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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2. 2022

지난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녀와 함께한 지난봄의 아름다운 기억들


비에 젖은 바를레타..!


   서기 2022년 5월 11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사진첩 속에는 거의 매일 기록된 풍경들이 빼곡하다. 풍경들을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우리네 삶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있다. 억만금을 주어도 바꾸지 못할 추억의 시간들.. 그 속에 비에 젖은 바를레타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미 관련 포스트를 통해 언급된 우리 동네 풍경들 속에는 집 앞 지근거리에 위치한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의 풍경을 빼놓을 수 없다. 비에 젖은 바를레타 성..



저녁답에 집을 나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게 바를레타 성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을 보는 듯하다. 성은 11세기 때부터 18세기까지 여러 왕조가 거쳐가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의 해자에는 바닷물이 들락거렸지만 지금은 잔디와 풀만 무성하다. 성 내부에는 시민들을 위한 전시실과 박물관 그리고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지근거리에 바를레타 두오모(Basilica Concattedrale Santa Maria Maggiore)가 위치해 있다. 지난봄 어느 날 비가 추적거릴 때 사내 중심을 둘러보면서 언제인가 비가 오실 때 풍경을 꼭 담고 싶었다. 그때 담은 촉촉하게 젖은 풍경들.. 지난봄에 집 앞 바를레타 성과 바를레타 두오모를 천천히 둘러봤다.



지난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대략 인구 10만 명 정도가 모여사는 공동 수도(Barletta-Andria-Trani)이다. 우리나라 진해, 마산, 창원을 한데 묶은 도시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공동 수도의 도청은 바를레타에 있으며 바를레타의 위치는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에 비교했을 때 장호 뒤꿈치 아래(41°19′N 16°17′E)에 해당하는 곳이다.



바를레타의 가까운 지역에는 오판토 강이 흐르고 있는데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Margherita di Savoia)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상 바를레타와 꽤 많이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 염전이 있다.



그리고 바를레타서 지근거리에 서기 216년에 치러진 안니발레(Annibale)의 역사적 전투가 벌어진 장소가 있다. 우리가 '한니발로 부르는 안니발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전략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포에니 전쟁 중 최대 규모였던 깐네 전투(Battaglia di Canne)에서 당시 로마군을 개박살 대파했다. 당시 로마군은 로마 시민들의 희망에 따라 8만 7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안니발레가 머물고 있던 깐네 평원으로 진격했다. 안니발레에게 북수를 하고 싶었던 로마군은 이 전투에서 거의 몰살에 이르게 된다. 그때 유명한 전술이 '초승달 전법'이었다.


그 결과 로마는 중부 이탈리아의 일부, 남부 이탈리아의 대부분, 북부 이탈리아의 전부를 잃었으며, 또한 시칠리아섬에마저 적을 두게 된다. 따라서 칸네 혹은 깐나이 전투는 오늘날까지도 포위 섬멸전의 가장 뛰어난 사례로 남아 전쟁사를 다루면 반드시 빠지지 않고 다뤄지는 전투로 남았다.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러시아의 테러리스트 푸틴 색기가 우크라이나의 이 전법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녀석은 곧 러시아 땅 전부를 쪼개어 나토 혹은 EU 국가와 미국에 내주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깐네 전투에서 로마군(붉은색)의 파괴를 보여주는 그림


아무튼 안니발레의 깐네 전투가 로마군의 대패로 끝났기 때문인지.. 이곳 바를레타서 불과 30km 떨어진 깐네 평원을 관광객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통일 이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쪽팔림 이상의 패배감이 깃들었을 게 아닌가 싶다.



비에 젖은 바를레타 성과 두오모를 돌아보며, 이곳 바를레타의 역사 일면과 함께 바를레타의 위치를 안네발레가 대승을 거둔 깐네 평원 가까이에 아름다운 도시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서 수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바를레타 구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뷔아 데이 두오모(Via del Duomo) 길은 물론 구도시 전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곳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 둥지를 튼 즉시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스스로 명했던 것이다.



바를레타 두오모의 종탑 아래 아치형 굴다리를 지나면 나지막한 집들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이 골목에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략 3년 전부터 그런 정겨운 풍경이 사라지고만 것이랄끼..



조금 전 굴다리 아래 저편 바를레타 성에서 천천히 걸어서 바를레타 두오모를 둘러보고 있다. 바닥은 비에 젖어 반들반들.. 대리석이 빛을 발하며 도시를 운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한 때 이곳에서 가까운 깐네 평원에서 안니발레에게 대패를 했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역사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바를레타 두오모의 굴다리를 지나 구도시 중심으로 이어지는 곳에 그 유명한 깐띠나 델라 스퓌다(Cantina della sfida))라는 여관이 자리 잡고 있다. 화실을 옮기기 전에는 하니와 함께 그곳을 지나 화실로 이동하곤 했다. 지금은 유적지로 관리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1503년 2월 18일, 이곳에서 당시 바를레타 인들을 얕잡아 보던 프링스 기사들을 물리치면서 오늘날 바를레타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전승 기념일과 다름없는 이 날을 기리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는데 이때 '13인의 용맹한 기사'들이 이곳 중앙 통로를 지나 도시를 한 바퀴 돌며 승전보를 전하는 행사를 하는 것이다. 그때 만난 풍경들이 어느덧 전설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이곳은 두오모의 출입문 곁의 풍경이다. 축생축사..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가 이곳이다. 주로 뺀질뺀질 말을 잘 듣지 않는 젊은 청춘들이 이곳에 모여 환성을 지르고 난리부르스를 추는 것이랄까.



지난해 2021년 7월 11일, 이곳에서 2020 유럽컵 축구 결승전을 지켜봤다. 결승전에서 이탈리아가 영국을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기자 발칵 뒤집어진 곳이다. 두오모 곁이다. 광란의 장면(영상)을 소환해 봤다.



비가 오시면 곁으로는 조용해 보이는 이 도시는 주말만 되면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시내를 배회하곤 한다. 보수적이자 착한 성격에 가톨릭으로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 사는 곳..



그들이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명소를 비 오시는 날에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바를레타 두오모의 출입문이다. 이곳에서 우측 골목으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우리 집..



하늘은 가끔씩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일을 저지르곤 한다. 이곳의 겨울 온도는 섭씨 12도씨 내외이며 봄의 온도는 섭씨 19도씨에 이른다. 여름은 30도씨에 이르고 가을은 22도씨 정도.. 글을 쓰고 있는 5월의 평균 온도는 23도씨 전후이지만, 저녁답의 수은주는 20도씨를 가리키고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후(Clima)의 한 모습일 뿐이다.



요즘 가끔씩 어떤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곳 바를레타로 이사를 온 이유는 순전히 하니의 그림 수업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늘이 구름을 잉태하고 비를 쏟아내듯이 우리에게 행운을 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전혀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하늘의 선물'이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네 젖은 우리 동네 바를레타 성과 두오모를 바라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가끔씩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거나 가대하지 않았던 일이 등장하는 것이다.



로마시대 때 안니발레와 로마군의 깐네 전투를 비롯하여 이탈리아는 그 이후로도 숱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며 정치적 스크레스를 겪기도 헸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탈리아는 물론 이탈리아 남부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안다"라고 말한다.



이틀 전부터 나라의 상징인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되었다. 커뮤니티에 등장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허접하거나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부류들은 귀신을 쫓겠다며 소복을 입는가 하면 복숭아나무 가지를 흔들고 다녔다. 그리고 청와대 뒷산에 올라 국가의 원수가 사라진 텅 빈 장소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먼 나라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풍경이 비에 젖은 바를레타 구도시와 겹쳐 보이는 것이다.



무엇이든 귀하거나 소중한 것은 감추어 두는 게 낫다.



이곳 바를레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약속이나 한 듯 성소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음에 품고 산다.



착하고 용맹하며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똘똘 뭉쳐 사는 곳..



모처럼 지난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아름다운 추억을 돌아보고 있다. 봄비에 젖은 바를레타..!


Bei ricordi della primavera scorsa con lei_L'OFFICINA DEL'ARTE
il 11 Maggio 2022,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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