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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3. 2019

파도여 파도여 난 어쩌란 말이냐

-아드리아해의 성난 파도 때문에 피식 웃었다

국적불문 인종 불문 남녀노소 불문,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답답한 일 앞에서..!!


두 장의 자료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무관한 것으로 날씨가 맑을 때 이곳 바를레타의 바닷가에서 지난 11월 2일에 촬영된 사진이다. 저녁노을이 환상적이다.



서기 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아침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가을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피렌체서 거처를 옮긴 후 처음 본 빗줄기다. 비가 오시는 날.. 다른 날 같으면 외출을 하지 못해 답답해할 것 같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도시 전체를 샤워하듯 쏟아지는 빗줄기가 유난히도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것. 가끔씩 세상은 숨통이 트이는 날씨를 선물하기도 하는데 오늘 내린 비가 그랬다. 그리고 비그친 오후 평소처럼 운동에 나섰다.                                      


대문을 나서자마자 평소보다 다른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패딩 조끼의 작크를 목까지 올리고 바닷가로 나서는데 바람이 점점 더 거세게 불었다. 그래서 보다 짧은 코스인 방파제 쪽으로 걸어갔다. 바닷가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소리다. 내항은 잠잠했지만 울렁거림이 커서 파도소리도 컸다.


방파제 바깥으로 다가가자 바다가 거친 숨을 몰아치며 모래밭과 방파제를 마구마구 핥고 있었다. 최근에 본 가장 나쁜 날씨라고나 할까. 방파제 위에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조깅하는 사람과 낚시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을 텐데, 그들이 비운 자리를 파도가 무시로 넘나들었다. 돌아보니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는데, 나는 파도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댓다.


"그래 다 좋아..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이날 바를레타 외항의 방파제로 무시로 몰아치는 파도를 영상에 담았다.


나는 매섭게 몰아붙이는 파도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며 피식 웃고 말았다. 아동기 유년기 청년기 등을 거치는 성장과정에서 맞닥뜨린 풍경이 불현듯 떠 오른 것이다. 그 풍경 속에는 나를 포함 우리 형제자매들과 친구는 물론 아내와 이웃들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오버랩됐다. 먼저 나의 아동기의 풍경..                                                              

누구나 그러하듯 당시 내가 기댈 곳은 엄마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리한 요구를 엄마한테 하자마자 엄마는 "니가 제정신인가"싶은 표정을 지으시고는 "어서 손발 닦고 밥 먹을 준비나 해"라고 하셨지. 이때 나의 몸동작은 흉내내기도 어렵다. 몸을 좌우로 마구 흔들어대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앙탈을 부리는 것. 형제들의 형평성을 고려해 "NO"라고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한 엄마는 이내 부엌으로 사라지셨다.                                                              


우리 앞에 도무지 불가능한 일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늘에 있는 별까지 따다 바치겠다며 이른바 '뻥'을 쳐가며 구애를 한다. 그런데 이런 구애는 상대방도 어쩔 수 없는지라 아닌 줄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 요런 걸 사랑의 묘약이라 했던가..                                                                                     


아이를 둔 엄마들은 단박에 기억해 낼 것이다. 혼전의 여성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어머니의 비밀'에 속한다. 아이들은 엄마 혹은 부모가 전혀 모르는 언어(몸짓)를 사용하게 된다. 이제 겨우 옹아리를 끝낸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앙탈을 부리는 것.                                                                                                                  




이 같은 동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엔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처음엔 젖으로 달래 보지만 소용없다. 아이 앞에서 재롱을 떨어도 소용없다. 장난감을 흔들어 봐도 소용없다. (그렇지!!)녀석의 사타구니에 채운 기저귀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 옷을 벗겨보면 기저귀가 흥건히 젖었다.                    


어떤 때는 응가 칠갑(?)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당신을 낳고 키운 엄마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당신의 삶 거의 대부분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가 사용한 언어가 '앙탈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앙탈은 알아차릴 수 있지만 어떤 앙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대략 난감한 사정에 처하고 만다. 아내가 까닭 없이 바가지를 바악박 긁거나 연인들 사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 같은 사정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는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 이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나 환경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다 큰 녀석 혹은 어른들의 아랫도리를 벗겨 물로 씻기고 파우더를 톡톡 바르면 기분도 뽀송뽀송해질까.. 그게 그리움이나 외로움 혹은 고독함이라면 더더욱 답답할 것.

세상을 사노라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수록 대책 없는 앙탈을 부릴 게 아니라 출구전략을 세우고 시행해 보는 것. 그게 비록 느릴지라도 최선을 다하면 하늘의 도우심이 따를 게 아닌가. 무시로 방파제를 향해 머리를 처박아대며 소리를 지르는 아드리아해의 거친 파도 앞에서 앙탈 부리는 한 아이를 떠올리며 피식 웃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시인의 노래를 통해 '불가능의 미학'을 돌아본다. 이날 방파제 위를 거닐다 패딩 조끼가 파도에 다 젖었다.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SPIAGGIA _IL MARE ADRIATICO
12 Novembre,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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