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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13. 2021

그들만의 은밀한 짝짓기 소리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6월

까마득한 유소년 기를 소환하는 소리에 반하다!!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가르가노 국립공원(Parco nazionale del Gargano)이 보인다.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에 비교했을 때 장화 뒤꿈치에 해당하는 곳이며. 바를레타는 뒤꿈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아드리아해를 곁에 두고 길게 늘어선 종려나무는 500년도 더 된 것들로 이 도시의 명물이다. 



가로수길을 따라 운동을 하면 대략 4~5킬로미터까지 길게 이어진다. 왕복 2시간 이상의 거리를 아침마다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집에서 운동장소로 나가면 맨 먼저 아드리아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로 가게 된다. 그때 늘 마주치는 풍경이 풀숲이며 이 도시에서 흔치 않은(두 곳 발견) 용천수가 나오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작은 습지가 생겨 습지에서 만날 수 있는 생물과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된 요즘은 풀이 마르고 수생식물(水生植物)이 새파랗게 잎을 내놓고 있다. 아침운동을 시작한 어느 날부터 나는 이곳을 지나치면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분명히 개구리 소리를 닮았는데 한국에서 들었던 개구리와 울음소리(개굴개굴 개굴)가 다른(개꾸락개꾸락개에꾸락) 것이다. 



그나마 이런 개구리의 울음소리에 익숙했던 건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 빠르마의 꼴로르노 농촌에서 개구리 소리를 들어봤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참 이탈리아스러운 개구리 소리.. 



영상, BARLETTA, IL SUONO DELLA RANA ITALIANA_그들만의 은밀한 짝짓기 소리




겉모습은 반도 국가로 우리와 닮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물론 사람들의 생감새와 문화까지 너무 다른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3차례에 걸쳐 녀석들의 은밀한 짝짓기 소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지난 6월 6일부터 이틀 전 6월 12일까지였다. 



바를레타 습지의 식물들




어떤 사람들은 "그깟 개구리 소리가 뭐라고.."싶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소중했다. 까마득한 유소년 기를 소환하는 소리에 홀딱 반한 것이다. 하지감자가 출하될 시기 고향의 산골짜기로 동무들과 놀러 가면 시끄러울 정도로 개굴 거리던 녀석들이었다. 뒷마당 실개천에서는 밤새 개골 거리던 녀석들.. 



그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그들이 설 자리를 잃고 고향은 점점 더 멀어진 것이며, 종국에는 가슴에만 남아있던 아스라한 풍경이 개구리의 짝짓기 소리였다. 양서류에 속한 개구리의 종류만도 무당개구리나 두꺼비, 청개구리, 맹꽁이 등이 있다. 



용케도 나는 이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온몸이 빨강 파랑으로 물든 무당개구리였으며, 맹꽁이와 두꺼비도 자주 봤던 녀석들.. 경칩에 깨어나는 개구리는 눈을 뜨자마자 짝짓기를 시작하고, 물이 고인 논바닥이나 도랑 같은 곳에 알을 낳고 올챙이가 되어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국민학교 자연 시간에는 개구리알이 부화하여 올챙이가 되고 다리가 생기는 등 성장과정을 신기한 듯 학습해 가고 있었다.



아무튼 거의 소음 수준에 이른 개구리울음소리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그게 짝짓기를 하기 위한 구애의 한 모습이라는 걸 알 때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을 직접 관찰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들의 짝짓기는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소가 바를레타의 한 습지 수초 아래서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 몇 마리의 개구리들이 수초 위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그들의 짝짓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개꾸락개꾸락개에꾸락..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는 광활한 평원을 지닌 농촌의 모습이지만, 북부 지방 포강(Fiume Po) 유역과 달리 논이 없는 지역이어서 사람들은 우리처럼 개구리에 대한 추억이 빈약한 편이거나 없는 편이다.



또 드넓은 백사장과 아드리아해를 낀 도시에서 작은 습지가 사람들의 눈에 도드라질 이유도 없어 보였다. 다만, 몇몇 시민들이 아침이 되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때 습지 곁을 무심코 지나칠 뿐이었다. 개도 사람도.. 



이틀 전에는 한 아주머니가 개를 데리고 가다가 개구리 소리를 녹화하는 나를 보면서 "뭘 보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개구리 짝짓기요. 씩~^^"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딴청을 피우며 "습지를 깨끗이 정리하면 좋을 걸.."하고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라고 내가 대답했다. 나는 내일 아침(현지시각) 다시 녀석들 곁으로 지나치게 될 것이며, 녀석들의 은밀한 짝짓기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참고로 내가 살고있는 아드리아해의 매우 특별한 도시 바를레타를 소개한 영상을 첨부해 드린다.

Una bella vista del nostro villaggio_BARLETTA
il 12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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