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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3. 2021

흙 없는 마을의 바닷가 엿보기

#4 파타고니아 깊숙이 숨겨진 작은 마을 깔레타 토르텔

관심을 가지면 세상 아름답지 않은 게 없지..!!



흙 없는 피오르드 마을에도 주요 도로가 있었는데 목재로 만든 도로였으며, 도로공사는 낡은 나무를 뜯어내고 새로운 목재로 바꾸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도시에서 살고 있던 시민이 어느 날 흙이 없는 마을에서 진풍경을 만난 것이다. 대도시의 도로공사가 아스팔트를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거치며 폐기물을 남긴다면, 이곳은 낡은 목재를 뜯어낸 것으로 땔감으로 재활용을 하는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하니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곳.. 흙이 없는 피오르도 마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한 것이다.


지난 여정 흙 없는 마을의 상상불가한 풍경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그때가 2021년 1월 30일이었으므로 어느덧 나흘의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전혀 원치 않았던 일이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의형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생전에 워낙 건강하고 활동적이신 분이라 잠시 연락이 없어도, 그저 "무슨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흙 없는 마을의 바닷가 엿보기




그런 형이 쓰러진 시기는 지난해 9월이었으며 하니와 나는 당시 돌로미티에서 살아볼 요량으로 집을 구하러 간 적 있다. 그때 돌로미티에 내린 첫눈을 만나 잠시 행복에 겨웠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행불행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오늘 아침 한국에 가 있는 하니와 통화를 하면서 형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화제로 등장했다. 그녀 왈 "우리가 돌로미티에 살았으면 초대했을 텐데.."라는 취지의 말이자 희망사항이었다. 이미 당사자는 세상에 없고 설령 생존해 있다고 해도 당신의 사정과 우리의 형편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참 안타까웠다. 그때 다시 울컥했다. 



그녀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는가.. 우리는 형이 평소 말 수가 적고 속 깊은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이웃을 위해 다 내놓으신 분이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에게 단점을 꼽으라면 일 밖에 모르는(?) 것이었다. 



눈만 뜨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로지 취재현장에 가 있거나 문화재 답사를 다녔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취재를 하고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당신은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잠시 쉴 시간도 없었을까.. 형이 세상을 떠난 후 나름 애도기간을 정해놓고 당신의 삶을 잠시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누가 알아줄 것인가 마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는 동안 각자의 처지와 형편 등에 따른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이 관조(觀照) 법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세상의 풍경을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각자의 내면의 세계를 차분히 돌아보는 법이다. 이런 행위는 수행자나 불자가 아니라도 가능하며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하나의 의식이다.


차분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에 나의 행위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 돌아보면 그곳에 당신의 의지와 의사와 관계없었던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으로부터 발현되었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나 집단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방치해 두면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될 게 아닌가.. 즉각 반성해야 할 일이다. 또 사과를 해야 할 일이 특정인에게 있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신앙인들이라면 이런 과정을 참회 혹은 속죄의 과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당신의 가슴에 칼을 품고 제단에 나가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응답은커녕 스스로 버림받은 자가 될 게 틀림없다. 잠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속성이 주로 그러했다. 



어떤 사람은 장로의 직분을 가지고도 평생을 사람들을 속여가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인면수심의 사람도 있다. 그는 현재 영어의 몸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문화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단테는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구분해 놓았지.. 



하지만 너무 똑똑해진 사람들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며 그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게 21세기에 드리워진 암울한 그림자이자 인류 최고의 가치인 행복을 멍들게 하는 돈이다. 돈 때문에 살고 돈 때문에 죽는 돈생돈사(?)의 삶이 행복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 신앙이 된 세상에서 신이 깃들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주 인용하는 남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이에 대해 '아름다움은 신의 그림자'라고 노래한 바 있다. 신의 그림자가 돈이나 물질에 숨어있을 리 만무하다.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아름다운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신이 강림하는 이치랄까.. 



형의 죽음을 통해 하니와 나는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생전에 당신을 위해 조금만 베풀 수 있었다면 후회는 덜 남았을 것인데 형을 떠나보낸 후 마음속의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후 나는 오래전에 다녀온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뒤져가며 나의 시선이 머물렀던 세상의 관조법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주어진 온갖 사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만한 이유를 지닌 것들이다. 풀꽃은 물론 돌멩이 하나까지 제자리에 놓일 때까지 걸린 시간과 사유가 있는 것. 어느 날 우리가 돌아보고 있는 흙 없는 마을 깔레타 또르텔의 풍경도 다를 바 없다. 대도시를 이곳과 비교하는 건 금물.. 



이 마을에 편리함과 문명의 이득이 덜한 반면 대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숱한 장점이 마을 곳곳에 묻어나고 금쪽보다 더 귀한 피오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늘 봐 왔던 바닷가 풍경과 너무 다르고 바닷물빛 조차 다른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이다. 



숙소에서 발을 옮길 때마다 삐거덕 거리는 소음도 숨소리처럼 들리는 곳. 밤이 오시면 진공상태로 변하는 이 마을에 어느 날 한국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여행자가 마을 곳곳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나의 뷰파인더에 담긴 풍경들은 곧 여러분들의 시선으로 바뀔 것이다. 



정보를 공유하는 4차원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누리는 실로 엄청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하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배경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왜 그렇게 빨리 갔느냐는 것이며, 일에만 파묻혀 산 형에 대한 불만도 섞여 있었다. 형은 의형제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 행복해 보였는데 나머지 시간은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 어느 날 쓰러지신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형이 일손을 놓고 당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더리면 어땠을까.. 



치열한 삶 대신 약간은 여유로운 삶이었다면 하늘은 당신을 그렇게 빨리 부르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형의 나이는 향년 72세로 인생 후반전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던 나이가 아닌가.. 깔레타 토르텔을 돌아보니 이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시곗바늘은 매우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 곁에서 시간을 붙들어 둔 것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이자 피오르드의 자태였다. 느리게 사는 법을 깨우친 사람들에게 하늘은 느리게 가는 시계를 선물한 것이다. <계속>


Non c'è terra nel villaggio_Caleta Tortel, Patagonia CILE
il 02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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