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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19. 2021

그곳에 달팽이 가족이 산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6월

천상천하달팽이독존..?!!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아침 햇살은 곱다. 해님이 아드리아해 너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시작하기 전부터 바쁜 아이들이 있다. 녀석들은 달팽이 무리이다. 바를레타 사구의 한쪽 버려진 땅에서 살고 있는 녀석들은 해님을 용케도 알아차린다. 용케도.. 



이건 달팽이에게 무례한 말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지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나쁜 버릇인 것이다. 이런 일은 인간계에서도 흔한 일이다. 남 보다 더 낫다는 우월감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을 모르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습관인 것이다. 



요즘 나의 하루 일과는 아침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서 대략 2~3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때 만나는 풍경이 해돋이며 사구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 열무 꽃 등 자연의 풍경이다. 아침 햇살에 비친 풀꽃들은 너무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다. 



산책길 옆에서 하얗고 보랏빛이 도는 꽃잎을 흐드러지게 내놓아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저 만보계를 팔에 차고 앞만 보고 바쁘게 걷거나 뛰는 게 전부이다. 그렇지만 나의 오래된 습관은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눈에 띄는 장면은 하나라도 더 카메라에 담아야 직성이 풀린다. 바쁘게 걷다가 잠시 서서 자연계의 모습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그때 만난 녀석들이 달팽이 무리이다. 그냥 한 두 마리가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작은 흙더미 위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어서 수를 헤아릴 수 조차 없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존엄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 세상의 중심에는 인간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규정해 놓고 전쟁과 살인과 강도짓 등 차마 인간의 존엄을 말할 수 없는 일 등에 대해서 태연하다. 인간의 생멸은 그렇게 왔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아침운동의 반횐점 근처에서 달팽이들을 만났다. 녀석들은 인간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연약한 생물이다. 



그런 녀석들이 해돋이가 시작되면서부터 일제히 더듬이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달팽이 무리를 뚫어지게 관찰했다. 녀석들의 하루 일과는 응가를 하는 일이 먼저였다. 풀잎을 자세히 보니 검은 줄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녀석들의 배설물이다. 



나는 달팽이가 응가도 하지 않는 생물인 것으로 관심 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달팽이를 키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녀석들이 대식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느려 터진 녀석들의 활동량은 많고 이동 거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2만 개가 넘는 이빨(치설이라는 돌기)로 엄청난 량의 먹이를 먹어치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오직 더듬이로 일상을 관찰하고 투명해 보이는 몸뚱이로 밤과 낮을 알게 되는 것인지.. 신비한 동물이 틀림없었다. 조물주가 달팽이를 만들어 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달팽이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녀석들의 겉모습만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넘은 달팽이 이 넘은 조가비 저 넘은 개구리 조잘조잘 참새 등으로 구분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녀석들의 생각이나 사고방식 등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습성을 관찰한 결과만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인간만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이 아니라 달팽이도 천상천하달팽이독존이 되는 것이랄까.. 



녀석들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인간의 생각만으로 세상을 규정짓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풀잎 위에서 느리게 이동하는 녀석들은 교통 혼잡도 없고 충돌하는 일도 없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겉모습만 달랐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생명들.. 나의 아침을 깨워준 건 해돋이가 전부가 아니었어. 살아가면 갈수록 신비로움 가득한 이 행성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Lì vive una famiglia di lumache_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il 18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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