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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05. 2019

마음으로 먹어야 행복해지는 요리  

-아드리아해 바닷가에서 화석화된 뿔고동을 만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틀 전의 일이다. 나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해변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요즘 거의 매일같이 하는 걷기 운동은 나의 체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해변에서 맨발로 걷는 동안 느끼게 되는 감촉은 힐링 그 자체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다는 물거품으로 발을 간지럽힐 뿐만 아니라, 발가락 사이로 꼼지락 거리며 스며드는 작은 모래 알갱이는 기분 좋은 마사지를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걷기 운동은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그동안 내 몸에는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근육질의 탄탄한 아랫도리를 만드는 것. 운동을 끝마칠 때쯤이면 부풀어 오른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송곳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탱탱해져 있다. 운동을 끝마치고 잘 챙겨 먹은 단백질 때문인지 현재의 몸 상태는 웬만한 청춘들 못지않다. 



위 자료사진은 글쓴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시로부터 5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에서 촬영한 전경이다.


오래전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운동으로 다져진 기본 체력도 한몫 거들었지만, 지천명을 지나 이순에 접어들면서부터 느슨해진 몸이 부활한 것이랄까. 바닷가 해변을 걷는 동안 가끔씩 나를 괴롭히던 요통이 사라졌다. 그 이유를 검색해 보니 발바닥 마사지가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 무심코 내가 좋아한 운동이 '도랑치고 가재 잡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혹시 요통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시라)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까마득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만년 전, 백만 년 전, 수백만년전, 수천만 년 전, 수억 년 전, 수십억 년 전.. 백악기, 쥐라기 등등 우리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의 세상을 바다로부터 전해 듣고 보는 것이다. 해변을 따라 걷는 동안 내 눈에 띈 조그만 뿔고동이 나를 머나먼 과거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만든 것.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지만 어느 날 바닷가 해변에서 납작 엎드려 있던 뿔고동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다.


"아저씨.. 날 좀 바라봐요~잉 ^^"




해변의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녀석을 손에 집어 들자마자 녀석이 왜 '자기를 봐 달라'라고 했는지 단박에 이해됐다. 녀석은 바닷가 지천에 널린 조개껍데기나 고동 껍데기가 아니었다. 언제 그랬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의 경계선에 있는 이탈리아 반도의 화산대로부터 생겨난 화석으로 변한 뿔고둥이었던 것이다. 펄펄 끓는 용암이 바닷가로 진출하면서 이곳에 살고 있던 고동들이 대거 화석으로 변하게 된 것이랄까. 


비중이 낮은 고동들은 고온의 용암 위에서 자기의 형체만 겨우 유지한 채 적당히 녹으면서 열처리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래서 녀석들은 억만 겁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보통의 조가비나 고동들처럼 형체가 망가뜨려지는 법 없이 온전한 형태로 이방인을 만나게 된 것. 




녀석을 처음 본 순간부터 대략 두 달이 넘은 시간까지 녀석들은 호기심 어린 채집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해변에서 녀석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하루에 한 번 혹은 두세 번씩 눈에 띄는 대로 녀석들을 고이 집으로 모셔왔다. 그리고 녀석들이 살았던 까마득한 옛날을 회상하며 시간여행을 즐기는 것. 


조금 전 나는 운동에서 돌아와 밥을 먹다 말고 녀석들 몇을 접시에 담았다. 접시로 옮기는 동안 녀석들의 몸에 지닌 모래 알갱이 몇이 점시 위로 떨어졌다. 어쩌면 저 모래 알갱이 조차 녀석들이 화석으로 변하게 될 찰나를 동시에 경험했는지 모를 일이다. 맨 처음 녀석들을 만났을 때는 어릴 때 고동 꼭지 부분을 떼고 쪽쪽쪽 빨아먹던 식품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바닷가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녀석들이 살았던 과거며 현재의 나의 삶이 동시에 오버랩되는 것. 어느 날 초고온의 액체가 바다로 흘러들 때 녀석은 몸서리쳤을 것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당신을 이루고 있던 껍질만 남게 된 것.  그런데 수 천년 혹은 수 억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바닷가에서 당신을 추억해 줄 한 인간을 만나게 된 게 아닌가. 


세상의 삶은 녹녹지 않다. 금수저로 태어나던 흙수저로 태어나던 남자로 태어나던 여자로 태어나던.. 각자의 처지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어떤 처지에서 당신의 삶을 살아갈 망정 행운을 경험하는 것은 당신의 의지만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나의 삶' 전부를 세상에 던져야 나의 흔적이 남는 건 아닐까.. 운동에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화석들을 보니, 평소 우리가 먹던 음식이 그렇게 귀해 보일 수 없다. 그나저나 나는 어떤 화석으로 남게 될까..?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아래 영상은 평소 글쓴이가 산책 겸 운동삼아 걷던 뿔리아 주 아드리아해 바를레타 해변의 풍경이다.


Fossile di Conchiglia del mare
Raccòlta dalla Spiaggia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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