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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7. 2021

파타고니아가 연출한 자연 갤러리

#11 엘 찰텐, 라구나 또레 가는 길


나는 어느 날 파타고니아의 한 숲 속에서 전혀 상상 밖의 치유를 경험한 것이다. 단지 특정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내 마음 가득한 먹구름이 어느 순간부터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나를 따라다니던 숲이..

가을을 닮아가던 나뭇잎이.. 

춤추듯 손을 흔들던 나목이.. 


내 속에 혼재한 어두운 그림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여정 그곳에서 치유를 경험했다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경험은 개인에게 일어난 한 현상이며 사람들 마다 서로 다르다. 똑같은 현상을 앞에 두고 어떤 사람은 감동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무표정하다. 아마도 이런 차이는 정신적 끼니를 거르는 걸 밥 먹듯 한 사람과 너무 먹어 주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할까.. 



파타고니아가 연출한 자연 갤러리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그 어떤 경우이든 배부른 자에게는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 게 세상의 표정인 것 같다. 예술세계를 대하는 사람들의 관조법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관조의 시각이나 태도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행위와 같거나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가난했던 6070 시절 내 고향 부산에서 친구와 함께 보러긴 전시회는 시민회관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옛 조선방직  지역을 부르는, 조방 앞에 세워진 시민회관에서 개최되고 있던 서예전과 미술전람회는 친구와 함께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 



훗날 그 친구는 H대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그의 손에는 늘 스케치북과 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공부 시간에도 그림을 그렸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도 스케치북에 그리다 만 소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습관은 한 과목을 제외하면 전부 낙제점수를 면치 못 헸다. 그러나 그 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또 그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다. 지독했다. 


저만치 앞서가는 여인은 하니의 뒷모습이다. ^^


나는 그의 이런 행위를 보면서 훗날 미켈란젤로를 떠올렸다. 미켈란젤로의 손에서 망치나 정과 끌이 떠나지 않은 것처럼 그의 손에서는 연필과 스케치북이 늘 따라다닌 것이다. 이런 그의 남다른 노력으로 H대학을 졸업하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그의 노력은 거기까지였다. 그가 운영하던 화실에서 만난 제자와 결혼하면서부터 그의 화풍은 달라졌고, 그의 습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보기 힘들어졌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앙처럼 여기던 순수미술을 때려치우고 상업미술로 진로를 바꾸며 돈벌이에 나섰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왕싸가지였다. 아이를 낳고 생활인이 되면서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예술 만능주의자에서 '밥술 마니아'로 급 변신을 한 것이다. 누군들 다를까.. 입시 과정에서 열심히 그렸던 소묘는 미술대학 주식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밥벌이 수단으로 급 변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술사가 재정립되는 것이다. 그림을 팔지 못하면.. 광고를 수주받지 못하면 먹고사는데 큰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업계의 관행에 부합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좋든 싫든 돈만 되면 그 어떤 비판과 비난을 무릅쓰고도 기어코 돈을 만드는 광고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눈 앞에서 목격하면서부터 이른바 작품에 대한 나의 신뢰감 혹은 눈높이는 크게 달라졌다. 그들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라면을 만들 듯 작품을 찍어내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대한민국에서는 물론 태평양 건너 미국의 뉴욕에 위치한 모 갤러리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갤러리에서는 여러 문하생들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 그림을 조립하는 진풍경을 보이는 것이다. 예컨대 한 사람은 눈만 그리면 그다음은 코와 입과 머리 등 그리고 엉덩이까지 완성되면 배경을 그리고 최종적으로 작가가 사인을 하는 것이다. 



작가가 한 일은 싸인이 전부인데 소비자들은 이 작품을 유명화가가 그린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소비자들이 그런 출판물에 대해 행복해하면 그만일 것이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1인의 눈에 비친 시장의 모습은 인생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니와 함께 파타고니아 여행을 나섰을 때 아끼던 화백 1인은 그것도 모자라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화실을 운영하며 돈벌이도 괜찮아 밥벌이 이상의 사업수단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정치판에 뛰어든 건 그의 지인들 꾐 때문이자 '한몫 벌자'는 그의 발칙한 생각이 끼어들었다. 



그런 그가 명예도 잃고 돈도 잃고 제자마저 떠나보내는 망할 짓이 드러난 건 여행이 끝나고 귀국할 무렵이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가 전혀 불필요한 욕심을 부린 것이며, 예술의 가치와 본분을 망각하면서 일어난 불행이었다. 참 아쉬운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로부터 멀어졌는데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그가 남긴 불편한 업적 때문에 그때부터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그린 작품을 신앙처럼 여긴다. 예술인들의 가슴에 신의 그림자가 깃들지 않으면 명품이 탄생될 하등의 이유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앙고백처럼 여기는 브리엘라 미스뜨랄 <예술가의 십계명>을 사랑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작품을 돌아보며 글을 맺는다. 





예술가의 십계명 

-가브리엘라 미스뜨랄


첫째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셋째, 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 말고 정신의 자연식으로 주어라.

넷째, 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말고 신성한 연습으로 삼아라.

다섯째, 잔치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도 말 것이며 가져가지도 말라. 아름다움은 동정성이며 잔치에 있는 작품은 동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너의 가슴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 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릴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여덟째, 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아홉째, 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림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 포도주다.

열째, 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할 것이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발을 디딘 파타고니아의 라구나 또르레로 가는 길에 만난 수목들은 우기를 앞두고 자연 갤러리를 연출하며 여행자의 발길을 붙들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무리가 따르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디. 신의 그림자가 깃든 아름다운 작품들이 우리 가슴에 안긴 것이다.


Il tesoro nascosto di El Chalten in Patagonia_LAGUNA TORRE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patagonia ARGENTIN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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