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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2. 2021

수원 화성, 테마 있는 벚꽃 명소

-수원 화성(水原 華城)의 어느 봄날(상편)

조선왕조 518년의 어두운 역사를 환하게 만든 도시, 수원 화성(水原 華城)의 봄날은 어떤 풍경일까..?!! 



   서기 2021년 4월 초 하루 저녁나절(현지시각), 노트북을 켜고 사진첩을 열어 이맘때(4월 9일) 기록한 수원(시장 염태영) 화성의 벚꽃놀이 풍경을 천천히 살피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열어본 기록 속에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걷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 19 따위의 존재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날씨는 화창했으며 팔달산 아래 화성열차(Hwaseong Tourist Train)가 다니는 도로 곁에는 벚꽃이 자지러지고 있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들이 벚꽃이 만개하면서 화사함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날 수원화성의 화서문(華西門)에서부터 남포루(南砲樓)로 이어지는 길(수원화성 자료 참조)을 따라 출사를 나갔다. 수원 화성의 벚꽃과 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벚꽃의 명소였는데 국내의 유명한 벚꽃축제 장소와 다른 매우 특별한 테마를 간직한 곳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세자와 정조대왕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인 영조대왕에 얽힌 슬프디 슬픈 기록이 묻어나는 곳이다. 



나는 조선왕조의 비극을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됐다. 할머니는 한양에서 가까운 소사의 한 양반가 규수였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와 눈이 맞아 혼인을 하고 아들 셋을 낳고 할아버지께선  일찍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졸지에 청상과부가 되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셨다. 그때 낳은 아들 셋 중에 맏이가 아버지였으며 나는 종가의 7남매(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게 됐다. 아버지는 엄격하셨으며 어머니는 따뜻했다. 거기에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남달랐다. 



손주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형제들 중에 누군가 정직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날에는 사랑의 매로 불렸던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정직하지 못한 일과 형제들 간에 다투는 일이었다. 그 외의 일은 대부분 용서를 하시거나 문제가 생겨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일을 해결하시곤 했다. 



사내들이 많은 집안이라 바깥에서 싸움질을 하거나 불상사가 생기면 그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고 하시며 덮어버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형제들은 스스로 지기 검열을 하며 자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형제들 중에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그날 저녁 집안은 갑자기 냉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어머니께선 정지(부엌)에서 표정이 굳은 채로 형제들을 향해 "잘못했다고 해라"며 나지막이 속삭이신다. 큰형은 그 사이 마당 근처에서 회초리를 구해 들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그동안 어린 녀석들은 바짝 쫄아들 대로 쫄아 곧 시행될 회초리질에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아버지의 눈치만 보게 되는 것이다. 회초리의 시작은 서열 순서대로였다. 큰형 작은형 그다음 나.. 


 

종아리를 걷어붙이고 큰형이 회초리를 맞는 순간 우리는 괜히 징징대고 울먹이며 겁을 낸다. 그리고 내 차례가 다가오면 공포에 질린 듯 "아부지 잘 못 했어요.ㅠ"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잘 못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말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쯤 집안의 분위기를 감지하신 할머니께서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구세주로 등장하시는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악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즉각 행동에 돌입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는 말씀은 몇 마디 안 된다. 할머니는 과장된 어법으로 "니 새끼들 죽일 셈이냐!!(버럭)"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향해 "잘못했다 하고 빨리 도망쳐!"라며 안방 문과 현관문을 열어젖힌다. 



그러면 아버지께선 "엄니는.. 얼라들 버릇 나빠지게요. ㅜ"라며 할머니께 응수를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으레 준비해두신 반박자료(?)를 통해 아버지를 나무라신다. 그때 등장하는 사람이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산)이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혹은 장헌세자, 장조(莊獻世子, 莊祖)로 불린다)와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대왕이었다. 할머니는 영조를 철천지 원수 대하듯 했다. 나중에 안 조선의 역사를 통해 영조가 몸 쓸 짓을 한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 새끼를 살 뒤주에 가둬 죽인 놈이.. 그게 애비더냐!"


이때쯤 아버지께선 대략 난감하다. 아이들 교육용으로 회초리를 든 이유만으로 영조의 못된 짓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매우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 집에는 아니 우리들에게는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아버지가 내리신 징벌의 효과도 컸다. 우리는 자기검열(自己檢閱)을 통해 큰 탈없이 별일 없이 잘 자라게 된 것이다. 그게 언제 적인가..(어른들 모두 하늘나라에 계시니..ㅜ)





주지하다시피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영조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희생된 아들이었다. 영조의 오판을 만든 건 노론의 정치적 음해(당쟁 희생설)로 희생됐다는 게 지배적이다. 일설에는 사도세자가 영조로부터 대리청정(재위 25년(1749)부터 13년간) 기간 동안 정신적 이상설을 말하고 있지만 당치도 않다. 당신의 아버지 영조는 어릴 때부터 지혜롭고 용맹함을 갖춘 사도세자를 총애하며 대리청정을 맡겼는데 시쳇말로 '미친놈'이라서 그를 쌀뒤주에 가두어 죽였을까.. 



사도세자는 평소 문인보다 무인 기질이 강했으며, 15세가 되던 해에는 힘 좋은 무사도 다루기 힘든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자유롭게 다뤘고, 말타기와 각종 무예에 능했다고 전한다. 그런 그가 어느 뜨거운 여름날 쌀뒤주에 갇힌 채 초주검을 경험하며 9일 만에 27세의 짧은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사건이 임오화변(壬午禍變)이었으며, 1762년 (영조 38) ‎7월 4일이었다.



이런 일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정조대왕의 행실로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그는 서슬이 퍼렇던 시절 숨죽이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봤을 것이며, 할아버지 영조의 옷자락을 붙들고 "제발 우리 아버지 살려주세요"라며 애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비(妃)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정조는 즉위식을 연 바로 그날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했다. 죄인(사도세자)의 아들은 임금이 될 수 없다는 흉언(凶言)을 유포시키던 일부 노론 벽파 측에 정면으로 대응한 것이었다. 당시 정치적 음모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정조는 아버지를 복권시키고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 화산(花山) 현륭원(顯隆園)으로 옮겼다. 이때 정조는 지문[홍재전서(弘齋全書 제16권]

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차마 말할 수 없고 차마 쓸 수 없는 일 때문에 슬픔을 누르고 참아가며 피눈물을 떨구면서 써나가겠다."



그리고 정조는 인근에 오늘날의 수원 화성(華城)을 축조한 것이다. 수원 화성의 건축은 당신이 아끼시던 정약용을 통해 성을 축조하는데 유용한 도구를 개발하라고 지시하여 거중기를 고안하게 했다. 화성은 1794년 착공하여 1796년 완공되었는데 기록은 이러하다.


성의 둘레는 5,744 m, 면적은 130 ha로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 형태의 성으로 문루 4 개, 수문 2 개, 공심돈 3 개, 장대 2 개, 노대 2 개, 포(鋪)루 5 개, 포(砲)루 5 개, 각루 4 개, 암문 5 개, 봉돈 1 개, 적대 4 개, 치성 9 개, 은구 2 개 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하나의 성곽을 이루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수원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며, 수원 화성에 발을 들여놓을 때쯤이면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영조의 비극적 사건과 정조 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정든 화성에 봄이 오시면 팔달산 아래는 벚꽃은 물론 봄맞이에 나선 진달래와 개나리가 자지러지는 것이다. 효심 깊은 정조대왕 덕분에 조선왕조 518년의 어두운 역사를 환하게 만드는 벚꽃들의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어느덧  화서문에서 출발해 남포루에 다가서고 있다. 꽤 많은 분량의 여행사진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 1인이 발견된다. 그녀는 청룡열차에 타고 있는데(확인되셨는지요.^^) 포스트를 편집하던 중에 그 모습을 보니 코로나 시대가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다. 



서기 2021년 4월 초하루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여전히 참담하다. 신규 감염자 수(23.649)와 사망자 수(501)는 상상을 불허한다. 조금 나아지나 싶어도 여전히 우려할만한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Bollettino Coronavirus Italia, oggi 23.649 contagi su 356.085 tamponi e 501 morti per Covid: i dati di giovedì 1 aprile)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은 도무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도시는 정적에 휩싸였으며, 낮에 잠시 바닷가로 외출하면서 본 시내 풍경은 죽음의 도시를 방불케 하고 있다. 카페 문화가 생활화된 이탈리아의 카페 대부분은 문을 걸었거나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안 보이는 것이다. 수원 화성에 벚꽃놀이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보니 일상의 소중함이 다시금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곳은 정조대왕의 이름을 딴 정조로 777번지이다. 성문을 빠져나가 돌아서면 남포루가 우측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벚꽃과 성벽의 질감이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수양벚꽃을 만나는 행운의 날이기도 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황홀한 장면 앞에서 잠시 넋을 놓았다. <계속>


Un'altra luogo famoso del ciliegio in Corea del sud
il Primo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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