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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4. 2021

달님과 나

#18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내 가슴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 달님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니가 저만치 앞서 가다가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포스트 편집을 하고 있는 시간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곳에는 천 길 낭떠러지 옆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날 정상으로 향해 걷던 중 공포스러운 위험한 공간이 처음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여행을 잘 끝마치고 위층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3만 년 동안 동토에서 깊은 잠에 빠졌던 풀꽃의 씨앗은 껍질 밖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이탈리아에서는 씨앗 속에 웅크린 새싹을 아니마(Anima)라 부른다. 식물의 영혼이다. 그들은 씨앗 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연구실에 켜 둔 음악까지 들었을 게 아닌가.. 우리는 곧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의 세 봉우리(Torre sur, Torre central, Torre nord)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난 여정 공포스러운 위험한 여정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살아가기 바쁜 세상에 작은 씨앗 속에 웅크린 식물의 영혼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 보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게 우리의 현실인 걸 어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둘러싼 이웃과 사회 구성원 등을 생각해 보면 태양계의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나를 중심으로 작은 우주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달님과 나




   우리가 학습한 바 있는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은 소행성대를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네 개의 고체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 즉 지구형 행성과, 바깥쪽에 있는 네 개의 유체 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즉 목성형 행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유기적 결합체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어떤 물리적인 충격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의 형태로 남게 될 것이며..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 속에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천체와 물리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로부터 눈부신 성과를 이끌어 내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인류가 만든 허블 우주망원경(Telescopio spaziale Hubble)으로 천체를 관찰하여 그 결과를 사진으로 보내오고 있었는데.. 1990년 나사(NASA)에서 쏘아 올렸으므로 그 일이 어느덧 30년이나 됐다. 


불과 30년 동안 우리 곁에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오고 있었다. 3차원에 머물던 인류가 4차원의 세계에 돌입하며 인터넷 세상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 또한 우주의 연결 고리처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또 다른 우주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기 2021년 2월 3일 오늘(현지시각)은 양력의 절기상 입춘에 해당하는 날이다. 24절기 중의 하나인 입춘은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신호이며, 머지않아 꽃 피고 새가 지저귀는 영롱한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입춘이 시작되는 시기는 음력으로는 정월에 해당하므로, 우리 선조님들은 이날을 기념하며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손글씨로 써서 대문에 붙였다. 


봄이 시작되니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따뜻한 기운으로 경사가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것. 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를 써 붙이고 표정을 밝게 하면 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했다. 요즘은 이런 모습을 비롯한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눈에서 멀어진 지 꽤 오래됐다. 



나사가 쏘아 올린 우주선 등 과학이 인류문화사 이래 최고로 발달한 시대에 농경사회의 산물을 드러내면 시대적으로 얼마나 꼰대스러울까.. 더군다나 인류가 달착륙을 시도하면서 달에 살고 있던 옥토끼 조차 어디론가 사라진 세상이다. 모든 것이 눈에 보여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왕자가 살고 있던 안드로메다 너머 은하계의 모습까지 망원경을 들이대는 차마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과학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꿈을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랄까..



꿈이라는 게 눈에 보이나.. 꿈이라는 게 만질 수 있나.. 꿈이라는 게 맛을 볼 수가 있나.. 꿈이라는 게 냄새라도 풍기나.. 꿈이라는 게 들을 수 있는가.. 나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태어나기도 전.. 훨씬 전에 일을 기억해 내고 있다. 

어린 녀석이 한밤중에 할머니를 마구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그 녀석이 할머니를 깨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배탈 때문이다. 명절에 폭풍 흡입한 맛난 음식 때문에 설사를 만난 것. 요즘은 즉각 화장실로 쫓아가면 되지만 그땐 전혀 사정이 달랐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라 푸세식(아시죠?ㅜ)이었다. 



푸세식 화장실은 뒷마당의 텃밭을 지난 외딴곳에 있었다. 텃밭 곁에 있어야 오물을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렇다면 어린 녀석은 혼자 가서 볼 일을 보면 돼지 왜 할머니를 깨울까.. 


녀석은 밤이 무서운 것이다. 진공상태로 변한 깜깜한 밤중에 나서면 누렁이가 꼬랑지를 흔들며 반겨주지만, 그건 누렁이 사정이지 무서워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할머니께서 손자 녀석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잠시 부스럭거리다가 손자와 함께 나선 뒷마당에는 은빛 가루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녀석은 기다란 나무 두 쪽을 걸쳐놓은 푸세식 화장실에서 묘한 소음을 일으키며 "할머니 어디 가지 마세요" 라며 할머니를 찾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의 행방을 묻는 것. 그러면 할머니는 "가긴 어딜 가 요깄지"라며 응수한다. 달님이 저 높은 곳에서 씩 웃고 계신다. 


어떤 때는 달님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뒷마당은 숯검댕이를 처 발라놓은 듯 새까맣게 변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인데 녀석들은 칠흑같이 까만 밤이 좋았을까.. 그런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총총하다 못해 난리법석이다. 



여름밤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바라보면 그 별들에 뽀얀 우윳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게 은하수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나사가 쏘아 올린 허블 우주 망원경은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 평상에 누워 하나의 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별 속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꿈나라로 사라진 것이다. 거대한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꿈의 세상은 그렇게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이다. 



달님과 별님은 너무도 신기했었지.. 지구와 달의 유기적 맞물림과 함께 나를 둘러싼 우주는 나로부터 발현되고 있었던 것일까.. 하니가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을 향해 저만치 앞서 걷는 가운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곳에 달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더 푸를 수도 없는 새파란 하늘 드높은 곳에 떠있는 달님은 유년기 때 본 달님을 쏙 빼닮았다. 우리나라에만 있어야 할 달님이 파타고니아에도 있었던 것이다.(욱껴!ㅋ)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울퉁불퉁 돌무더기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조물주가 뾰족한 세 봉우리를 만들면서 깎아 버린 돌무더기가 가득 쌓인 곳. 그 하늘 위에서 달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의 우주는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달님처럼 은빛 가루를 흩뿌리며 저만치 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고도를 높이며 장차 만나게 될 비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할머니가 너무 그립다.  <계속>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Torres del Paine, Patagonia CILE
Scritto_il 03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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