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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3. 2022

내 딸아 아들아

-그곳에 다시 서고 싶다


그때는 가능했다. 지금도 가능할까..?!


하니와 나는 어느 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중심에서 멀지 않은 안데스의 쎄로 뽀초코 정상 부근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통해 남긴 수많은 기록들 중에 우리의 표정이 담긴 사진은 많지 않다. 어떤 때는 무모할 정도로 '목숨을 건 여행'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뒤를 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그저 앞만 보며 나아갔다. 어쩌면 죽기 전에 내가 만나는 마지막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끼어들기도 했다. 좀 더 보자꾸나.. 다시 한번 더 만나보자꾸나.. 그때마다 뷰파인더 앞에는 새로운 세상이 등장하곤 했다. 


지난 여정 <그 산이 나를 부른다> 편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해 연말이었다. 다시 여정을 이어간다.



   서기 2021년 1월 2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노트북을 열고 우리가 다녀온 안데스의 쎄로 뽀초코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조금 전 저만치 멀어진 능선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안데스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고도를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스모그가 잔뜩 낀 도시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산중의 공기는 맑았으며 산기슭에서 만난 풍경과 다른 수목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상에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안데스의 스카이라인이 산행을 편안하고 즐겁게 한다. 최초 산기슭에서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고 발은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어느덧 몸이 풀리면서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정상 부근에는 건기를 참아낸 나무들이 당장이라도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로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먹여 살린 건 구름이었을까.. 



안데스를 넘나드는 맑고 고운 기운들이 수목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었다. 그 장면들이 여행자의 뷰파인더에 포착된 것이다. 세상에 천지 뻬까리로 널린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임인년 새해 첫날을 이탈리아 남부서 보내고 다시 열어본 사진첩 속의 풍경.. 남미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안데스의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10년도 더 된 오래된 풍경들이지만, 외장하드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가 기어코 주인의 부름을 받고 등장한 것이다. 10년의 세월이 무색하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호흡을 멈추지 않는 한 세상은 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의 원동력인 아름다움.. 작은 잎새 하나에도 아름다움이 깃든 곳. 황량해 보이는 산중에서 생명의 현상들을 만나게 된다. 생명의 현상들..



인터넷을 열어 내 조국 대한민국의 소식을 볼 때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지지고 볶고 싸우며 울고 불고 시시덕 거리는 사람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똑같은 풍경을 앞에 놓고 봐도 전혀 느낌이 다르다. 처음에는 세상의 바람에 맞서 싸웠지만, 어느 땐가부터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덧없음..



보다 더 젊었을 때는 어른들의 말씀들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들릴 리 만무했다. 그런데 지천명을 지나 이순의 터널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 내 앞 혹은 우리 앞에 닥친 운명들이 안데스의 깊은 산중에서 만난 풍경과 닮은꼴이랄까.. 운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몫이며, 바람에 맞서는 게 아니라 허리 굽혀 바람을 맞이하는 것. 새해 이튿날부터 꼰대가 되어 내 딸과 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내 딸아 아들아

네 엄마의 겉모습은 잊으라

육신은 시간의 밥이다

소멸을 거듭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너희를 지키는 마음 

곧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빛으로 낳은 당신의 그림자

그곳에 너희 모습 오롯이 남아있으니

기억하라

세세토록 기억할지어다



안데스 고원에 살았던 케츄아 인디오들

그들은 이 땅을 어머니의 땅 파챠마마라 불렀다

위대한 땅의 여신

풍요의 여신이자 농업의 여신



내 딸아 아들아

네 엄마의 겉모습은 잊으라

위대한 땅의 여신이 너를 낳았지

그 생명 내 딸아 아들아

육신은 땅으로 

네 영혼은 다시 하늘로

빛으로 왔으매 

빛으로 돌아갈지니라.


우리가 이탈리아에 둥지를 튼 그 사이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별 무리가 따르지 않던 산행이 지금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이곳을 어떻게 다녀왔다는 말인가. 그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 보다 더 젊을 때 보다 더 큰 호연지기로 세상을 탐해야 할까.. 내 곁에 길들여진 여우 한 마리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Cerro Pochoco, Santiago CILE
Il 02 Genn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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