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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09. 2021

D-3, 삽질하는 남자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대략 1시간 반 만에 일어난 평범한 사건, 그러나 우리가 잊고 살던 재밌는 이야기..?!!


   서기 2021년 8월 8일 일요일 아침,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어김없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드리하해가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서면 종려나무 가로수길 너머 바다는 까맣다. 아직 해돋이가 시작되기 전에는 가로등 불빛만 유일하다. 



노랗게 축 처진 가로등 불빛 아래로 까만 길냥이 한 마리가 하릴없이 어슬렁거린다. 녀석은 늘 바닷가로 이어지는 계단 근처 습지에서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일까.. 습지 가까이로 다가서면 녀석은 지근거리에서 납작 엎드려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녀석은 그렇게 엎드려 있으면 내가 모를 줄 아는지.. 아무튼 녀석은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 



녀석의 곁에 위치한 늪지대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개구리울음소리가 멈추었다. 짝짓기가 끝난 계절.. 그 녀석들은 뭘 하고 자빠졌는지 조용하기만 하다. 우리가 학습해온 바에 따르면 녀석들은 겨울이 되면 동면을 하러 갈 텐데.. 이곳의 겨울은 그다지 혹독하지 않아 동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 본격적인 우기도 시작되지 않은 바닷가 습지.. 더군다나 그곳은 가로등 불빛 때문에 숙면(?)도 어려운 장소이다. 매일 아침 그 곁을 지나면서 혹시나 늦둥이를 낳으려는 개구리는 없는지 귀를 기울여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가로등 불빛이 훤한 종려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30분만 걸으면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장소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당일의 해돋이 모습이 결정되곤 하는 것이다. 구름이 많은 날의 해돋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가로등 불빛은 대략 2.5km까지 이어지고 다시 2,5km 구간은 어둠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다음 해돋이 직전에 세상이 밝아지면서 어둠에 잠시 감추어진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매일 기록하는 해돋이는 대략 2시간 30분의 시간차를 두고 타임라인을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물들이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둠으로 나뉘는 세상에서 포착되는 실루엣이 사진을 찍는 묘미로 등장하는 것이랄까.. 이날은 아침운동 전체 시간 중 1시간 반에 해당하는 타임라인에 평소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장소는 내가 찜해둔 해돋이 명소였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삽질.. 삽질하다는 뜻은 삽으로 땅을 파거나 흙을 떠내다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재밌는 어원이 있다.  (속되게) 헛된 일을 하다 또는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데.. 이날 만난 한 남자가 그랬다.



이날 해돋이는 아드리아해 위를 붉게 물들이 발그레한 띠만 봐도 알 수 있다. 평소에 색감이 보다 거뭇하면 해무가 짙게 깔려있는 것으로 해님은 여러 겹의 커튼을 거두면서 얼굴을 내밀곤 하다. 그러나 그럴 일이 없다. 해돋이 시간에 맞추어 어김없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 것이다.



반환점을 돌 때부터 해님이 보고 싶어 지고 걸음은 더 빨라진다. 어느덧 해님에 길들여진 나..



해님도 내게 길들여졌는지.. 수평선 너머에서 콩닥콩닥 설렘의 발그레한 표정을 쏟아붓고 있다.



반환점을 돌아 해돋이 명소를 발길을 옮기면 이때부터 바닷새들이 나를 따라다닌다. 녀석들이 해돋이가 시작되면서 평소에도 그런 날갯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의 뷰파인더 앞에서 날갯짓을 하는 게 좋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해돋이 명소로 발길을 옮기던 중 멀리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위로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 알갱이를 만나게 된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놀라운 광경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해돋이 명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수평선 위에는 해님의 출현을 알리는 빛이 도드라진다. 사진과 영상에서 변화되는 그라데이션을 통해 해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해님이 얼굴을 내밀 때 보다 이때가 가장 설레는 때이다.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변한 곳..



그 장소에서 내려다보니 한 남자가 갯바위를 들추거나 삽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그 남자가 하는 일을 알게 되면서 속으로 빵~ 터지고 말았다. 그는 정말이지 삽질을 하고 있었다.



영상,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il 08 Agosto 2021 삽질하는 남자




서기 2021년 8월 8일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해님이 수평선 너머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 때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아침운동을 기분 좋게 만드시는 해님..



해돋이가 시작된 이후로 장소를 옮겨 나는 삽질하는 남자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하세요?(웬 삽질?)"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갯지렁이를 잡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다시 "아하 그렇군요. 낚시 준비를 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맞아요. 갯지렁이를 잡아 낚시에 쓰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럼 몇 마리나 잡았어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바다) 바닥이 워낙 딱딱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변의 갯바위 근처를 삽으로 찔러보였다. 그리고 "갯바위 아래에 녀석들이 살고 있기도 합니다"라면서 작은 갯바위를 들추어 봤다. 허당이다. 해변은 그의 삽질로 어수선했다. 그런 그에게 "삽질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데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흔쾌히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작품 명.. 삼질 하는 남자 1인.. 그는 여전히 내 앞에서 깨끗한 아드리아해 모래밭에서 삽질을 계속했다. 바다낚시를 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낚시가게에서 팔고 있는 미끼(갯지렁이) 대신 바닷가에서 갯지렁이를 잡고자 할 때는 갯지렁이가 서식하기 좋은 개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를레타 외항의 바닷가 개펄로 가 보시지 그랬어요"라고 일러주었다. 



그곳에는 조개가 살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개펄임을 알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 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런 것도 알고 있어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미 내게 갯바위 해변이 삽질이 안 될 정도로 딱딱하다는 것과 깨끗한 모래밭을 삽질로 뒤진 후,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계속 삽질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며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해님이 그 사이 수평선 위로 둥실 떠올랐다. 돌아서는 길에 삽질하는 남자 1인을 생각해 봤다. 그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나 보다 빨랐으며 자동차로 이동했다. 최소한 새벽 4시 반에서 5시쯤 집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내가 집을 나서는 것과 비슷한 시각.. 그는 해돋이 명소에서 삽질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어를 잡을 꿈을 꾸고 있었으며 비용을 들여 이곳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의 곁에는 텅 빈 작은 바케스가 있었다. 대략 50세쯤 보이는 한 남자가 새벽부터 갯지렁이 포획에 눈이 어두웠는지.. 아무런 소용도 없는 삽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그런 것일까.. 소용없는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 억만장자가 되어 돈을 쌓아두는 일이나.. 권력을 위해 당신을 망치는 일을 하거나.. 가십에 열중한 나머지 시시덕거리거나.. 보다 고상한 일이라면 책을 수백수천 권 읽거나.. 사람들 앞에서 뿜 뿜 뽐을 내거나.. 해님에 미친 1인이거나.. 암튼 삽질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머리를 스쳐 지나면서 혼자 씩 웃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삽질을 하고 사는 것인지 궁금하다. 씩~^^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Un cacciatore di nerèide
il 09 Agost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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