가 하루빨리 사그라들어야 다시 출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자(현지시각) 성적표는 처음으로 감염자 수가 1만 명 미만(8,585명)으로 떨어졌다. 사망자 수도 445명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코로나 성적표와 비교 조차 안 되지만, 이탈리아 보건당국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만큼은 지켜낸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현재의 추세라면 곧 정상을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그렇게 돼야겠지..



그렇게 된다면.. 2021년 새해에는 하니의 그림 수업이 재개될 것이며, 다시 돌로미티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하니가 하산길에 만난 돌로미티 야생화에 빠져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방금 서 있었던 그 자리.. 돌로미티 야생화들이 그녀를 배웅하고 나선 것이다. 



발아래로 우리가 오르내렸던 고갯길이 용틀임 친다.



우리가 머물렀던 쉼터가 (위 자료사진) 오른쪽(뾰족한 숲)에 보인다. 이곳은 온통 스키장이 아니면 트래킹 길 그리고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의 천국이다. 그녀는 통화 중에 "10년만 더 젊었으면 스키를 배웠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곳의 풍광은 뛰어났고 눈이 시린 곳이다. 



우리는 먼 나라 여행에 나섰을 때 가끔씩 우리의 정체성이 '여행자인가 방랑자인가'를 되묻곤 했다. 지금처럼 차콕을 하거나 야영을 하면 방랑자나 다름없는 것. 여행자가 길 위에서 행복하려면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물음에 '여행자는 스스로 걷지만, 방랑자는 길이 대신 걸어준다'라고 한다. 정처 없는 사람들.. 



그러나 길 위에 있는 한 방랑자인지 여행자인지 분간할 수 없거니와 우리네 삶의 모습과 흡사하다. 우리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알 수 없는 곳을 본향(本鄕)이라 부르고, 장차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한국에서 늘어놓는 볼멘소리가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죽을 지경인 것이다. 외로움이 켜켜이 묻어있는 것이랄까.. 



하산길에 나의 발걸음을 붙든 것은 커다란 바위틈에서 홀로 자라며 꽃을 피운 녀석이다. 마치 창문을 열고 나를 배웅하는 듯한 앙증맞은 모습이다. 



-안녕히 가세요. 삼촌 그리고 숙모님..! ^^

-그래, 고맙구나. 아가야.. 잘 있거라! ^^



우리는 언제 다시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참 아름다운 곳.. 했던 말 또 하고 되풀이하고 재차 삼차 되풀이해도 부족하지 않은 곳. 기록, 돌로미티 19박 20일 첫 편을 돌아보며 마무리해야겠다. 



제정신이 아니었어. 미쳐 돌아다녔던 거야..!!


하늘의 도우심과 보살핌이 힘께 했던 시간이었다. 이틀 전(29일, 현지시각) 오후 11시경, 자정을 코 앞에 두고 우리는 지구별 최고의 명소 이탈리아 돌로미티 국립공원을 출발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 도착했다. 19박 20일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시각 여독이 전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브런치에 글을 끼적거리고 있다. 



돌이켜 보니 마치 꿈을 꾼 듯한 시간이 우리와 함께 했다. 하니는 그 과정을 "제정신이 아니었어. 미쳐 돌아다녔던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즉시 하니의 표현에 동의를 했다. 미치지 않으면 갈 수 없거나 미쳐야 갈 수 있는 곳.. 아니면 그곳에 가면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랄까.. 세상에 많은 형용사가 존재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전혀 말이 필요치 않는 곳. 여행을 끝마칠 때까지 하니와 내게 일 수 없는 현상이 늘 함께 했다. 피곤에 곯아떨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날이 밝으면 새 힘을 얻었으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다. 



지난 8월 8일 오전 10시경, 우리는 바를레타의 집에서 출발해 한밤중에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8월 28일 자정 무렵 다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처음 겪는 현상이자 초자연적인 힘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힘의 원천이 돌로미티가 지닌 대자연의 에너지라니.. 



우리는 그동안 많은 기록을 남겼다. 19박 20일 동안의 기록은 외장하드를 가득 채울 정도로 넘쳐났으며, 그 기록들은 모두 대자연으로부터 받은 감동감화의 산물이었다.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상의 기록들 조차 자연을 쏙빼 닮아 있었다. 하늘을 이불 삼아 지붕 삼아 지냈으며, 알삐(ALPI)가 내준 수정 같은 물을 매일 마시는 동안 점점 더 대자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산중의 8월은 봄가을을 닮았으며, 가슴 깊이 호흡한 신선한 공기는 죽어가던 세포를 화들짝 놀라게 하며 생동감이 넘치게 했다. 비가 오시는 날 그리고 비단안개에 젖었던 텐트는 야생화의 처지를 알게 해 준 명약이었다. 또 트래킹을 나서면 풀꽃들이 줄지어 따라나섰다. 그런가 하면 뭇새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삐삐 거리며 머리 위를 맴돌았지..



눈만 뜨면 새롭게 다가온 세상은 천국이었으며, 하늘은 우리를 위해 늘 놀라운 일을 계획하고 깜짝쇼를 펼치듯 보여주었다. 브런치에 처음으로 기록된 돌로미티의 단면도 그러했다. 나흘 전만 해도 우리는 보따리를 챙기고 달콤했던 여행을 접으려 했다. 그런데 돌로미티의 요정은 우리를 다시 불러 세웠다. 돌로미티의 마지막 밤이라 생각한 산중의 어느 오두막집 너머로 생전 듣보잡의 명산과 절경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몇 장면만 우선 간추려 우리를 위해 염려해주신 이웃들께 선물로 드린다. 그리고 짬이 생기는대로 챙겨 온 돌로미티의 명품을 브런치에 쏟아부을 작정이다. 글을 끼적거리는 지금.. 하니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있다. 꿈같았지만 힘들었던 여정 속으로 다시 빠져들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사랑한 풍경 속으로 머리를 뉘고 싶은 것. 



우리가 돌로미티에 미쳐 사는 동안 잠시 열어본 대한민국의 사정은 코로나 비루스 때문에 우울했다. 그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함께 나의 기록이 삶의 활력소가 되길 바란다. 또 사람들을 광화문 앞으로 꼬드긴 사악한 무리들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좀비들이 하루빨리 사라지기 바란다. 아울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의 브런치를 구독으로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또 여러모로 나의 브런치를 관리해 주신 브런치팀과 이웃에 감사드린다. 더불어 자동차로 다녀온 19박 20일 동안의 여행 기록을 시작한다. 아마도.. 이 기록들은 천하절경 돌로미티에 미치고 싶은 분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돌로미티의 여행에 필요했던 경비와 내역 등은 대략 이랬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19박 20일간의 주행거리: 대략 4,000 킬로미터(바를레타에서부터 돌로미티까지 왕복거리 포함)
-500유로에 해당하는 디젤유 사용.(리터당 가격: 1,3유로에서부터 1,5유로까지 조금씩 차이가 났다)
-우리가 머물렀던 돌로미티의 8월 중 낮과 밤 기온 분포: 대략 섭씨 6도씨부터 18도씨까지
-가장 높았던 트래킹 코스: 대략 3,000미터
-1일 트래킹에 걸린 최고 시간: 대략 8시간
-숙식은 야영(Campeggio)을 기본으로 채택했다. 
-여행 경비는 대략 1,000유로(130만 원 상당) 사용: 1일 68,421원 상당


우리가 돌로미티 여행을 떠났을 때 든 경비 등을 참조하면, 돌로미티 여행의 준비물과 마음가짐이 어떤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경비가 줄어든 이유 중에는 자동차가 한몫 거들었으며 야영으로 숙식비가 많이 절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음식 중에는 현지에서 구입한 야채와 과일 우유 살시차 등이었다. 



금수저가 아니시라면 방랑자를 닮은 보고서(?)를 잘 참조하시기 바란다. 현지에서 자동차를 빌리고 야영 장비만 갖추는 한편, 현지의 지리와 정보를 사전에 이미지 트레이닝해 놓는 게 바람직하다. 돌로미티는 한두 번 만에 정복(?)할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다음 편부터는 시행 착오를 겪은 과정 등이 소개되고 겨우 간만 본 돌로미티의 비경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녀온 길을 돌아보니 그곳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꿈같은 일이었다. 알타 바디아의 리푸지오 쀠쉬아두 트래킹은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2020
Scritto_il 28 Dic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은 다음일 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