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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9. 2021

서울서 사라진 첫눈 명소

감성이 메마른 당신께 드리는 잔소리


이성과 감성의 차이가 만든 세상에 대한 편견..?!



    서기 2021년 12월 19일 오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어 서울에 오신 첫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첩을 열게 된 이유는 브런치 이웃분들이 일제히 첫눈 풍경을 포스팅했기 때문이다. 첫눈을 카메라에 담은 분들의 표정을 보면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첫눈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 그런데 첫눈을 담은 장소 혹은 배경에 등장한 첫눈은 본래의 모습과 많이도 달랐다. 먼 나라에서 사진첩을 열어본 이유이자 꼰대 티를 내는 잔소리가 담겼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 메마른 감성을 호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 앞에 놓인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늘어놓는데 당신은 전혀 그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폭풍이 치며 눈보라가 닥치거나 첫눈이 소복소복 쌓여도 보슬비가 오셔도 그저 자연의 한 현상이려니.. 하고 생각하는 것.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시인들의 삶은 더더욱 그러하다. 도시의 아파트 빌딩에 갇혀 살다 보면 눈송이는 빗방울의 또 다른 모습의 하나일 뿐이다. 자연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부추기는 것은 일기예보가 한몫 거들기도 한다. 자연의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방송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취자들은 우비를 준비하거나 먼 여행을 떠날 때 적절한 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일기예보에서 첫눈이 오실 때 이렇게 방송하면 어떤 기분이 들끼..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서기 2021년 12월 18일 자 일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서울에는 뽀송뽀송한 첫눈이 오시고 있습니다. 첫눈이 오실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시는 것보다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걸어서 직장까지 걸어서 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싸모님과 함께 우산을 받쳐 쓰시면 연애할 때 느끼신 알콩 달콩한 감정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싸모님이 와락 당신 품에 달려들 것이옵니다. 첫눈이 오시면 꼭 해보겠다고 약속한 데이트가 오늘 첫눈 소식에 담겼거든요. (히히) 첫눈은 새벽부터 시작해 정오까지 오락가락할 테니 시간을 참조하셔서 행복한 데이트되시기 바랍니다. 일을 하셔야 한다고요? 이런 날은 하루쯤 K부장에게 전화를 걸러 앙큼한 거짓말을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싸모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요.. 맨날 오시는 첫눈도 아니니까 싸모님 잘 모시고 근사한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를 앞에 두고 두 사람만 오붓하게 즐기는 첫눈 타임.. 어때요? ^^"



이때 "먼 소리 하는 거야?!" 하며 채널을 확 돌리는 당신은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며 직장이나 사업 수단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이런 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주야장천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일 것이며, 도시인들 상당수가 이런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깟 감성이 빕 먹여줘 돈이 돼.. 하고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은 언제부터인가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왜 내게는 첫눈이 오셔도 감동이 없지.. 첫눈이 올 때마다 자동차가 정체되는 풍경만 머릿속을 오락가락 하지.. 정말 귀찮은 존재야..



첫눈이 소복소복 아름답게 내린 이곳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풍경이자 나의 사진첩에만 오롯이 남아있는 첫눈 풍경이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서기 2017년 12월 18일 서울에 내린 첫눈(폭설)이 뷰파인더에 담겼다. 서울 강남에 살면서 언제부터인가 첫눈이 오시면 맨 먼저 달려가고 싶었던 장소에서 첫눈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첫눈이 오실 때 이삿짐을 꾸리는 풍경이 카메라에 담긴 것은.. 70년대 지어진 이 아파트가 재건축을 결정하면서 주민들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가 완료되면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던 50년도 더 된 수목(조경수)들이 모두 잘려나가는 한편, 높다란 아파트 빌딩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잘려나간 숲 대신 밑둥지가 포장지에 싸인 조경수들이 버팀목들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아파트 단지에 늘어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콘크리트 빌딩 숲에 내린 첫눈이 커뮤니티를 도배하고 있는 것이다. 첫눈은 오셨으나 첫눈의 느낌이 도무지 묻어나지 않는 것. 도시의 직선들이 빼앗아간 감성의 자리에 이성만 빼곡하게 남아 당신의 행복한 삶까지 앗아간다고나 할까.. 서울의 첫눈 소식에 뒤돌아 본 첫눈의 명소가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Un quartiere così bello se nevica_Gangnam COREA DEL SUD
il 19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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