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5. 2021

내가 꿈꾸는 그곳

#16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_최종회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버스 출입문 계단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이상향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루나무가 서있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으며 리오 코크랑(Rio Cochrane) 강이 옥빛을 머금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탄식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풍경이 다 있었다니..!!) 


엄마야 누나야 저 강변 쫌 보세요..!!


아마도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면 파타고니아 여행이 약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이 치유를 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에 자랑거리도 많지만 이 보다 더한 자랑거리가 또 있을까.. 최고의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아주 가끔씩이라도 파타고니아로 떠나면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위치한 리오 코크랑을 만나보시길 강추해 드린다.



   지난 여정 엄마야 누나야 저 강변 쫌 보세요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꿈같은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희한한 일이었다.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그림에서만 봐 왔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우리가 상상만 하면 현실에 나타나는지.. 세상에 나타난 풍경을 상상하게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플라톤(Platone)이나 장자(莊子)가 일찍이 꿈꾸었던 세상이 이런 것일까..



내가 꿈꾸는 그곳




   서기 2021년 1월 24일(현지시각) 저녁 무렵,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겨울비가 추적추적 오락가락하고 있다. 기온은 영상 10도씨 내외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가운데 컴을 열고 사진첩을 열어본다. 그곳에는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안데스 산맥과 그 곁을 흐르고 있는 리오 코크랑 강이 옥빛 강물을 쉼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강변 모래밭 주변에는 미루나무가 서 있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내가 꿈꾸던 풍경이자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봤을 이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천국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유년기 시절과 소년기 시절을 돌아보면 그곳에 이발소가 있었다. 7남매의 대식구를 거느린 우리 집에는 아들만 다섯으로 나는 그중 셋째로 태어났다. 당시는 대한민국이 가난했던 시절로 동네 목욕탕도 자주 갈 형편이 안 되는 시절이었다. 목욕탕은 명절이 돼야 이용해 볼 수 있는 명소나 다름없었다. 명절이 되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목욕탕은 문전성시를 이룰 때였다. 



한의를 하신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돕고 아이들까지 거두어야 하는 어머니께서도 이때만큼은 콩나물시루 같은 목욕탕으로 우리를 보냈다. 어떤 때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전차를 타고 동래 온천장까지 간 기억도 있다. 부산에서 전철이 아니라 전차를 타 본 몇 안 되는 경험자가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나의 기억에 전차표 가격은 20전인가 했다. 1원도 아니고 20전짜리 전차표를 구경한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아무튼 몸단장을 해야 할 명절 때가 되면 목욕탕은 물론 이발소를 출입하는 신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평소라면 부엌에서 데운 물로 목욕을 했을 것이며 듬성듬성 자란 머리카락은 '바리깡'으로 부른 기계로 아버지의 손에서 잘려나갔을 것이다. 양지바른 뒷마당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넓은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이발을 하는 것이다. 이때 기다란 면경을 담벼락에 받쳐두면 영락없는 오프라인(?) 이발소였다. 



이발을 하는 동안 가끔씩 머리카락이 뽑히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 따거'하고 소리 지르면 아버지께선 바리깡에 아주까리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곤 기계를 쥐락펴락 해 보고 다시 이발을 시작한다. 누렁이가 꼬랑지를 흔들어대며 귀찮게 한다. 이때 나의 머리 스타일은 '까까중머리'로 불렸다. 상고머리를 하고 싶었지만 노느라 바빠 죽는 내게 보건의학상 까까중머리가 너무 잘 어울렸던 것이다. 



거기에 할머니께서는 "우리 손자 머리통이 너무 예쁘다"며 칭찬을 하신다. 그래도 상고머리를 하고 싶었던 때였다. 집안도 아닌 바깥에서 머리를 깎고 있으면 썰렁할 뿐만 아니라 이마와 목덜미에 난 솜털을 면도할 때는 마냥 오그라든다. 면도용 거품을 바른 붓이 목에 닿거나 이마에 칠해지면 소름이 돋는 것이다. 그게 마지막 과정이다. 그리고 찬물에 머리를 감으면 끝. 



하지만 이발소에 가면 다르다. 누렁이가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의자도 근사하다. 더 근사한 건 의자 앞 한쪽 벽면에 붙여둔 커다란 거울이다. 의자에 앉으면 내 모습이 거울에 훤히 비친다. 이발소 바리깡이나 이발사의 손놀림은 세련됐다. 따끔거리지도 않고 기분 좋은 소리가 바리깡바리깡.. 하고 난다. 그리고 면도를 하는 과정에도 따뜻하게 데운 물을 사용했으므로 소름이 돋을 일이 없는 것. 



그런데 이발소에 들르면 거울 위에 걸어둔 그림이 눈에 띈다. 초가집 앞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소를 몰고 논밭으로 일을 나가는 한 농부 곁으로 누렁이가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정겹다. 초가집 담벼락 너머로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널렸고 실개천 옆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초가집 뒤로 나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그림의 배경은 그저 된 게 아니라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북현무로 우리나라의 풍수지리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풍경을 '이발소 그림'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화단에서 특정 화가의 그림을 얕잡아 쓰는 말이기도 했다. 내로남불의 한 현상이 이발소 그림에 묻어났던 것이다. 이발소에는 그림뿐만 아니라 매우 철학적인 글을 담아둔 액자도 눈에 띄었다. 어린 내가 그때는 알 리가 없었다. 글 내용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로 이어지는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의 시였다. 



이 또한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시는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슬퍼하고 노여워할 일이 적지 않았으며, 그런 과정을 참고 견디니 어느 날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발소에서 기분 좋게 머리를 깎기도 했지만 두고두고 잊지 못할 미술사(?)와 인생철학에 심취(?)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챙긴 것이다. 



하니와 나는 먼짓길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는 파타고니아의 오지 코크랑으로 가는 길에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넋을 놓고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촌놈이 처음 보는 광경이자 이발소 그림 같은 상상 속의 풍경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전설 같은 무릉도원 이야기나 플라톤과 장자의 이데아가 그냥 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꽤 오래됐다. 



어느 날 내가 꿈꾸던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난 사실만으로 나의 존재 혹은 자아의 출처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잘 따지고 보면 나(自我)의 실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의 육신이 존재하는 한 나의 오감으로부터 발현된 인식은 곧 나이기 때문이다. 전혀 상상 밖의 실체가 눈 앞에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먼 우주 저편에서 온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빅뱅 이론 등에 따르면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이자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티끌 하나가 우리 행성을 만들었으며, 우리의 몸과 정신체는 먼 우주로부터 날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것도, 인간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행위도, 실상은 본향으로 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꿈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꿈꾸는 그곳은 장차 떠나게 될 본향을 그리워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필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오롯이 남아있을 게 틀림없다고 믿는 것이다. 두루뭉술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는 믿음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게 내가 꿈꾸는 그곳이다. 


그곳은 일찍이 장자와 플라톤은 물론 선지자들이 깨달은 이데아(Idea_관념)의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다. 육신은 갈 수 없으나 정신체는 갈 수 있는 곳.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생각이나 상상 보다 더 빠른 수단이 있을까.. 



세상 만물의 근원은 태양계 바깥이며 우주 저편에 있다고 믿는 것이며, 장차 돌아갈 본향의 모습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 투영된 것이라 믿는 것. 그래서 이번 포스트 제목을 내가 꿈꾸는 그곳으로 뽑았다. 우리는 사는 동안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장차 돌아갈 아름다운 본향을 꿈꾸며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할 것이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슬픔의 날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발소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파타고니아 오지로 가는 길에 만난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일은 잠시 잠깐이다. 참고 견딜 일이 아니라 삶이 '그르려니' 하고 이해하면 천국은 물론 행복은 절로 다가올 게 아닌가.. 


하니와 함께한 파타고니아의 숨겨진 오지 코크랑 찾아가는 길 편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감사는 내 평생의 나와 이웃을 위한 기도이며 습관이다. 그동안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과 이웃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곧 다음 편을 준비하도록 한다. 끝.


La destinazione nascosta della Patagonia, Cochrane CILE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풀꽃 요정과 비현실적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