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21. 2021

설악산_5월에 남겨진 그리움

-아내와 함께한 오래된 여행 사진첩

나이가 들면 식품 하나가 더 필요하단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선호하는 '잘난 오리 새끼'에 대해 잠시 살펴보도록 한다. 염라대왕의 비하인드스토리는 생략하고..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염라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5.7일 (35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염라대왕청에는 업경(業鏡)이라는 게 있어서 죄인들의 생전의 죄를 비추어 그에 따라 벌을 준다고 한다. 

여기에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업경대(業鏡臺)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방아로 죄인을 찧는 무서운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보통 업경대 안에는 몽둥이로 소를 때려죽이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것은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사람의 죄가 업경에 나타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영상, 설악산_5월에 남겨진 그리움




그러니까 생전에 악업을 지은 사람들의 죄가 고스란히 드러나 그에 걸맞은 지옥의 벌을 받는다는 것.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롭고 착하게 살아가겠는가.. 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옥은 고사하고 천당까지 부인하는 무리들이 잘난 척하고 자빠져 사는 곳이 태양계의 작은 행성 지구(地球)라는 곳이다. 



설악산_5월에 남겨진 그리움




딴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도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정말 잘났다면 모를까..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하여 이웃을 힘들게 하는 무리들이 여전한 것이다. 그런 인간을 가리켜 잘난 체하는 오리 새끼 혹은 잘난 오리 새끼라 이름표를 붙였다. 그중 한 녀석이 어느 날 염라대왕 앞에서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이다. 



염라대왕: 니가 지은 죄를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잘난 오리 새끼: 그렇다니까요.(깐족깐족) 대왕님! 아마도 옥졸이 명부를 잘 못 봤을 겁니다.

염라대왕: 그렇다면 니가 세상에서 한 일을 낱낱이 보고해 보려무나.

잘난 오리 새끼: 제가요..(깐족깐족) 얼마나 잘났는지 세상 사람들은 다 알아요.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소풍을 가도 장기자랑은 늘 제 몫이었고요. 술자리에 가면 재미없는 남들 입 틀어막고 저 혼자 떠들었어요. 아이들이 잘 못하면 그렇게 하지 마라고 타일렀어요. 직장에서는 4대 문 바깥 학교 출신들이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했고요. 노래방에 가도 혼자 마이크를 쥐고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었지요.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니가 젤 잘났다'라고 늘 추켜세워주었지요. 저는 뭐 하나 빠짐없이 완벽했거든요. 주절주절..



잘난 오리 새끼가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동안 염라대왕은 업경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잘난 오리 새끼는 여전히 세상에서 잘난 척한 일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질했다. 그리고 염라대왕으로부터 명이 떨어졌다.


발 아래로 한계령 계곡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염라대왕: 됐구나 잘난 오리 새끼야. 그만 하려무나.

잘난 오리 새끼: 아직 할 말이 더 있는뎁쇼.

염라대왕: 됐다! 잘난 척 그만하고 업경대를 들여다봐봐..

잘난 오리 새끼: (업경대를 들여다보며) 아.. 이거 뭐가 잘못된 거 같은뎁쇼.ㅜ 



업경대 속에는 잘난 오리 새끼가 잘난 척하는 동안 녀석의 주변에 있는 친구나 동료들과 이웃들의 속마음이 비디오처럼 잘 찍혀있었다. 녀석이 잘난 척하는 동안 이웃들은 어쩔 수 없이 녀석과 어울려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두 번 다시 녀석과 상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업경대를 다시 들여다보아라. 니가 염라청까지 올 때까지 너는 줄곧 혼자였지. 친구 하나 없잖아."

"네, 그건 사실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과 이웃들이 안 보였어요."


하고 잘난 오리 새끼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 친구들은 지금 모두 극락정토에 가 있단다. 천국 말이다."


하고 염라대왕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 잘난 오리 새끼 같은 친구들이 대한민국에 너무 많다는 사실 등에 대해 말해주었다. 정치판은 물론 정치검찰 사법부 적폐세력 등등 더 이상 썩을 데가 없을 정도로 썩어있었다. 얼마나 썩었으면 OECD 37개국 중에서 청렴도 꼴찌의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학연, 지연, 혈연, 흡연(?) 등을 빌미로 엮이고 또 엮여서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난 오리 새끼는 염라대왕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사색이 되다가 마침내 창백해져 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염라국을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술에 침도 못 바르고 염라대왕께 물었다. 



"존경하는 염라대왕님(여기가 법원이냐ㅜ) 그렇다면, 이 잘난 오리 새끼가 죄 사함을 받을 수는 없습니까.ㅜ"

"암 이따마다..!!"


라고 염라대왕이 즉시 대답했다. 그러자 사색이 되었던 잘난 오리 새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뒤둘아 보니 떠나온 길이 까마득 하다.


"사실이 그러하시다면 그 방법을 알려주시어 지옥불의 엄벌을 피할 수 있도록.. 통촉하시옵소서! 대왕마마!!"


하고 잘난 오리 새끼가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잘난 오리 새끼를 노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잘난 오리 새끼의 평생의 '타임라인'을 돌아보며, 잘난 체하는 동안 가 보지 못하거니 형식적으로 싸돌아 다닌 흔적을 보고 싶어 헸다. 매우 간단한 방법이었다.



"잘난 오리 새끼야 잘 듣거라. 니가 세상에 사는 동안 옥황상제께서 선물한 신의 그림자를 담은 사진첩을 내놓아 보던지 낱낱이 고해보거라"



잠시 생각에 잠긴 잘난 오리 새끼는 급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가 잘난 체하는 동안 이웃을 못살게 굴었고, 잘난 체하는 일에 바빠 남들 다 가는 소풍 조차 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니까 기념 사진 한 장, 풍경 사진 한 장 제대로 남겨두지 못했던 것이다. 또 잘난 체하는 동안 당연히 SNS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 흔해 빠진 블로그 하나 가질 수 없었고, 이웃에게 댓글 한 번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잠시 후. 그 잘난 오리 새끼는 옥졸에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기 2021년 5월 20일 저녁(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사진첩의 장소는 설악산 서북주릉에 위치한 귀때기청봉이다. 이 봉우리는 한계령 삼거리에서 대승령 방향으로 1시간 거리에 있으며, 반대 방향은 끝청봉-중청봉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은 이 봉우리가 설악산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삼 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또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분다고 하는 데서 유래됐다고도 전한다. 



하니와 내가 이곳 귀때기청봉을 등반할 때는 어느 해 5월 30일이었으므로, 바람이 매섭게 불기보다 따가운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때 만난 풍경이 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천상의 풍경이었다. 산 아래는 진달래와 철쭉이 꽃잎을 다 떨굴 때 이곳에서는 철쭉이 만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귀때기청봉은 의외로 깎아지른 봉우리가 길게 늘어서 있고,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돌아가거니 비상 통로가 없는 곳이다. 그 산중에 하니와 나.. 두 사람이 볕을 가르고 숲을 지나며 능선을 따라 철쭉을 바라보며 산행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메라는 화질이 별로였던 DSLR을 소지했고, 자동차는 장수대 자연휴양림 앞에 주차해 두었다. 우리가 한계령까지 진출하면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본래 위치로 돌아올 심산이었다. 하루가 꼬박 걸리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그녀의 모습과 당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참 고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곳을 다녀왔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귀때기청봉은 물론 설악산 구석구석으로 발품을 판 곳.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그리움이 깃든 풍경으로 변하고 말았다.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귀때기청봉 끄트머리 풍경이다. 길은 보이지 않는다. 줄을 쳐 둔 곳이 길이며 넙쩍바위 위를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저만치 작은 봉우리 바로 아래에 한계령으로 가는 길이 있으며 봉우리를 따라 계속 가면 소청봉 중청봉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늘 아침 하니와 통화 중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가 끼어들었다. 한국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이탈리아 정부와 보건 당국은 5월 18일 현재 야간 이동제한 관련 사항을 발표했다. 야간 이동제한 시간을 단계적으로 축소 후 폐지하는 방안이었다.  



5월 19일부터 야간 이동제한 시작 시간을 23시로 조정(23:00~05:00간 이동제한)하고, 6월 7일부터 야간 이동제한 시작시간을 24시로 조정(24:00~05:00간 이동제한)하며, 6월 21일부터 야간 이동제한 조치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백신 접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곧 백신 접종을 한다고 해도 빨라봤자 6월은 자나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지난해처럼 가을에 다시 코로나가 창궐하는 날이면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때부터 경우의 수가 다시 생길 수도 있으므로 추이를 잘 살펴봐야 했다. 


발 아래로 내설악 백담사 계곡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보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그녀가 지난해 10월 23일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시간이 어느덧 7개월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무시로 사진첩을 열어놓고 그녀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길 염원하는 것이다. 



사진첩 속에는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타임라인에 빼곡했다. 청춘일 때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안 청춘이 되면 듣보잡 식품이 하나 더 생겨난다. 매일 밥만 먹고 살 때와 다른 식품이 필요한 것이다. 그게 마음으로 먹는 추억이라는 식품이다. 제 잘난 맛에.. 잘난 척하며 살아왔던 세월 끄트머리에는 장차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기다릴 것이다. 아름다운 영혼은 아름다운 곳으로.. 반대의 경우는 그에 걸맞은 곳으로 가게 될 게 아닐까.. 



코로나 시대가 마무리되어도..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설악산 귀때기청봉의 5월이 다시 그리워진다.


Un vecchio album fotografico di viaggio con mia moglie
il 20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잠에서 깨어난 고혹스러운 요정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