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5. 2022

버스기사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

1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 #11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 전부..?!


그는 버스가 커브길을 돌아갈 때면 나를 위해 속도를 늦추는 등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승객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분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머리를 숙인 채 졸음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니도 졸고 있었다. 창밖의 날씨는 비가 오시다가 어느덧 개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졸고 자빠지셨다. 그런데 이반에는 대빵께옵서 좀 더 큰 배려를 했다. 그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전망대(Mirador)가 있는데 좀 쉬었다 가자"라고 말했다. 

이때 남긴 기록이 포스트 하단에 삽입된 뿌에르또 이바네스 리오 이바네스(Río Ibáñez)의 빼어난 풍경 중 일부이다. 버스기사님이 차를 세우자 여러분들이 영문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렸다. 하니도 졸다가 깨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는 그곳에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기념촬영을 하게 됐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서자마자 바람이 몸씨 불어 뎄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버스기사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


버스기사님이 차를 세운 곳은 저 멀리 호수와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진 산이 보이는 언덕 위였다. 그곳은 전망대(Mirador)라고 쓰인 입간판이 서 있었지만, 따로 시설물을 설치해 두지 않았다. 길 가장자리에 차를 정차해 놓으면 관심 있는 사람은 언덕까지 다가가 경치를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버스에 탄 승객 다수는 현지인들이어서 아름다운 풍광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니와 나는 차에서 내린 즉시 언덕으로 나아가 라고 헤네랄 까르레라(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 면적 1.850 km²) 호수의 한 곳을 바라보았다. 장관이었다. 이 호수의 이름을 라고 헤네랄 까르레라 혹은 라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라고 명명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영토를 양분하는 바다 같은 호수 때문이었다. 장차 우리를 호수 건너편으로 실어다 줄 훼리호는 두 나라의 경계선을 통과하는 것이다. 



전망대가 위치한 곳은 뿌에르또 이바네스(Puerto Ingeniero Ibáñez)이며, 우리의 목적지는 칠레 치코(Playa Grande Chile Chico)였다. 칠레의 호수 영역으로 이동한 이후 육로로 아르헨티나로 건너가는 것이다. 이때부터 기나긴 여정이 시작됐다. 



전망대서 바라본 풍경은 예사롭지 않았다. 오래전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면서 바다가 호수로 변한 곳. 길이가 7천 킬로미터 이상인 안데스 산맥은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남 안데스 (아르헨티나, 칠레)와 중앙 안데스(에콰토르, 페루, 볼리비아) 그리고 북 안데스(베네수엘라, 콜롬비아)이다. 남미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띠띠카카(Titicaca, 면적 8.372 km²) 호수는 중앙 안데스의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것처럼, 헤네랄 까르레라 호수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있는 것이다. 



두 호수의 특징은 띠띠까까 호수가 알띠 쁠라노(Altiplano,3810m)의 높은 고원지대에 있는 반면, 헤네랄 까르레라 호수는 저지대에 위치해 있고, 해발 높이는 217미터에 이르는 평지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참고로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는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Lago di Maracaibo) 호수이다. 면적은 13.210 km²이다.



남미 안데스에 인접한 몇 개의 호수 면적을 살펴본 것은 장차 등장하게 될 이 호수의 풍광 때문이다. 우리가 남미 여행 중에 만난 중앙 안데스의 띠띠까까 호수나 바릴로체의 나우엘 우아피 호수(Lago Nahuel Huapi)가 말 그대로 잔잔한 호수였다면, 헤네랄 까르레라 호수는 바다를 쏙 빼닮았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버스기사님이 우리를 전망대애 내려주지 않고 곧장 포구로 이동했다면, 기록은 전무했을 것이며, 그저 가슴에만 남아 요동치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면 새까맣게 잊고 살던지..ㅜ 



그렇게 생각해 보니 여행에서 남는 거라곤 사진이나 영상이 전부나 다름없다. 더더군다나 10년도 더 된 기록들이 인터넷 시대를 만나 빛을 본다는 건 행운이거나 선택받은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까지 스크롤을 이동해 오신 독자님이나 이웃분들은 중요한 풍경을 놓칠 것 같아서 설명을 곁들인다. 포스트에 삽입된 풍경들은 전망대에서 순서대로 촬영되었으며 렌즈(광각)를 바꿔가며 기록된 풍경이다. 하니를 카메라에 담은 후 잠시 후 그녀가 나의 사진을 기록에 남겼다. 



전망대 위에는 바람이 몹시도 심하게 불었다. 우리는 마침내 바람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며, 머지않아 건기가 끝나고 우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버스기사님이 전망대에 정차를 한 후 여행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바람의 땅은 매우 색다른 풍경이 포착됐다. 눈치채셨는가..^^



위에서부터 다시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면 호수로 흘러드는 리오 이바네스(Río Ibáñez) 강 곁의 마을을 볼 수 있다. 마을은 미루나무를 이용한 방풍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무들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게 된다. 


맨 처음 전망대에서 바라봤을 때는 착시현상으로 생각했다. 뷰파인더에 나타난 방풍림들 때문에 수평이 일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호수의 수면과 쓰러진 방풍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버스기사님의 배려로 전망대서 좌우로 이동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승객들과 버스기사님은 버스 속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하니 또한 바람 때문에 사진 한 컷을 남기고 버스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서기 2022년 1월 4일 늦은 밤(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노트북을 켜고 사진첩을 열어 바람의 땅에 발을 디딘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바람의 땅은 여전하겠지만.. 그동안 우리의 겉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남아있던 검은 머리가 점차 파뿌리처럼 변하더니..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것이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강은 흐름을 멈추지 않었으며, 호수는 여전히 푸르고 미루나무는 바람에 순응하며 잘 자라고 있었다. 전망대서 바라본 바람의 땅에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흔적이 배암처럼 길게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과 땅과 바람의 땅을 딛고 선 사람..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_Puerto Ingeniero Ibáñez Patagonia CILE
il 04 Genna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작심 3일, 추억이 더 맛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