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와 함께 다시 찾은 돌로미티 여행
여러분들이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 어딘지 몇 곳인지 왜 그런지 등이 매우 궁금하다.
서기 2021년 11월 23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날씨는 꾸무리한 가운데 기온은 15도씨를 가리키고 있다. 같은 시각 우리나라 서울의 기온을 보니 영하 2도씨로 영하권에 머물고 있고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인천공항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비행시간은 대략 12시간으로 거리로 8.967,69 km(Distanza(거리): 8.967,69 km / Percorso stradale(육로): 11.806,43 km)이다.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12시간의 비행거리가 여간 지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 보고 싶은 곳이자 호기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오늘 오후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어놓고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의 하산 장면을 편집해 놓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돌로미티를 다녀온 직후부터 시작된 하니의 그림 수업 모습을 번갈아 보고 있는 것이다. 표지 사진 아래 사진 한 장은 일주일에 세 번씩 루이지(Luigi Lanotte)의 화실로 갈 때 만난 풍경을 담았다. 시내 중심의 집에서 화실로 갈 때 맨 먼저 만나는 기분 좋은 풍경은 한 리스또란떼의 모습이다.
일과가 끝난 후 말끔하게 정리해 둔 이곳을 옆으로 끼고 마차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5분 거리에 그녀의 꿈을 이루어 줄 화실이 있다. 그녀는 그곳에서 당신이 생애 못다 한 꿈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 그녀는 불과 100일 전쯤 돌로미티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만난 풍경 하나가 친퀘 또르리이며 오늘 하산 장면을 기록에 담고 있는 것이다.
암봉 꼭대기에 오른 사람은 그저 밋밋한 풍경보다 "그곳에 나무 한 그루라도 있었으면.."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곳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나 사물이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누볼라우 산군(Monte Nuvolau)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는 여행자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서서히 등 뒤로 멀어져 갔다. 우리는 곧 하산길에 들어섰다.
지난 여정 그곳에 나무 한 그루만 있을지라도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우리네 삶에 있어서 여행자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몇이나 될까.. 싶어 이미 과거가 된 여행지를 돌아봤다. 빼곡했다.
그러나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만한 여행지는 우리가 보냈던 시간보다 훨씬 적었다. 이를 테면 한 부대에 담긴 쌀 중에 낱알 여러 개 정도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 여행지들은 제각각 당신의 얼굴이 묻어날 뿐 여행지는 배경으로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오래도록 감흥을 불러일으킨 곳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곳은 절경이었고 비경이었으며 누군가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발품을 팔았던 곳이었다. 동고동락의 의미는 삶에 묻어나거나 형용되는 말이 아니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여행지에 동행을 한 사람이었다.
내게 있어서 그런 사람은 바를레타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하니였다. 그녀는 매우 가끔씩 "우리는 싸돌아 다니는 게 너무 잘 어울려.."라고 말했다. 그녀의 역마살에 편승한 어느 남자 사람 1인의 삶 또한 서서히 길들여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글쎄 돌로미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 봤던가..
우리는 남미 일주와 파타고니아 일주 등을 통해 여행의 참맛을 보게 됐다. 당시만 해도 나의 기록에는 "죽어도 좋아!"라고 썼다. 이 세상 끝까지 단 둘이서 배낭여행을 통해 죽음을 무릅쓴 여행이 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무릅쓴 여행..
그건 여행에 미쳐야 가능한 일이고 여행을 통한 감흥이 사랑보다 더 진한 향기와 자극을 주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사랑에 대한 라틴어 명언 중에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현명하기는 신에게도 어렵다"는 말이 있다.
신(神) 조차 사랑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 그런데 희한한 일이 여행을 통해 일어난다. 우리에게 감흥을 준 여행지.. 미쳐서 날뛴 여행지에는 역설적으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함께 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여행지 외에 다수의 여행지는 신의 그림자가 충만한 곳.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린 곳이라야 가능했다. 그래서 국내여행 중에 손꼽히는 여행지는 단연코 내외 설악이었으며 그중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여행지가 설악산 공룡능선이었다.
어느 날 하니와 함께 등반한 공룡능선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것이다. 추석 연휴 기간 중에 등반한 공룡능선의 완주시간은 17시간이 소요됐다. 등 트기 전부터 해 질 녘을 지나 대략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설악동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동안의 여정을 잠시 살펴보면 설악동-비선대-금강굴-마등령 고개-공룡능선-희운각 대피소-무너미고개-천불동 계곡-귀면암-비선대-설악동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난이도와 산길을 단 둘이서 주파한 것이다. 아마도 하산길에 숙소가 있었다면 하룻밤 묵었을지도 모를 여행지를 단 둘이서 다녀온 것이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
우리는 친퀘 또르리의 암봉을 통과하여 뒤편의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오던 길을 돌아왔다.
저 멀리 지난해 다녀왔던 깎아지른 절벽 아래 포르첼라 지아우(Forcella Giau)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당시에 담은 기록들은 사진첩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 곧 흔들어 깨울 날만 남았다.
우리는 이때만 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뷰파인더에 담은 풍경 속에 복선이 침묵하며 도둑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자 설악산 공룡능선에 비견은 안 되지만 매우 힘들게 다녀온 곳이다.
우리는 친퀘 또르리에서 하산하면 그로부터 한 이틀 쉰 후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자고 약속했다. 우리 능력 밖의 일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맹세하는 두 사람..
그런데 돌로미티로 떠나는 순간부터 이런 서약은 전혀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은 방송에서 따로 돌로미티를 소개하지 않아도 SNS 통해 돌로미티 정보를 숱하게 만난다. 사진과 영상으로 돌로미티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실이라고 했던가..
돌로미티는 사진과 영상으로 만나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니었다.
지난해 19박 20일 동안 돌로미티를 여행하게 된 이유가 그러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돌로미티.. 돌로미티.. 하고 떠들어대는 동안 과연 그럴까 싶은 생각에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바를레타에서 돌로미티까지 쉬엄쉬엄 10시간 정도를 운전해 갔던 것이다. 거리만도 900km가 넘는 곳이며 돌로미티 곳곳을 누비는 동안 왕복 2500km는 훌쩍 넘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19박 20일 동안 차박과 야영을 곁들이며 돌로미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호텔에서 편하게 묵고 즐기기에 너무한 돌로미티의 비경들.. 엉겁결에 준비한 싸구려 중국제 텐트가 고작이었으며 집에서 사용하던 압력밥솥과 팬 몇 개와 수저 몇 벌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는 자꾸만 돌로미티를 돌아보고 있었다.
위 자료사진 한 장을 설명하고 넘어간다. 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암봉은 누볼라우 산군(Monte Nuvolau)의 한 곳으로 복선에 깔린 봉우리였다. 그 아래로 승강장이 보이고 쉼터가 보인다. 우리는 승강기를 타지 않고 승강기 아래 오솔길을 따라 이곳까지 진출했다. 대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승강기를 이용하여 쉼터까지 도착하고 친퀘 또르리를 둘러본 후, 장차 만나게 될 리푸지오 누볼라우(Rifugio Nuvolau, 누볼라우 쉼터 혹은 산장)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건 무리였다. 승강기를 타고 오르는 코스를 걸어서 등반했기 때문에 야영장으로 돌아가는 것도 버거울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저만치 앞에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앞에 놓인 복선을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다음 날이면 암봉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 누불라우 쉼터로 강행군을 할 텐데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아찔하다.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답사한 빠쏘 지아우(Passo Giau)에서 다시 강행군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곳 친퀘 또르리를 둘러보는 동안 기억에 오래도록 남게 된 인상적인 장면들은 돌덩어리가 아니었다.
걸음을 옮기는 곳곳에서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드리워진 것이랄까.. 올해는 지난해 보다 기온의 변화가 컸던지 풀꽃들이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보따리를 싼 흔적이 곳곳에 묻어났다. 그녀도 풀꽃이 됐다.
우리도 날마다 무시로 사랑받는 풀꽃으로 거듭날 것인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진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다.
그런 당신께는 천지만물을 만드신 이가 늘 동행할 것이며, 그로부터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세상에 널린 신의 그림자이지만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마다의 자랑에 빠져 사는 동안 신의 그림자는 당신의 가슴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그를 깨워 동행하면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 만물이 하나임을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곳도 대자연이었다. 나는 그러한 경험을 먼 나라 파타고니아에서 느끼게 되었다. 그곳은 엘 찰텐의 화석 무덤(Loma del Pliegue Tumbado, 역자 주)이 위치한 곳이었다.
라구나 또레(Laguna Torre)가 산 아래로 보이는 9부 능선에는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다. 앞서 간 하니가 바람에 날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던 곳. 하산 길에 불현듯이 내 몸을 가리고 있는 옷들이 거추장스러워 모두 벗었다. 바람이 나신을 훑어지나 갔다.
그 산중에서 나체가 된 나를 카메라에 담아준 건 그녀였다. 그녀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두 손을 들고 산중을 향해 동물처럼 울부짖는 소리를 질렀다. 집으로 돌아와 당시의 나체를 들여다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엉덩이 윗부분 천추 쪽에 거무스름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흔적은 파타고니아 여행을 막 시작할 무렵 꼬자이께(Coyhayque)서 허리 치료를 하면서 남은 자국이었다. 하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허리에 찜질을 했다. 대략 한 달 동안 나는 숙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병명도 알 수 없었다. 단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신세로 변했던 것이다.
그런 얼마 후 내게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어느 날 꼬자이께의 공동묘지에 있는 예수상을 바라보는 순간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십자가에 두 손 두 발을 못에 박히고 상처 난 가슴에는 붉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는 당시 차마 해서는 안 될 결심을 굳혀가던 중이었다.
당시 내게 일어난 기적 때문에 현장에서 두 발로 깡충깡충 뛰어보았다.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통증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한 걸음도 잘 내딛지 못하던 내게 신의 은총이 내린 것이랄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내게 일어난 이런 현상을 쉽게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일어난 이런 기적의 일은 나의 고백을 믿는 분들에게는 복 받은 분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만사를 아름답게 보는 사람들.. 당신의 가슴에 신의 그림자가 충만한 사람들은, 언제 어느 곳으로 발길을 옮기더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돌아서면 다시 가 보고 싶은 곳..
그곳은 신의 그림자가 충만한 곳이며 그녀와 함께 동행했던 여행길과 여행지였다. 그녀가 저만치 앞서 걷고 있는 가운데 자료사진 왼쪽 위로 작은 정자처럼 생긴 집을 볼 수가 있다. 그곳은 리푸지오 누볼라우 쉼터로 다음 날 빠쏘 지아우에서 걸어서 다시 오른 곳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친퀘 또르리는 작은 암봉들이 옹기종기 모인 듯 전혀 다른 풍광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날 오후 우리가 야영장까지 서둘러 내려간 직후, 하늘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비를 뿌려댔다. 우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에 흠뻑 젖었다. 그녀와 힘들게 다녀온 친퀘 또르리의 마지막은 비가 장식했다.
친퀘 또르리를 돌아오는 동안 마지막으로 본 풍경 가운데는 사람과 풀꽃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도처에 널린 신의 그림자.. 그 흔적을 기억해 내는 순간부터 당신이 다녀온 여행지는 돌아서면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는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을 바를레타에서 실현하고 있다. 우리 생애 '마지막이라는 말은 두고두고 아껴야 할 것이다. 마지막이란 말만큼 슬픈 단어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은 그리 많지 않다. 촌음을 아껴 써야 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천년을 살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 그녀의 좌우명이다.
우리가 다녀온 여행지가 아름다운 것도 다시 가 보고 싶은 것도 신의 그림자가 충만한 이유와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는 누구와 함께라면 그 보다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친퀘 또르리가 점점 더 우리보부터 멀어지고 있었지만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풍경이다. 그녀는 그림 수업 중에 가끔씩 이렇게 말한다. 내년 6월이 돼야 가능할 곳인데 말이다.
"돌로미티로 언제 또 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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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23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