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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05. 2021

겨울, 첫눈의 마법 속으로

-12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난 일


첫눈이 깨운 9년 전의 아름다운 기록..!



   첫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이곳은 서울 강남의 K아파트 단지의 모습이다. 첫눈은 참 희한하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부터 오시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눈의 이런 속성(?) 때문에 내 가슴속에는 늘 마법의 하늘로 기억되고 있다. 한 잠 푹 자고 나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있는 것이다. 나의 유년기..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을 것 같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천지개벽으로 변한 새벽에 누렁이처럼 좋아라 날뛰는 것이다. 천방지축 미쳐 날뛰는 것이다. 그게 다 뭐라고.. 그런 어느 날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첫눈에 대한 기억은 새로웠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다. 이날 나는 K아파트 베란다에서 첫눈 오시는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 첫눈의 마법 속으로



출연: 아파트 경비 아저씨 1인, 이름 모를 여성 1인, 보이지 않는 운전자 그리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 2인



수레를 이끌고 첫눈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다. 당신은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떠나는 경비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한 부대가 실려있었다.



이때 자동차 한 대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가 방향을 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야근을 하고 새벽에 퇴근을 한 모양이다. 주차 장소를 발견하고 그 즉시 자동차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첫눈이 오시자 그의 동선이 아스팔트에 선명하게 묻어났다. 숙련된 운전 솜씨가 바퀴 자국에 묻어났다,



자동차는 용케도 빈자리를 발견하고 주차를 했다. 전체 상황을 봤을 때 운전자는 자동차가 주차되자마자 이렇게 아내를 불렀을 것이다.


"작야~ 나 왔더덩.. 눈이 오시네. 나.. 올라갈 테니 차창에 종이박스 좀 씌워주라. 일찌? ^^ "



잠시 후 경비 아저씨가 들고 나온 손수레에 실린 부대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의 손에 들린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긴 것은 제설제였다. 아파트 입구에 나지막한 경사에 제설제를 뿌려 미끄럼을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은 큰길로부터 이어지는 곳이며 만약 야트막한 언덕이 얼어붙기라도 한다면 출근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혹은 경비 아저씨에게 돌아갈 게 뻔해 보였다. 아파트에 살면서 같거나 비슷한 분쟁 사례를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경비 아저씨를 이웃으로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당신들이 고용한 노동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은 경비 아저씨들이 연세가 많은 편이어서 어디 갈 형편도 못 되는 사람들이었다. 주민들 중에는 그런 분을 가족의 일원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반대의 경우로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은 요지경.. 암튼 경비 아저씨는 당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이른 새벽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자동차가 주차하는 장소는 장애인 주차장이었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디로 다녀오신 것일까..



싸락 싸락 조용히 오시던 첫눈이 함박눈으로 변하면서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눈은 점점 더 쏟아지면서 지면 모두를 덮었다. 조경수와 가로수까지 전부 덮었다.



이런 가운데 경비 아저씨의 손놀림이 바쁘다.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나지막한 연덕길 위에 제설제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마법의 흰 눈이 땅 위에서도 마법의 손길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경비 아저씨기 들고 있는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가 좌우로 오락가락하면서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천방지축 1인의 가슴에 환한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야심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첫눈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이웃을 위해 바쁜 손놀림을 나는 사람..



그런 잠시 후 조금 전에 주차를 한 장소로부터 지근거리에 한 여성이 빨간 우산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재활용품을 쌓아둔 곳에서 접어둔 종이상자를 들추어 보고 있었다. 종이상자의 쓰임새는 첫눈이 오실 때 요긴하다.



그녀는 종이 상자를 펼쳐서 운전석 앞 차창에 덮었다. 참 흐뭇한 장면이다. 빨간 우산은 첫눈과 웰케 잘 어울리는지.. 시진을 오래도록 찍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는 때는 이럴 때라고나 할까..



다시 도로변의 풍경을 보니 이러하다. 함박눈이 펑펑 퍼엉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비 아저씨의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었다. 행위예술이란 이런 것.



사람 사는 세상은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첫눈은 물론 비까지 그리고 자연이 모든 현상들은 하늘이 부리는 마법이자 조화로운 세상의 한 단면이다. 그 흔적을 발견할 때 당신의 마음에 환한 들불이 밝혀지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과 동행하는 것이다.



빨간 우산을 받쳐 들고 이른 아침부터 당신을 돕고 있는 배필 조차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날 천방지축 목격자가 없었더라면 선행들에 대한 고마움은 잘 모를 것이다.



날이 밝아오자 자동차 한 두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평소 및및했던 공간 위에 두 줄을 그으면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첫눈이 오셔야 가능한 일들..



빨간 우산을 받쳐 든 한 여인이 오늘의 주인공이랄까.. 그녀가 남긴 발자국이 참 곱다.



겨울이 오시면.. 첫눈이 오시면.. 하늘은 이렇게 마법을 부리며 깜짝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녀가 부지런히 발품을 판 결과물은 하나의 작품으로 등장했다. 첫눈과 빨간 우산..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유년기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지..



툇마루를 나서 현관문을 열면 누렁이가 꼬랑지를 세차게 흔들어대던 겨울 어느 날.. 그때는 나를 너무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물론 어머니와 아부지 형제자매들이 모두 생존해 있었던 때였지.. 하지만 지금은 첫눈이 오셔도 누렁이는 물론 어른들 세 분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당신의 사랑이 첫눈에 오롯이 묻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



한 주민이 일찍 출근길을 나서는 동안 경비 아저씨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빛을 발하고 있다.



나지막한 언덕에 첫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하늘과 땅의 마법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서기 2021년 12월 4일 저녁나절(현지 사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열어본 사진첩 속에 오롯이 남은 추억들이 그립다. 이곳 바를레타에 사는 3년 동안 첫눈을 구경 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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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04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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