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혼으로 그린 작품들 속으로
해변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내가 만난 이탈리아인들의 문화
먼저 아래 자료 사진 한 장을 설명해야 '싹 지워버린 지난여름의 추억'이 완성될 것 같다. 사진은 지난 8월 17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해변의 풍경으로, 나는 이 장면을 포착하는 즉시 '바다로'라는 사진의 제목을 떠올렸다. 흔치 않은 광경이다.
사진을 관찰하면 일곱 명의 한 가족이 바캉스 기간 동안 머무르게 될 장비들을 모두 나누어 챙겨 바닷가로 이동하는 모습. 조금 전 자동차에서 내린 가족의 각자 구성원이 자기의 처지에 맞게 바캉스에 쓰일 물건을 들고 가는 것이다. 참 정감 어린 모습이자 보기 좋은 풍경이다. 보다 건장한 체구의 아무게는 보다 더 무거운 물건을, 노약자들은 가벼운 물건을 들었다. 내가 보고 느낀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우 보수적이자 가족적이다.
당신들을 지탱해 온 역사와 문화 등을 잘 지키고 관리하는 동시에, 가족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가족 중심적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다. 이러한 문화는 현대의 이탈리아가 있기 전에 외적들의 무수한 침탈이 만든 결과일 것이다. 통일 이탈리아가 세워지기 전까지 지금의 이탈리아인들은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을 누리고 살았던 민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신들을 침탈한 외적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한 일가족이 해변으로 나서는 풍경 뒤 수평선 위로 보이는 거무스름한 모습은, 이탈리아 지도를 장화에 비교할 때 장화 뒤꿈치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런 사정 등으로 이들의 건축물 구조는 매우 배타적이다. 건물의 대문을 들어서야 그 집안의 사정을 알 수 있고, 정원은 바깥에서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인들은 그 같은 건축물의 구조를 빨라쪼(Palazzo_궁전 혹은 커다란 저택)라 부른다. 마치 안락한 여성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 같은 구조는, 당신들의 삶을 편안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침탈을 사전에 예방하는 구조로 볼 수 있겠다.
그러한 연유 등으로 해변으로 향하는 어느 가족들의 모습은 이탈리아인들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자기들이 살고 있던 주거환경과 별로 다르지 않게, 바캉스 시즌을 보낼 해변에 그들만의 공간을 건축(?)해 놓고 한 철 혹은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타인의 삶에 절대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사과를 하고, 아주 미세한 친절에 대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바다의 노래에 푹 빠지다
지난 8월 15일, 내가 피렌체에서 거처를 옮긴 직후 피렌체와 전혀 다른 풍경을 바를레타 해변에서 만나게 됐다. 해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붐비는 해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관찰할 수가 없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훌러덩 다 벗고 지내는 공간에서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는 것은 누가 봐도 별로 자연스럽지 않다.
요즘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행동 등 몰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지구별에 널린 지 꽤 오래된 것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변을 걸으며 여러분들이 피서를 즐기는 장면을 유심히 관찰했다.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고 가족들은 일상을 훌훌 털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들이 바캉스 시즌에 털어버린 시름들은 모래 알갱이 속에 다 파 묻혀 정화됐고,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 갔다. 해변의 모래밭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억하고 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이 같은 사정은 해변을 무시로 넘보던 바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지난여름 내내 배암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던 파도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이야기들을 바닷가로 밀어내며 태초로부터 이어진 습관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해변에 남긴 흔적들 모두는 어느 날 싹 지워지고 있었다. 지난여름의 추억 혹은 지나간 우리네 삶의 풍경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모두 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
이러한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바다는, 당신의 언어를 통해 해변에 무수한 흔적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야 속이 시원했던지, 매일 매시간 찰나의 순간까지 바다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현장을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바다의 혼으로 그린 작품 속으로
시월 어느 날,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과 추억들 모두 필터를 장착한 트랙터가 말끔히 지워버렸다. 지난여름의 추억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내 고향은 부산, 대한민국은 이탈리아와 같은 반도 국가이며 삼면이 바다. 그런데 아드리아해(Il mare Adriatico)로 이름 지어진 바닷가 해변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 거의 매일 하루 두어 시간씩 해변을 산책하며 운동하는 동안 바다는 늘 다른 작품을 내놓는 것. 혼자 누리기 너무 아까운 풍경이랄까. 조금 전, 바닷가에서 만난 풍경들을 브런치에서 다시 돌아보니 바다가 가슴을 후벼 파며 한숨으로 만든 작품들 같다. 매일 서로 다른 작품들을 이방인에게 선보이는 것. 행운이었다. 바다의 진면목을 지구 반대편 아드리아해에서 만나다니..!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Sparire, Perdersi nella sabbia
il 22 Ottobre 2019,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