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저만치 앞서가던 그녀.. 갑자기 걸음걸이가 어정쩡해졌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정상으로 이동하던 중에는 그저 돌무더기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한 직후부터 커다란 돌무더기는 어느 날 조물주가 남긴 부산물들이었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장엄한 풍경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파타고니아가 가슴 깊숙이 숨겨놓은 절경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곳에 살아가고 있었던 요정들은 날이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겠지..
수목한계선을 벗어난 거대한 산군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면서 여행자의 발길을 붙드는 것이다. 태양계를 벗어나 먼 은하계로 눈길을 돌리면 행복이 더 증폭될 것인가.. 파랑새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는 파랑새를 만나지 못하는 세상. 우리 곁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신비로운 풍경들이 널려있었다. 여행자가 길 위에서 행복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지난 여정 풀꽃 요정과 비현실적 풍경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산행을 다니거나 여행길에 오르면 눈에 띄는 풍경이 나타난다. 나의 브론치에서 주로 '풀꽃'으로 부르는 꽃잎을 내놓는 식물들이다. 우리 행성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은 녹조류와 종자식물, 선태식물, 양치식물로 정의되는 약 350,000여 종의 식물 종(種)들이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상 밖의 다양한 개체가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식물의 진화 과정 등을 참조하면 식물의 출연은 최소한 수 억년 전이므로 사실상 이 땅의 주인이나 다름없다. 그 가운데 꽃을 내놓는 식물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태초로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그들 중 한 종이 어느 날 여행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게 신기한 일 아닌가..
나의 이런 습관은 유년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여러 번 언급한 적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시의 기억이 또렷한 것이다. 식물들을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며 그를 갖고 싶은 마음이 단박에 드는 것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때는 그들도 외로웠을 것이며 위험에 맞닥뜨렸을 수도 있다.
누군가 해코지를 하는가 하면 천재지변으로 낭패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을 견딘 결과 어떤 씨앗들은 수 만년 동안 땅속에 묻혀있다가 꽃을 피운 식물도 있었다. 이를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3만여 년 전 시베리아 지역에서 다람쥐가 굴 속에 감춰놓은 덜 익은 열매가 과학자들의 혁신적인 실험으로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 식물은 석죽과 식물 실레네 스테노필라(Silene stenophylla)의 열매였다. 결과적으로 식물은 발아를 할 수 있는 조건만 되면 새싹을 내놓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며, 씨앗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조건은 훌륭한 공간과 시간이 만났을 때 가능한 일이다. 오늘 포스트 제목을 '공포스러운 위험한 공간'이라 써 놓고 기분 좋은 공간과 반대의 경우 혹은 공포스러운 공간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틀 전. 한국에 가 있는 하니로부터 전화(메신저)가 걸려왔다. 그녀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무서워 죽겠다"는 것이다. 대략 1시간 동안 이어진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통화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이틀 전 새벽 4시 30분경의 일이었다. 잠결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긴가민가 하고 거실로 나갔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른 새벽에 누가 찾아왔을까 싶은 생각과 동시에 겁이 덜컥 나더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했다는 것.
그녀는 겁이 많다.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 1인을 빼놓으면 다 무서운 대상이랄까.. 그래서 아파트 출입구 견시창 마저 테이프로 봉해버렸다. 그러니까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문짝 하나로 가린 뒷모습을 상상만으로도 겁이난 것이다.
그런 잠시 후, 어느 날 여자 혼자 살고 있는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생각하다가 아파트 위층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생각해 낸 것이다. 할머니의 연세는 금년에 85세로 가끔씩 왕래하던 사이였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조금씩 나누어 먹고 멸치 삼단분리도 거들면서 친해진 사이였다.
그 할머니 외에 문을 두드릴 사람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을 쿵쿵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톡톡톡 작은 소리가 겨우 들리더라는 것. 그녀가 위층 할머니라 단정한 것은 몸상태 때문이었다. 혈압약 등등 매일 한주먹에 해당하는 약을 복용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불쌍한 노인이었다. 당신을 불쌍하게 만든 건 할머니의 아들 때문이었다. 나이도 적지 않은 아들은 이혼을 했고 술과 화투놀이에 빠져 산다고 했다. 이날 새벽까지 아들의 행방은 묘연했을까..
그녀는 확신을 하고 용기를 내어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주름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기겁을 한 그녀는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라며 부축을 했는데 하얗게 질린 얼굴이 다시 새파랗게 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엉겁결에 할머니의 어깨와 등을 두드린 후 수지침을 사용해 양손 엄지손가락에 침을 놓았다고 했다. 그 즉시 손가락에서는 시꺼멓게 죽은 피가 한 방울씩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 직후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얼굴에 핏기가 돌더라는 것.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물을 한 컵 마신 연후에 "이제 살겠다"며 "약을 먹다가 채 했다"며 자초지종을 말했다고 한다. 알약 한 줌을 털어 넣다가 채한것이다. 문제는 할머니가 돌아간 다음이었다. 할머니의 연세를 고려하여 만약 다음에 같거나 비슷한 경우의 수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때마다 매번 문을 열어주며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할까.. 하는 게 전화의 요지였다. 대략 난감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에 하나 집 앞에서 혹은 집안에서 할머니가 변을 당하면 그땐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119를 부르는 등 조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자칫 누명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같은 경우의 수에 직면하면 어떻게 할까.. 궁금하다)아들 녀석이 곁에 없을 때 말이다. 깜깜한 새벽에 벌어진 공포의 시간은 이렇게 끝났다. 아들님아 제발 정신차려라. 당신을 낳아주신 어머니가 임종 직전이다.ㅜ
하니가 저만치 앞서 가다가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포스트 편집을 하고 있는 시간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곳에는 천 길 낭떠러지 옆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날 정상으로 향해 걷던 중 공포스러운 위험한 공간이 처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여행을 잘 끝마치고 위층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3만 년 동안 동토에서 깊은 잠에 빠졌던 풀꽃의 씨앗은 껍질 밖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이탈리아에서는 씨앗 속에 웅크린 새싹을 아니마(Anima)라 부른다. 식물의 영혼이다. 그들은 씨앗 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연구실에 켜 둔 음악까지 들었을 게 아닌가.. 우리는 곧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의 세 봉우리(Torre sur, Torre central, Torre nord)를 만나게 될 것이다. <계속>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Torres del Paine, Patagonia CILE
Scritto_il 28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