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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1. 2021

설날에 먹는 맑고 향기로운 후식

-봄볕에 곁들인 딸기와 진한 요구르트의 만남


   후다닥 만들어 내는 초간단 후식.. 먹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오늘부터(한국시간) 시작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 연휴는 이틀 후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조금 다름 풍경이 연출될 것 같다. 코로나 시대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조상님께 절을 올리는 설 차례 조차 녹록지 않게 됐다. 코로나가 어느덧 우리의 전통문화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 최대의 명절을 그냥 보낼 수야 없는 법..! 

가족이 한데 모이는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할 망정 제례음식은 장만해야 할 것이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떡국을 나누어 먹고 조상님께 올린 음식을 나누고, 웃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면서 집안은 조용한 축제 분위기로 넘쳐날 것이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게 차례상에 올린 기름진 음식들..





유년기의 나는 명절 때만 되면 배탈이 나곤 했다. 어린 녀석이 기름진 음식을 폭식한 때문이었다. 이 같은 풍경을 나의 브런치 달님과 나에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차마 웃지 못할 해프닝이 명절 전후에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이랬다.


어린 녀석이 한밤중에 할머니를 마구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그 녀석이 할머니를 깨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배탈 때문이다. 명절에 폭풍 흡입한 맛난 음식 때문에 설사를 만난 것. 요즘은 즉각 화장실로 쫓아가면 되지만 그땐 전혀 사정이 달랐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라 푸세식(아시죠?ㅜ)이었다. 
푸세식 화장실은 뒷마당의 텃밭을 지난 외딴곳에 있었다. 텃밭 곁에 있어야 오물을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렇다면 어린 녀석은 혼자 가서 볼 일을 보면 돼지 왜 할머니를 깨울까.. 



녀석은 밤이 무서운 것이다. 진공상태로 변한 깜깜한 밤중에 나서면 누렁이가 꼬랑지를 흔들며 반겨주지만, 그건 누렁이 사정이지 무서워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할머니께서 손자 녀석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잠시 부스럭거리다가 손자와 함께 나선 뒷마당에는 은빛 가루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녀석은 기다란 나무 두 쪽을 걸쳐놓은 푸세식 화장실에서 묘한 소음을 일으키며 "할머니 어디 가지 마세요" 라며 할머니를 찾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의 행방을 묻는 것. 그러면 할머니는 "가긴 어딜 가 요깄지"라며 응수한다. 달님이 저 높은 곳에서 씩 웃고 계신다. 
어떤 때는 달님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뒷마당은 숯검댕이를 처 발라놓은 듯 새까맣게 변했다. 개구리울음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인데 녀석들은 칠흑같이 까만 밤이 좋았을까.. 그런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총총하다 못해 난리법석이다. 



설날에 먹는 맑고 향기로운 후식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나의 유년기에 해당하는 풍경은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었을 것 같다. 사람들이 '고기도 먹어본 넘이 더 잘 먹는다'는 말이 그저 된 게 아니었다. 명절날 부엌에서 쉼 없이 들락거리는 교자상 위에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부침개며 생선이며 산적 등이 기분 좋은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기는 것이다. 


설날은 마법의 날이었다. 설날에 쓸 재수용품이 모양을 채 내기도 전에 오며 가며 들락날락 하나씩 집어먹다가 어머니로부터 혼이나도 막무가내였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는지 자꾸만 당기는 것이다. 이런 행위가 설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탈이 안 나는 게 비정상이었지 아마도.. ㅋ



   서기 2021년 2월 10일(현지시각), 나는 설날에 어울릴만한 후식을 찾다가 이틀 전에 구입한 딸기와 걸쭉한 요구르트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모처럼 개방한 집 앞의 공원으로 나가 풀꽃 몇 송이와 함께 로즈마리노(Rosmarino) 꽃 몇 송이를 구해왔다. 공원 잔디밭에는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설날에 어울릴 만한 후식을 후다닥 만들었다. 누가 봐도 초간단 리체타이다. 



큼직한 딸기를 다듬고 잘게 썬 게 전부이며 접시 바닥에는 걸쭉한 요구르트를 곁들였다. 그리고 로즈마리노 꽃과 풀꽃으로 장식을 했다. 맛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입안 가득 달콤하며 맑고 향기로운 봄 향기가 차고 넘칠 것이다. 



관련 매거진 이탈리아 요리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요리는 요리사의 철학이 담긴 간결함이 생명이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요리는 그만한 가치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현대 이탈리아 요리 다수는 매우 단순하다. 그중 후식(Dessert)의 종류는 수천 가지 이상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곤란할 정도로 차고 넘쳐난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달콤함'이다. 



한 발 더 들어가면 설탕 덩어리나 다름없는 게 후식의 속성이라 말 할 수 있다. 이 같은 속성 때문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달콤한 후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또르따(Torta, 케이크) 만드는 과정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설탕을 멀리하는 것이다. 더불어 시럽(Sciroppo)을 사용하는 리체타는 흔하다. 탄수화물 때문에 살이 찐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후식의 비밀'에 대해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시쳇말로 설탕을 퍼 먹고도 온전한 체형을 유지한다는 건 기적 같은 일 아닌가.. 



본문에 등장하는 자목련(Magnolia liliiflora)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미슐랭(Michelin guide) 별을 단 리스또란떼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이다. 초보 요리사에게 달콤한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 숙소 근처의 운하 곁에서 카메라에 담은 것. 당시 나는 이 리스또란떼의 오너 셰프로부터 이탈리아의 현대 요리에 대해 가까이서 배울 수 있는 행운을 차지했다. 



셰프는 어느 날 내게 숙제를 내주면서 어떻게 만드는지 등에 대해 설명을 해 보라고 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노트를 펴 놓고 접시를 그리고 필요한 재료를 접시 위에 그려 나갔다. 그리고 완성된 접시(요리)에 대한 설명을 그림 아래에 쭈욱 써 나갔다. 그리고 손님이 도착하기 이른 시간에 셰프 앞에서 이탈리아어로 설명(시연)을 해 나갔다. 물론 노트를 훔쳐보면 반칙이었으므로 내가 만든 '나만의 접시'에 대한 설명(요리 철학)을 이어갔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셰프가 박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브라보! 프란체스코, 완벽해요!!(Bravo! Francesco, perfetto!!) ^^"



당시 나의 이탈리아 이름은 프란체스코였다. 또 내가 만든 후식 리체타는 딸기를 응용한 작품이었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당시의 리체타를 소개해 드릴 참이다. 그 셰프는 요리학교의 특강은 물론 피에몬테 주에서 유명세를 떨치며, 이탈리아는 물론 인접한 프랑스 등지로부터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당신이 만드는 요리는 절대로 넘쳐나는 법이 없이 간결하였으며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내면서 미적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것이다. 



설날에 먹으면 너무 잘 어울릴 맑고 향기로운 후식도 그 셰프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설날이 오시면 유년기의 나를 배탈 나게 만든 기름진 음식이 널려있을 것이다. 연휴는 짧고 먹거리는 넘쳐나는 설날.. 화사한 봄볕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딸기와 요구르트의 만남을 후식으로 올려보시기 바란다. 장식용 로즈마리노가 있으면 감동이 배가된다. 명절 때 늘 봐 왔던 교자상이 봄을 만난 듯 화들짝 놀라게 될 게 틀림없다. ^^


Incontro dello yogurt denso con le fragole al sole primaverile
il 11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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