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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29. 2021

만추,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우리 생애 최고의 단풍 설악산 공룡능선 속으로


우리는 어디쯤 가고있는 것일까..?!!



세월 참 빠르다. 서기 2021년 10월 28일(현지시각) 아침나절, 우리가 살고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선선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가운데 황금빛 고운 햇살이 고도로 쏟아지고 있다.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 돌아오시면 하니와 나는 집에 붙어있는 법이 없었다. 어디론가 싸돌아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시월의 마지막 밤.. 우리는 언제인가 시월의 마지막 밤을 구룡령에서 보냈다. 온 산이 울긋불긋한 산 허리를 가로질러 고불고불 구불구불 이어진 아스팔트길이 구룡령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만추의 구룡령은 정말 아름다웠다. 구룡령 골짜기에 방을 얻어 놓고 밤이 오시기를 기다린 끝에 희뿌연 은하수를 만날 수 있었다. 빛의 간섭이 없는 구룡령에서 바라본 하늘은 반짝반짝 별들이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만날 수 없던 은하수와 별들이 동화속에 등장하는 삽화처럼 하늘 가득했다. 이런 날.. 



세상의 수 많은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년중 단 한차례 하늘이 선물해준 우주의 쇼를 구룡령에서 올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을이 아니면 연출되지 않는 것이다. 가을이 잉태한 참하디 참한 풍경을 그녀와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것도 매우 제한된 시간이었지..




그게 언제적이었나..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에 둥지를 튼 이후에는 구룡령에서 올려다 본 시월의 마지막 밤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둥안 숱하게 봐 왔던 대한민국의 단풍을 잠시 잊고 산 것이다. 그런데 10월이 오시면..



시월의 마지막으로 치닫는 시간이 도둑처럼 다가오시면 자꾸만 자아꾸만 조국의 아름다운 가을을 떠올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틀 전에는 우리가 만난 생애 최고의 단풍이 오롯이 남아있는 공룡능선의 사진첩을 열어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등장한 노랫말이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한 '잊혀지 계절'이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참 희한하지.. 이 노랫말은 최소한 중년이 넘어야 그 맛을 제대로 알게되는 것이다. 요리사가 제 아무리 요리를 잘 해도 식도락가가 아니면 그 맛을 잘 모르듯이.. 똑같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라 할지라도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이랄까..



중년과 장년 그리고 노년의 나이가 제각각 다른 삶의 맛을 내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30대에 구룡령이나 공룡능선을 다녀왔다면 저 먼 우주에 빼곡히 박힌 은하수는 물론 까만 천(?)에 촘촘하게 박힌 별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을 것이다. 코 앞에 있는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들며 밤하늘은 안중에도 없는 것.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나의 기준이다.



그런데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들면 당신의 존재감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내 주변의 환경이 주체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룡능선에서 만난 알록달록 아름다운 단풍이 나를 닮은 듯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단풍과 나..



사노라면 우리는 맨날 청춘인줄 착각을 하게된다. 맨날 푸르른 5월인줄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을 지내 놓고 보면 세월 정말 빠르다. 활 시위를 떠난 쏜살같이 빠르다.



그게 유년기에는 시속 5km, 아동가에는 12km, 청소년기에는 18km, 청년기에는 29km, 중년기에는 49km, 장년기에는 64km, 노년기에는 65km 이상으로 점점 더 가속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 청춘인 우리는 시속 65km로 질주하는 타임머신에 올라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랄까..



우리는 공룡능선 초입의 마등령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민치서 날씨 변화가 목격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단풍 사이로 안개구름이 스멀스멀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설악동에서 비선대까지 그리고 다시 금강굴로 이어지는 깔딱고개를 지나 마등령까지 도착하는 여정만 해도 여간 힘들지 않다. 그 일을 코스를 바꾸어가며 어느덧 7차례를 거듭하는 동안 공룡능선은 시침처럼 우리 앞에 놓인 걸 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1275봉은 물론 공룡의 등을 따라 희운각까지 도착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공룡능선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퇴로나 탈출구가 없다. 무조건 전진이다. 공룡의 등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길이 이어지면서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공룡능선은 우리 행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당의정으로 주게된다. 그 달콤한 맛에 빠져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는 동안 단풍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푸르기만 하던 잎사귀에 알록달록한 물이 든 건 세상을 달관한 인격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어느날부터 눈에 띄지도 않게 사부작 사부작 물들기 시작한 잎사귀에 삶의 연륜이 오롯이 묻어나며 먼 길을 떠날 차비를 갖추는 것이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한 이별식..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패티김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겨울은 아직 멀리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의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싶어라



아 그대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싶어라



우리가 잘 아는 가수 페티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중년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오는 동시에 청춘을 뒤돌아 보고 있는 아쉬움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싶어라..고 하는 아쉬움 혹은 애절한 마음은 첫 소절에 다시 묻어난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겨울은 아직 멀리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의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시간을 지내놓고 보면 떠날 때가 언제인지 잘 알게 된다. 누가 등을 떠밀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내디딘 발걸음..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돌아설 수 없는 공룡능선은 그래서 우리네 삶을 쏙 빼 닮았다. 우리가 지나온 등 뒤로 알록달록한 단풍이 자지러진다. 그러한 잠시 안개구름 사이에서 이슬비에 젖은 잎사귀들이 애처롭게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나직히 입을 연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겨울은 아직 멀리있는데


중년이 오시면.. 우리 생애 중년을 맞이한다는 건 복 받은 일이다. 생애를 통해 처음으로 당신을 느긋하게 돌아보게 되며 절정에 이른 행복을 맛 보게 되는 것이다.



공룡능선에 들어서자 능선 오른쪽 아래로 한계령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안개구름 사이로 잠시 볕이 쏟아진다. 아주 잠시 뷰파인더에 얼굴을 내민 설악의 자태..한시라도 빨리 능선을 통과해야 하지만 좀 더 머물고 싶다. 좀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만나는 공룡능선의 빼어난 단풍과 두 번 다시 돌아갈 시간적 여유가 없는 중년의 삶..



더군다나 우리는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그리움으로 변한 능선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사랑했던 곳.. 우리 삶에 언제 이런 날이 또 있었던가. 포스트를 끼적거리는 동안 하니가 바를레타 재래시장을 다녀오면서 야채를 잔뜩 사들고 왔다. 그리고 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000이 누군가와 헤어질 때 지은 노래지.." 하고 말했다. 그런 잠시 후 "우리는 날마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연습을 하지.."하고 내가 말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il migliore fogliame della vita e stagione dimenticata
il 28 Otto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di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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