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 사구(砂丘)의 작은 보고서 XV
바람 쇠다가 만난 진짜 바람..!
서기 2022년 4월 3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바람이 몹시 불어댔다. 마치 꽃샘추위를 닮은 꽃샘바람이랄까.. 집 앞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 뒤 바닷가에 위치한 바를레타 항구(Porto di Barletta) 곁에 위치한 작은 사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종려나무 아래서 망중한을 달랬다.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오후.. 현장의 풍경을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즐감하시기 바란다.
사진,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오후
우리가 이곳 바를레타로 이사를 온 지 어느덧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바를레타 성 뒤 바닷가 풍경이 여러 번 바뀌었다. 바닷가를 지키던 코다란 고목이 바람에 쓰러져 사라졌으며, 아드리아해와 경계를 이루던 작은 사구도 바다와 거의 수평을 이루었다.
바를레타 성 뒤편으로 연둣빛이 묻어난다. 꼼지락꼼지락.. 봄이 무르익기 시작하는 하늘의 신호이다.
이곳은 갈대가 무성하던 곳이었다. 어느 날부터 바를레타 시 당국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갈대밭은 바닷가로 밀려났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나 대자연은 늘 이렇게 모습을 달리하는 걸까..
종려나무 예닐곱 그루가 서 있는 풍경 뒤로 바를레타 성이 있고 그 너머에 우리 집이 위치해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지근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겉보기와 달리 사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자료사진 우측으로 빨간 손수레가 보일 것이다. 저곳에 광천수가 가득 찬 우물이 있다.
이곳은 바닷가 바로 곁에 있지만 민물과 바닷물이 서로 경계를 이루는 작은 사구로 올해 우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냉이를 만나 냉이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다음 바를레타 사구 곳곳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봄나물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바를레타 사구가 내어주는 어느 봄날의 선물..
이방인에게 그런 땅은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다. 오늘 오후에 다시 봄나물이 파릇파릇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겼다. 씀바귀와 고들빼기 그리고 비에똘라.. 수선화는 꽃잎을 모두 떨군 채 나를 맞이했다.
봄이 오시는 듯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 것이랄까..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오후에 만난 풍경들은 봄을 저만치 떠미는 듯 종려나무 가지와 잎사귀를 마구 흔들어대며 쉭쉭 소리를 냈다. 우리나라에 꽃샘추위가 있다면 이곳에는 꽃샘바람이 있는 것일까..
절기상 겨울을 일찌감치 멀어졌지만 가끔씩 아드리아해는 성깔을 부린다.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는 무슨 불만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바람을 사랑하게 된다.
눈보라도 좋고 비바람도 좋고 폭풍우도 좋을 때가 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바람을 등에 업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바람을 쐬고 싶어 한다.
아드리아 해서 불어오는 바람과 다른 바람은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는 소통의 한 방법..
나는 종려나무 아래서 바람과 소통하며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잠시 후, 낮이고 밤이고 주야장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이 행복해 보이기도 한다.
그 아래를 왔다 갔다 올려다 보고 다시 꼼꼼히 챙겨보는 동안 쳇기처럼 답답하던 속이 말갛게 씻기 운다.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오후..
평소에 그냥 지나친 적도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녀석들은 나의 친구가 됐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어느 날 바람에 흔들리던 녀석들이 안 보이면 어떨까 싶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늘 이웃을 만나게 된다. 바람 한 점에 실린 먼지 한 알이나 뭇새들의 날갯짓조차 그저 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천지신명이 관장하는 조화로운 세상이 어느 날 오후 내 앞에 등장한 것이겠지.. 세상과 이웃들의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기를 먼 데서 기원한다.
영상,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오후
Notizie di primavera arrivate nel sud d'italia_il Mare Adriatico
il 03 Aprile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