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평원에 찾아오신 봄의 정령(하편)
우리가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요정(妖精)들의 대화..?!!
지난 여정(마스크 내리자 봄이 안겼다) 중에서
주 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3월 30일 자로 잠정 폐쇄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조치는 이탈리아 전역에 널리 퍼지고 있는 코로나 19 때문이며, 현지에서는 3차 팬데믹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니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나의 동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별 일 없으면 바깥출입을 삼가고 사진첩을 꺼내 브런치 앞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함만으로 코로나 시대를 보낸다는 건 참 갑갑한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활보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대리석으로 만들었든 황금으로 포장을 해 둔들..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마스크를 벗고 시내를 활보 하든 멀리 소풍이라도 떠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결심하게 됐다. 지난해 하니와 함께 코로나를 피해 바를레타 근교에 위치한 안드리아 평원으로 나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맘때면 봄이 무르익었을 것이다. 올리브 과수원의 경계석 주변과 과수원에 빼곡한 풀꽃들이 나를 반길 게 틀림없다. 무엇보다 안드리아 평원에 나가면 잠시라도 마스크로부터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영상, 요정(妖精)들의 대화는 비밀
(상략).. 우리는 그런 풍경을 목신(木神)이라 불렀고, 그곳에는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정령은 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령한 기운을 말하는데 종류도 다양하다. 숲(林)의 정령이 있는가 하면 땅(地)의 정령도 있다. 또 빛(光)의 정령, 불꽃(炎)의 정령, 어둠(暗)의 정, 전기(電)의 정령, 물(水)의 정령, 바람(風)의 정령 등이 있고 각각의 하위의 정령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정령들의 조화로 세상은 살아있는 유기체로 영원불멸을 이어간다고나 할까. 참 알아가면 갈수록 신묘막측한 게 조물주의 조화이다.
2021년 4월 2일(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날이 밝았다. 어제의 날씨는 마치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따뜻한 날씨였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더니 그곳에는 때 이른 일광용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 아침 날씨도 화창한 걸 참조하면 어제와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사람들은 코로나 19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지는 것일까..
바를레타 항구를 보호하고 있는 방파제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람을 쇠러나왔다. 그들은 대체로 젊은이들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젊은 여성들은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용을 즐기고 그 곁에는 청년들이 몸에 오일을 두르며 보란 듯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일광욕을 하는 젊은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마스크를 착용했을까.. 방파제에 놀러 온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나도 이들처럼 마스크를 내리고 싶지만 이탈리아 정부 보건당국의 지침에 잘 따르고 싶었다. (나는 소중하니까.. ^^) 그런데 이들은 보건당국의 조치를 우습게 여기는 것인지.. 코로나 19 시대의 바를레타의 젊은이들은 주로 이러한 모습이었다. 신규 확진자가 매일 2만 명 전후로 생기고 사망자가 수백 명에 이르는데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지난 3월 28일 나는 바를레타 시내를 떠나 안드리아 평원으로 산책 겸 운동을 나간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출사(出寫)였다. 바를레타에서 안드리아 평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대략 네 갈래인데, 내가 이용한 길은 시내 중심에서 16번 국도까지 이어지는 뷔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Via Leonardo da Vinci)였다.
그곳까지 걸어가면 16번 국도 굴다리가 나타나고 거기서부터 바를레타-안드리아의 경계가 시작되는 곳이다. 지난 여정(마스크 내리자 봄이 안겼다)은 여기서부터 시작했고, 안드리아 평원은 대략 10킬로미터까지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여정 중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안드리아 평원에 발을 들여놓으면 맨 먼저 올리브 숲이 반긴다. 희한하지.. 올리브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무라는 생각보다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이곳의 올리브 나무는 연로하셔서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뿔리아 주에는 수령이 500년도 더 된 올리브 고목들이 산재한 곳이다."
안드리아로 가는 길에 들어서자 봄은 무르익을 대로 익어 곧 짓무를 것 같았다. 편도 차선을 따라가는 곳에는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자 풀꽃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이때부터 마스크를 내려 턱 밑에 걸치고 풀꽃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때 요정들이 소리쳤다.
"(와글와글)와~ 아더찌다 아더찌.. ㅋ 안넝하떼요. 아더찌, 넘 방가워욤. ^^"
하고 혀 짧은 목소리로 애교 넘치게 말했다.
"그래 아이들아 그동안 잘 있었니? 만나서 넘 반갑구나. 어느덧 1년이 지났네."
라며 내가 말했다. 그러자 풀꽃 요정 아이들은 너도 나도 질세라 이렇게 말했다.
"(왁자지껄)ㅋ 안넝하떼요. 아더찌, 넘 방가워욤. ^^"
그래서 나는 입에다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고 쉿 하며 아이들에게 조용하게 한 다음 요정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표를 뽑는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노랑 꼬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이 대표로 선발됐다. 요정 대표가 내게 말했다.
"ㅋ 아더찌 제가 대표거덩요. 웬지 아세효? ^^"
"ㅎ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말 좀 해 주겠니..? ^^"
하고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ㅋ 저는 아더찌가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잘 알거덩요."
"그래 말해보거라(궁금 궁금) ^^"
하고 내가 말했다.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어떤 경로를 따라 이곳까지 왔는지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사실 등을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더니 요정들의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다.
무화과나무의 새싹은 아예 처음부터 과일을 달고 나온다. 출산의 또 다른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내가 집에서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치메 디 라파(Cime di Rapa)의 노란 꽃 요정이 일러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안드리아 평원으로 가게 된 이유까지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은 이렇게 물었다.
"숙모님은 요.. 흑흑"
그 아이는 뻔히 알면서 시무룩하게 내게 물었다. 지난해에는 하니와 함께 이곳을 찾았지만 혼자 오게 된 사실을 알면서 나의 눈치를 살피며 말한 것이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 미안하구나. 하니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단다. 곧 다시 오게 될 거야."
"아더찌, 코로나가 그렇게 무서워요..?"
하고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이 내게 물었다.
"응, 요즘 사람들이 젤 무서워하는 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 두루 퍼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지. ㅜ"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이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럼 코로나가 우리 친구들을 함부로 꺾거나 못살게 구는 나쁜 사람들과 비슷한 거예요. 아더찌..? ㅜ"
"흠..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ㅜ"
하고 내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괜히 부끄러웠다. 곁에서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올리브나무 목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몹시도 미안해했다. 목신들은 풀꽃 요정들의 삶을 잘 알고 있었다.
농부들은 곧 올리브 과수원을 갈아엎을 것이며 퇴비를 뿌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풀꽃 요정들은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씨앗 속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뽕나무가 앙증맞은 입사귀를 내밀었다. 1년에 단 한차례 볼 수 있는 매우 귀한 풍경이다.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이 내게 다시 물었다.
"아더찌.. 숙모님은 언제쯤 다시 와요? 넘 보고 시포효.. 흑흑"
"에궁.. 울음 뚝! 왜 니가 울고 그래.. 나도 속상해..ㅜ"
하고 내가 말했다. 곁에 서 있던 목신들의 표정도 잠시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밝게 미소 지으며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한낮의 볕은 따사로웠으며 올리브 목신이 사는 나라의 풀꽃 요정들은 졸졸 나를 따라다녔다. 어떤 녀석들은 나의 어깨에 걸터앉아 있기도 했고, 어떤 녀석들은 카메라 위에 턱을 괴고 나의 시선을 따라다녔다.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은 자기가 물었던 질문을 얼렁뚱땅 지나친 내게 다시 케 물었다.
"아더찌, 숙모님은 언제쯤 오시냐고효. 흑흑"
"미안하구나. 그건 나도 자세히 몰라요. 백신 접종이 끝나고 이탈리아의 사정이 좋아져야 한단다. "
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하니의 근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집콕을 하고 있으면 우울해질 것 같아서 매일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는 일 등을 말하는 한편, 거의 매일 통화를 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코로나 때문에 짜증 섞인 말도 들어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랑 까까옷을 예쁘게 잘 차려입은 요정과 풀꽃 요정들은 내가 다시 바를레타로 돌아가는 길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 아이들의 행복해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꽃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봄날이 아니더라도 요정들은 1년 내내 우리들 근처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이 파동을 일으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건 정작 사람들만 모르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목신이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는 것도 알고 보니 그냥 된 일이 아니었지..
다시 한번 더.. 재차 삼차.. 아름다움은 신의 그림자라 말했다. 4월이다. 신의 그림자가 충만한 세상이다.
Lo spirito della primavera che venne nella piana di Andria
il 02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