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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06. 2019

내가 멸치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한국 음식이 이탈리아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들 때


세상에 이런 일이..나를 한방에 무너뜨린 풍경 앞에서..!!



브런치 이웃이 흔들어 깨운 향수병


나흘 전의 일이다. 브런치에서 만난 이웃 남쌤 작가님이 글쓴이의 브런치에 댓글을 남겨 이 글을 끼적거리게 됐다. 그분의 프로필을 보면 작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음악 전문가인데, 요리 또한 취미 이상의 전문가 냄새를 풍겼다. 최근 그분의 브런치를 열어보면서 요리 솜씨가 걸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제목은 외할머니의 코다리였다. 제목을 통해서 이 요리의 출처는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된 것 같았다. 브런치를 열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태 코다리 시래기찜 때문에 단박에 소주가 생각나는 것. 남쌤 작가는 글 속에 이런 표현을 남겼다.


"(밥 먹다 말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참 솔직한 표현인 것 같았다. 글쓴이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맛있는 반찬이나 요리를 보는 순간 소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랄까. 해외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글쓴이가 맛본 양주는 부지기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누군가 내민 소주 앞에서 까무러치게(?) 된다. 




지워질 수 없는 유전자 속의 고리들


도수 높고 향긋한 고급 양주에서 느끼지 못했던 두고온 고국의 향수가 가득 담긴 달짝지근한 소주이자, 너무도 친근했던 벗이나 다름없었다. 친구를 좋아한 내게 친구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소주 때문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누군가 나의 시후에 나의 유전자를 분해하면 그 속에 '소주'라는 이름의 고리가 발견될지도 모르겠다.ㅋ


이 같은 질긴 인연은 소주뿐만 아니다. 고추장이나 김치 혹은 된장이 그것일 것. 먼 나라 이국에서 생활할 때 이런 양념이나 반찬이 없어도 잘 지냈는데, 이 또한 어느 날 누군가가 불쑥 내밀면 같은 표정으로 까무러치게 되는 것. 남쌤 작가가 나의 브런치 배추 겉절이가 절절이 생각난 하루에 남긴 댓글은 이랬다.


"이탈리아 음식이 좋아도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이지요. 건강 잘 챙기세요~"


정곡을 찌른 옳은 말씀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에도 운명처럼 따라다니던 한국음식에 대한 향수병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살고 계시는 교민 여러분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또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동양인들도 그들이 일상에서 늘 먹던 음식을 주로 먹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음식이 이탈리아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 들 때


비록 최근에 이탈리아 요리를 연구하고 있지만, 이 같은 사정 등에 따라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리스또란데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늘 생각한 게 있다. 한국음식은 식 재료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만드는 음식이 대부분이지만, 이탈리아 요리 혹은 유럽의 요리들을 잘 살피면 식재료의 원형이 대부분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 따로 설명하지 않으면 이게 무슨 요린가 싶을 정도로 형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탈리아 현대 요리는 이 같은 현상이 도드라져 매우 단순한 게 눈에 띈다.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요리도 실상은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것. 내가 미슐랭 별을 단 리스또란떼에서 일할 때 식품재료 창고에서 만난 식 재료 혹은 향신료들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귀국할 때까지 내가 습득한 향신료 등은 겨우 20~30%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특정 향신료 등을 인지했다고 해도 요리에 적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현대 요리에 왜 이같이 복잡한 과정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을 계속하게 됐다.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른 요리법 때문이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남쌤 작가의 명태 코다리 리체타도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하며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이다. 이맘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랄까. 이탈리아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실상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아서 그들이 늘 먹던 음식을 상에 올려둔 것뿐 별 거 아니었다. 




나를 한방에 무너뜨린 풍경 앞에서


또한 이탈리아 요리 리체타를 둘러보면서 이탈리아가 가지지 못한 요리법 내지 식 재료가 한국에 있음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반도 국가라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공통점을 보이지만, 바다로부터 생산되는 생선이나 해산물 등은 이탈리아가 도무지 따라올 수 없는 것.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보다 한 수 위로 생각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생으로(날로) 먹는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고,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매우 귀한 먹거리이다. 거기에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 없이 고추장 하나만 있으면 매우 간단한 요리가 즉석에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준비과정은 필요하겠지만, 그런 절차는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다. 식재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본연의 맛을 음미하는 것. 오늘날 현대 이탈리아 요리가 지향하는 맛의 세계를 우리는 일찌감치 구현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이틀 전, 나를 한방에 무너뜨린 진풍경은 외장하드 속에서 발견되었다. 남해 투어를 할 때 너무 맛있게 먹었던 생멸치회가 눈 앞에 떡 하니 펼쳐진 것이다. 새콤 달콤 매콤하게 야채와 버무린 멸치회는 보는 순간부터 침샘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또 즉시 내 유전자 속에서 미동도 않은 채 잠자고 있던 오랜 욕망을 마구마구 꿈틀거리게 만드는 것. 

그리고 누가 뭐랄새라 소주병 뚜껑을 톡 따게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제 아무리 질 좋은 포도주를 식탁에 올려놓고 무시로 마신다고 해도, 이 같은 풍경 앞에서는 무용지물로 변하며 무릎을 꿇게 만들며 외마디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아주머니 소주 한 병 더요.. 빨리요..빨리!!"



-이탈리아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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