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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5. 2019

발가벗긴 뿔고동의 삶

-아드리아해 산 뿔고동을 삶아 먹다가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사흘 전, 나의 식탁 앞에 뿔고동이 수북이 쌓였다. 녀석들은 바를레타 재래시장 가는 길 어느 뻬스께리아(Pescheria)에서 1킬로그램에 3유로에 구입한 아드리아해 산 뿔고동(la Conchiglia del Mare Adriatico)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먼저 녀석들을 푹 쪘다. 그리고 비노 비앙꼬를 곁들여 아점으로 먹었는데 핀으로 녀석의 몸통을 콕 찔러 돌려가며 빼먹는 게 재밌었다.                                                                                                 


다 익은 녀석들은 팬의 뚜껑을 열자마자 뽀얀 수증기에 바다향기를 듬뿍 풍기며 환풍기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접시에 담아 한 알 한 알 천천히 맛을 음미해 가며 뿔고동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 맛은 우리가 즐겨먹던 소라나 고동류의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기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했지만 이날 구입한 뿔고동은 작은 소라 크기만 하여 속살이 새끼손가락만 했다.                                                                                                                                                                                                                                                                                      


출출하던 터라 녀석들은 두 접시로 나뉘어 나의 식탁에 올랐다. 껍질 무게가 속살 무게보다 더 나갔으면 더 나갔지 적은 게 아니어서 두 접시를 다 먹고도 성에 차지 않을 정도였다. 워낙 해물류를 좋아한 이유도 함께 작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몇 개 남은 뿔고동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핀에 의해 빠져나온 녀석의 속살이 눈길을 끈 것이다. 녀석은 발가벗긴 채 한 인간의 식탁에 올라 와 있는 것.

 

녀석들이 식탁에 오르는 과정은 매우 길었을 것이다. 아드리아해의 어느 바닷속에서 가족들과 무리 지어 살다가 어느 날 인간들에 의해 뭍으로 끌려 나오게 된 것. 그리고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어물전에 수북이 쌓여 주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한국에서 온 한 동양인에게 팔려온 것이다. 


내가 녀석들에 대해 아는 건 고동류의 속살이 맛있다는 것과 바다에 산다는 것과 오래전부터 먹어왔다는 것 밖에 도무지 녀석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관련 키워드를 통해 검색해 봐도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들과 그들이 늘 노닐던 장소와 그들만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바닷속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궁금증은 뿔고동 껍데기에 새겨진 주름살(?) 때문이었다. 주름의 수나 크기가 다 똑같을 거 같지만 크고 작은 녀석들을 비교해 보니 저마다 달랐다.(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 ^^)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먹은 큼지막한 뿔고동의 속살은 다른 고동에 비해 연세(?)가 높으신 장수 뿔고동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나이를 조개류(연체동물)와 비교해 보니 재밌는 결과가 나왔다. 더 사이언스 타임지에 실린 조개껍데기의 비밀은 이러했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과학자들이 수천 개의 조개껍데기를 조사하여 지난 1000년 동안의 해양 환경과 기후 변화 기록을 밝혔다고 2016년 12월 6일 자 ‘사이언스 데일리’가 보도하였다. 
연구팀은 아이슬란드 북부 피오르드 앞 북대서양 수심 80미터에서 북대서양 대합(Arctica islandica)을 채집했다. 일부는 살아있었고, 일부는 죽은 조개껍데기였다. 이 조개는 북대서양 찬 바닷물에서 산다. 최장 500년 이상 사는 조개답게 껍데기에는 연륜을 나타내는 잔주름이 아주 많다. 북대서양 대합은 장수 동물 가운데 하나로 507년까지 산 기록이 있다. 
조개껍데기에는 살아온 오랜 세월의 환경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연구팀은 조개껍데기를 잘라 에폭시 수지로 블록을 만들고, 마이크로미터 간격으로 단면을 잘라 줄무늬 형태를 관찰하고,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연대를 재고, 산소 안정동위원소로 기후 변화를 추정하였다. 
연구팀은 각각 시료에서 얻은 자료를 분석하여 100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의 환경 변화를 알아냈다. 정확히 서기 953년부터 2000년까지 1048년간의 기록이다. (이하 위 링크 참조)


자료사진은 글쓴이가 만든 요리 '현지인을 놀라게 한 뿔고동 리소토'에 실렸던 먹음직스러운 뿔고동 속살이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연세 높으신 어느 조가비 님은 500년 가까이 장수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가 할머닌지 할아버진지는 모르겠지만, 조개류는 인류가 지구별이 탄생한 이후부터 각종 동물들로부터 손쉬운 먹잇감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들의 태생 때문이다. 느려 터진 걸음걸이 때문에 빨리 도망칠 수도 없고 숨기도 쉽지 않아 다른 동물의 먹잇감으로 쉽게 노출된 것이다.                                                                                                                      


이런 특성 등으로 조개류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식용으로 제공되어 왔기 때문에 이들을 이용한 요리가 매우 발달해 있는 것. 조개는 날로 먹기도 하고 탕으로 먹는가 하면 구워 먹기도 하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 등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연근해에서 잡히는 조개류 등 해산물은 맛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싱싱한 맛 때문에 날로 먹는 음식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는 게 여간 기쁜 게 아니다. 지구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자료사진은 바를레타 바닷가에서 수집한 화석화된 뿔고동으로 마치 보석 같은 느낌이 든다.


식탁 앞에 놓인 발가벗긴 뿔고동의 속살을 맛보며 살아있을 당시 녀석들의 고향을 떠올리게 됐다. 쫄깃거리며 고소하고 미네랄 향기와 바다내음을 풍기는 맛은 이들의 품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 먹이사슬의 바닥에 위치해 있다가 어느 날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한 동물의 먹잇감이 되는 건 이들의 운명이랄까. 우리도 언제인가 누구로부터 먹잇감이 될 텐데 그때 우리의 맛은 어떨지 뿔고동 속살이 넌지시 일러준다. 타인으로부터 맛있는 인격체로 거듭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당신의 프라이버시가 발가벗긴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Piatto_la Conchiglia del Mare Adriatico Al Vapore
11 Novembre, Citta' di Barletta PUGLIA
Piatto 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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