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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5. 2021

내 마음속 화려한 성탄 트리

-우리 동네 바를레타의 12월 풍경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도박에서 딴 티켓으로 당신을 만난 거야"


    서기 2021년 12월 14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잠시 망중한에 젖어있다. 이틀 전 하니와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 트리(Alberi di Natale)의 화려한 불빛을 즐긴 것이다. 


어둠이 깃들면 아드리아해를 곁에 낀 대리석으로 만든 도시 전체는 황금빛으로 변하며 반짝거린다. 겉으로는 대략 인구 10만의 도시지만, 도시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100만 명이 더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를 방불케 한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를 그대로 옮겨둔 것보다 더 화려하다면 믿을까..



바를레타는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에 비교할 때 장화 뒤꿈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자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그녀와 나.. 단 불뿐이다.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몇몇 살고 있지만 동양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아무튼 살다 보면 별 일 다 생기는 법이다.



우리는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살고 싶었으며 결국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희한한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우리가 퓌렌쩨서 살 때 한 예술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요즘 자주 등장하는 루이지(LUIGI LANOTTE)며 하니의 그림 선생님이다. 우리는 어느 날 그를 퓌렌쩨 재래시장 근처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그녀의 눈에 루이지의 그림이 눈에 띈 것이며, 당신의 화풍이 마음에 든 것이랄까..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루이지와 함께 단 둘이 바를레타에 입성했다. 그녀가 그림 수업을 결심한 후 이곳에 집을 얻기 위해 동행한 것이다. 그때가 정확히 2019년 7월 9일이었다. 나는 열흘 후 퓌렌체로 다시 돌아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얻어놓고 퓌렌쩨로 돌아간 것이다. 당시 하니는 건강검진 이유 등으로 먼저 한국으로 잠시 귀국을 했다. 그리고 다음 달 퓌렌쩨-바를레타행 기차에 몸을 싣고 8시간이 더 되는 기차여행을 끝으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 



지금 내 앞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중심의 풍경이 놓여있다. 바를레타 두오모(Basilica Cattedrale Santa Maria Maggiore)와 성(Castello di Barletta)이 위치한 곳에서 지근거리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 도시의 중심지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산타 루치아 교회(Chiesa di Santa Lucia)가 있다. 



이 교회는 바를레타에서 가장 시끄러운(?) 성당으로 연중 가톨릭 신자들이 들끓는 곳이다. 결혼 미사는 물론 장례 미사와 연중 주어지는 미사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성당의 종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 됐다. 어떤 때는 미사 실황을 확성기를 통해 바깥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에 신자들을 배려한 것으로 신자들은 바깥에서 미사를 드리게 된다. 




내 마음속 화려한 성탄 트리



그녀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오게 된 때는 2020년 2월 23일이었다. 퓌렌쩨서 이곳으로 둥지를 옮긴 이후 새해를 맞이한 때였고 그녀는 처음으로 바를레타에 발을 디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확진자 수가 느긋한 때였다. 그녀를 마중하기 위해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한 후 입국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입국장에 들어서는 승객들 중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그녀 혼자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마스크를 벗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가 이탈리아로 다시 귀국한 다음부터 코로나 사태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탈출해야만 했다. 



그해 겨울.. 그러니까 2020년 10월 23일, 그녀는 바를레타-스위스-프랑크 푸르트 공항까지 이어지는 1500km(왕복 3000km)의 긴 여정을 통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가슴 아팠다. 처음으로 우울했다. 신부님이 종소리를 마음대로 두들겨대는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그녀는 8개월의 짧은 시간을 이곳에서 머문 다음 한국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녀가 한국으로 떠난 다음 그해 겨울부터 이탈리아의 확진자 수는 수만 명을 넘기고 사망자 수는 엄청나게 늘어갔다. 차마 계수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 미사의 풍경은 많이도 달라졌다. 어떤 때는 신부님이 마음대로(?) 종을 두들기곤 했다. 종소리에 짜증이 묻어나는 것이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동안 교회는 텅 비었다. 날이면 날마다 교회를 찾던 발길이 어느 날부터 뚝 끊어진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신부님 보시기에 당신의 새끼(?)들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규칙적이던 종소리를 마구 흔들어 놓은 것이랄까.. 그랬지.. 아무리 성자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한국으로 떠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 해 겨울을 다시 혼자서 보내게 됐다. 그리고 두 해 겨울이 지나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올해는 그녀가 이곳에서 겨울을 함께 보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녀의 소원이었던 그림 수업이 재개되고 그림 그리기에 재미를 붙였던 것이다. 요즘 그리고 있는 소묘 작품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너무 재밌다고 했다. 



서기 2021년 12월 14일 저녁나절, 이틀 전에 둘러본 시내 풍경을 앞에 두고 보니.. 우리가 사는 모습이 누군가 연출해 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서 3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인 거대한 여객선을 타고.. 사흘 동안 바다 위에서 여행을 하다가 졸지에 좌초를 맞이하여 대서양 깊은 바닷속으로 수장되기도 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 우리는 그것을 인연으로 불렀지. 인연의 사람들.. 그중에 사흘 동안 사랑한 두 남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여인은 살아남고 한 남자는 대서양 깊은 곳으로 수장됐다. 그게 영화 타이타닉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그때 남자 주인공 (잭 역: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여자 주인공( 로즈 역: 케이트 윈슬렛)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도박에서 딴 티켓으로 당신을 만난 거야"



누구나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사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나눈 사랑에 당신의 목숨을 건 것이라면 보통 인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인생의 행운을 '도박에서 딴 티켓으로 사랑을 만난 것'이다 말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하니와 데이트를 나갔던 날 우리 집 앞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신부님의 교회로 미사를 드리기 위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장면을 시작으로 시내 중심을 돌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풍경을 사진과 영상을 기록했다.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그녀가 추위를 호소해 시내 중심 부근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리고 다시 두오모 근처에 위치한 교회에 다다르자 종을 마구 두들겨대던 신부님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신부님의 목소리는 미사를 드릴 때와 표정이 전혀 달랐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할 때 두들겨대던 종소리는 나은 편이랄까.. 영화배우 숀 코네리처럼 잘 생긴 미모의 신부님은 음치가 틀림없어 보였다. 



희한하지.. 신께서는 두 가지 모두 좋은 것으로 채워주지 않는가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흠.. 그건 네 생각이고..ㅜ) 그런데 그때 귀에 익은 찬송가 소리(영상 참조)가 들려왔다. 한 소절은 신부님이 한 소절은 신자들이 따라 불렀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한 해를 다 보내는 12월 어느 날 바를레타의 중심 뷔아 까부르(VIA CAVOUR))에서 타이타닉 영화 속에 등장했던 명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영화 속에서 연주되던 이 장면은 잠시 후 침몰하는 뱃전의 풍경이다. 곧 죽음을 앞둔 악사들이 잠시 우왕좌왕 방황하다가.. 한 사람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새 찬송가 338장을 연주하자 한 곳에 모여 연주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울컥했다. 그리고 영상을 편집하는 동안 은혜로운 장면이 마리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언제인가 타이타닉호의 침몰처럼 예견치 못한 때에 먼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신이 사랑하고 사랑한 사람은 누구였으며.. 당신을 생존하게 하고 아름다움을 지켜준 분이 누구 시라는 것을 알게 될까.. 



하늘은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우리를 바를레타로 둥지를 옮기게 했다. 인간이 계획하고 하늘이 실천한다는 말이 그저 된 게 아니었다. 그때 우리를 도운 중보자는 루이지였을까.. 



하니와 나는 그 먼길을 돌아 이곳에 올 때까지 여러 역경을 견뎠다. 그때마다 견딜 수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학습하고, 나름 세상의 섭리(物我一體)를 깨달은 다음.. 다시 이탈리아에 둥지를 틍 때까지 시간은 가히 기적이라 불릴만하다. 



그리고 그녀와 이곳에서 3년 째를 맞이하면서 바라본 성탄 트리는 감회가 남다른 것이다. 거리 곳곳에 매달린 반짝이는 불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이자,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또 메마른 가슴에 환하게 등불을 밝히며 촉촉이 젖은 아름다운 의식을 비추는 것이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도박에서 딴 티켓으로 당신을 만난 거야"



내일 아침 다시 시작되는 그림 수업이 눈에 선한 것일까..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는 동안 그녀는 잠을 뒤척인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알리는 화려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BUONA NOTTE..!



La citta della illuminata da un albero di Natale_BARLETTA
Il 14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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