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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4. 2021

이탈리아서 받은 행복한 택배

#68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숨은 그림 찾기, 사람이 보이시나요..?!


지난 여정(돌로미티의 혼(魂)) 끄트머리




-안녕, 아이들아! ^^ 

-(일제히) 와~아더찌다. 안넝하떼요. ㅋ 


우리는 사는 동안 종종 원치 않는 풍경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쩌면 삶 전체에 깃든 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인지도 모를 일아다. 삶이 치열해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산중에서 일어난 전투나 다름없을 것. 누군가 '좁은 길을 가라'라고 했는데.. 신작로 길을 걷다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풀꽃의 삶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작로를 따라 걸으며 풀꽃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멀어지자, 마침내 베일에 싸였던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세 봉우리가 위용을 드러냈다. 엄청난 기운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세 봉우리는 좌로부터 치마 삐꼴라(Cima piccola, 2,857m), 치마 그란데(Cima grande, 2,999m) 및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2,973m)로 구성돼 있다. 각각 작은 봉우리, 큰 봉우리, 동쪽 봉우리로 부른다.


숨은 그림 찾기, 사람이 보이시나요..?!



이탈리아서 받은 행복한 택배




   브런치를 열면 등장하는 장엄한 세 봉우리.. 그 봉우리 이름은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라고 헸다. 좌로부터 치마 삐꼴라(Cima piccola, 2,857m), 치마 그란데(Cima grande, 2,999m) 및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2,973m), 각각 작은 봉우리, 큰 봉우리, 동쪽 봉우리로 부른다. 사람들은 그 아래 널따란 신작로 길(산길)을 따라 곧 리푸지오 아우론조 쉼터(Rifugio Auronzo alle Tre Cime di Lavaredo)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하니와 나는 이미 쉼터 아래까지 진출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간식을 먹은 다음 주변을 둘러본 어행자들이 다시 길을 나서는 모습이 목격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개미처럼 작아 보인다. 우리도 장차 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카메라 앵글에 겨우 들어온 이 길을 따라 처음 우리가 도착했던 주차장까지 가려면 발품을 꽤 많이 팔아야 한다. 


숨은 그림 찾기, 사람이 보이시나요..?!


이곳 세 봉우리 둘레길 길이는 대략 12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앞만 보며 잘 걷는 사람들이라면 4시간이면 족한 거리이다. 그러나 안 청춘인 우리에게 12킬로미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중간중간 멈추어 쉬었다 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바쁘게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곳저곳 천천히 둘러보면서 돌로미티의 비경을 가슴에 담는 것이다. 


숨은 그림 찾기, 사람이 보이시나요..?!


서기 2021년 2월 13일(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이틀 연속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오래된 도시 전체가 비에 촉촉이 젖었다. 이런 분위기는 어떤 때는 분위기를 좋게 만들지만 또 어떤 때는 음산하며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겨울비이지만 봄을 재촉하는 비에 담긴 노래들이 주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설 연휴 기간 동안 내게는 주로 전자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숨은 그림 찾기, 사람이 보이시나요..?!


지난 1월 14일 경, 마음이 바빴던 하니는 코로나 시대를 가로지르는 일을 감행했다. 돌로미티의 비경이 그녀의 가슴을 여전히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우체국에 들러 두 가지 일을 저질렀다. 야영용 텐트와 양털이불 등을 이탈리아로 택배로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텐트는 옵션에 걸려 탈락되었다. 당시 통화 장면을 관련 브런치 실패로 끝난 그녀의 발칙한 도발 편에 기록해 두었다. 이렇게.. (기억하시나요? ^^)


-응, 텐트.. 이거 무게를 재보니까 3.5킬로그램이네..^^

-어쩌자고..ㅜ 

-양털 하고 같이 무게를 재보니 7.5킬로그램이야.

-그거.. 소포로 부쳐야 돼요. 차라리 여기서 구매하는 게 더 낫잖아. ㅜ 



-여기 우체국이얌. 주소 불러줄게 맞나 확인해 봐..! ^^

-응, 따로 뿔리아 주를 표기 하지 않아도 도시와 우편번호만 확실하면 돼.

-알써..! ^^

-문제 있으면 다시 연락해욤..


그런데 그녀는 여기서 좌절(?) 하지 않고 양털이불과 '꼬까옷'을 장만하여 한국에서 입던 옷과 함께 택배로 부친 것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설날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10일)에 문밖에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나가 봤더니 종이상자에 담긴 택배를 가리키며 "당신이 아무개 씨죠?"라며 물었다. 



택배 상자에 적힌 '우체국 택배'라는 글만으로도 그녀가 부친 택배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택배를 들고 온 아저씨는 관세와 세금 등을 포함해 85유로(84.71유로)를 달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뭥미?'라는 생각이 들어 비용을 다시 물었다. 오딴따 칭꿰 에우로(85유로)..! 우체국에서 치른 비용보다 더 많은 1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딱지에 딱 달라붙어있었다. (어쩔 건데.. 물어야지! ㅜ) 



쌈짓돈이 순식간에 날아갔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비용을 지불하고 테이프로 완벽하게 봉한 종이상자를 열어보니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양털이불은 곱게 세탁되어 접어져 있었고 꼬까옷은 설빔(?)으로 마침맞게 개어져 있었다. 설날 전에 가슴 설레던 유년기의 기억이 절로 겹쳐졌다. 참, 따지나 마나 그게 다 뭐라고.. 사람을 감동시키나 싶은 것.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우체국 택배 상자에 행복이 배달된 것이다. 


숨은 그림 찾기, 사람이 보이시나요..?!


글을 쓰는 중에 하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날더러 어쩌라고..ㅜ) 요즘 통화는 시작하면 1시간은 기본! 미주알고주알 설날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다. 무조건 끝까지 다 들어준다. 


아이들이 손자를 데리고 새배를 온 이야기부터.. 당신이 그린 그림을 병원에 걸어두었더니 손님들로부터 인기가 너무 좋다고 한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에 담아 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는 것이다. 그런 소릴 듣는 어미 마음이 어떻겠는가. (기분 쵝오! ^^)거기에 아들 넘이 다른 그림까지 넘보며 가져가겠다고 하자 "그러라"라고 했단다. (그걸 공짜로..? 나쁜 넘 ㅜ) 그리고 돌로미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통화에 묻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틈새를 노려) 사이비 교주 혹은 좁쌀로 급 변신을 한다. 우리를 지구에 보내신 이의 계획 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다. 당신이 그린 작품이 여러분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당신이 최선을 다한.. 혼으로 그린 생명력 넘치는 그림이라며 마구 추켜세웠다. 


사람들이 왜 당신의 작품을 아름답다고 느낄까.. 그곳에 신의 손길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며 미켈란젤로의 예를 들었더니 기분 좋아진 그녀..(후훗) 하니의 마음속에는 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돌로미티가 마구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녀가 저만치 앞서 쉼터를 향해 걷고 있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Scritto_il 14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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