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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0. 2021

달님이 사랑하는 바다

#3 강화도(江華島)의 재발견


달님은 무엇을 궁금해할까..?!



   서기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아침(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아침이 밝았다. 하니는 지난주에 담근 올리브 열매 절임을 만지작 거리고 있고, 나는 사진첩을 열어 우리가 다녀온 스케치 여행의 풍경을 만나고 있다. 그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너무도 잘 아는 강화도 외포리의 한적한 바닷가.. 



조금 전에 우리는 외포항에서 조금 떨어진 조그만 야산에서 만추와 어우러진 개펄(외포리에서 장화리까지 그 너머)을 만나고 왔다. 그리고 다시 외포항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때 만난 바닷가 풍경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곳이자 바닷물의 흐름이 빠른 곳이다. 바다라기 보다 강에 더 가까운 곳이랄까.. 



바닷가에서 맞은편 석모도 등의 나지막한 산을 바라보니 울긋불긋 만추가 더 나아갈 곳도 없어 보였다. 오늘 아침 사진첩을 열면서 맨 먼저 머리에 떠올린 장면은 오래전에 감동적으로 읽었던 <성 프란체스코>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기록한 이 책 속에는 기적이 무수히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내가 만난 기적을 소환하며 프란체스코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기적(奇蹟)..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단출하다. 인간에 의해 증명할 수 있는 자연, 과학 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을 말한다고 한다. 인간의 능력 바깥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현상이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이 같은 사실을 프란체스코의 삶에 견주어 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는 1226년 10월 3일 이탈리아 중부 지역 움브리아 주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당신의 이름 앞에 아시시가 따라다니는 이유이며 기적이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 일어난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몸에 오상(五傷, 예수의 몸에 난 상처)이 나타날 때까지 당신이 발길이 닿은 곳 혹은 발길이 닿는 어디든지 기적과 함께 했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처형될 당시의 형편을 묵상할 때 하늘에서 (세라핌) 천사가 내려와 당신께 상흔을 입히셨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보고도 믿지 못할 것이나 가톨릭 신자들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기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무 한 테나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로부터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기적과 다름없는 이런 현상보다 당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일어났던 기적 같은 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꽃들이 노래를 했으며 뭇새들과 동물들이 당신을 따라다닌 것이다. 그렇다면 프란체스코 외 일반인들에게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일까.. 외포리의 만추 풍경을 앞에 두고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일면 돌아보고 있다. 



그녀와 함께 스케치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얼마 후 나는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을 했고 유학을 떠나기 전에 이탈리아어 수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교대역 근처에 위치한 한 어학원의 담임 선생님은 이탈리아에 보다 더 친숙하기 위해 이탈리아 이름 하나를 골라라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름을 알 수 없던 당시에 담임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성이 빼곡히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살피기도 전에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를 생각해 냈다. 나는 그 즉시 나의 이탈리아 이름을 '프란체스코'로 지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내 가슴에 박히던 날부터 나는 프란체스코로 불렸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코.. 내 곁을 스쳐간 적지 않은 이탈리아인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런 얼마 후 이탈리아로 떠난 내 곁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성인의 몸에 나타난 오상의 흔적은 없었다.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나를 둘러싼 일들은 기적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리스또란떼로 떠나고.. 그곳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귀가하여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일들이 기적이라고 말해야 옳은 것들이었다. 인생 후반전에 뛰어든 요리사의 세계가 만만치 않음을 물론이었다. 누군가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탈리아 애 둥지를 틀 수 있었을까..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오상의 흔적 외에 일어나는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자연의 한 현상이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기적의 현장.. 



달님은 하루에 두 번씩 외포리의 개펄을 들여다본다. 당신께서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두 번씩이나 보고 싶어 했을까. 우리는 이런 현상을 밀물과 썰물로 말하고 있다. 외포리 사람들은 이런 물 때를 이용해 고기를 잡아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밀물과 썰물.. 



그러나 하늘이 내려준 이 같은 현상을 묵상해 보면 오상 이상의 기적이 날마다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동의 나날이 당신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것이랄까..


외포항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바닷가에는 갈매기들이 그들과 함께 날갯짓을 하거나 먹이를 주워 먹고 있다. 외포항에서 석모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으며 동행하는 녀석들.. 그들은 여행자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에 열광하고 있지만 사실은 하늘이 보낸 메신저나 다름없다. 공허한 하늘에 날갯짓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달님은 하루에 두 번씩이나 개펄을 열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우리가 말하는 일상이 달님이 베푸시는 기적이란 걸 알게 될 때쯤.. 우리는 보다 더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달님이 엄청 사랑하는 바다가 우리 곁에 있었다.


il Nostro viaggio in Corea del sud_Isola Gangwha
il 20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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