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경을 선물한 파도와 어느 낚시꾼의 행복
여자들은 잘 모르는 남자들의 비애..!
한 녀석이 뒤뜰 담벼락으로 간 시각은 하교 시간이 가까운 어느 날 오후.. 몽유병 환자가 이랬을까. 녀석은 이맘 때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뒤뜰 담벼락으로 향한다. 뒤뜰은 자동차 한 대가 다닐 정도로 좁았는데 도로와 뒤뜰 사이에 돌담이 빙 둘러쳐 저 있었다. 그 돌담은 큰 돌 작은 돌들이 듬성듬성 쌓여있었는데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도로보다 조금 낮은 돌담 아래에는 새파란 이끼가 자라고 있었고, 돌담 바로 곁 도로 곁에는 꽃다지와 잡초들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녀석은 자세를 낮추어 저만치서부터 다가오는 한 여학생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그녀가 어느 날 녀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그때부터 녀석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뿐이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사귈 수 있을까. 그녀는 녀석의 초등학교 한 해 선배였지만 '사랑에 국경도 없다'는 퇴색된 말처럼 한 해 선배가 아니라 까마득한 선배면 어떠랴.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 해 선배는 하늘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와 사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그녀가 좋아한 정구와 배드민턴을 열심히 배웠다. 녀석이 나의 사춘기적 모습의 단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당당하게 그녀 앞에 서서 "누나, 사귀고 시포요"라고 말하면 될 것을 도무지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런 고백을 했을 때 그녀가 "NO!!"라고 말하면 나는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
그때부터 생몸살 이상의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이런 걸 그녀 혹은 여자 사람들이 알 수가 있겠나. 나는 곧 입시를 앞두고 있었고, 아직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참 바보같은 생각이었지 아마..ㅜ) 당시만 해도 지극히 보수적이자 여자 앞에서 수줍었던 나는, 나의 열병에 비추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바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한 여학생과 사랑놀음에 빠졌다면 얼마나 실망하실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 그토록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는 먼발치서 바라만 봐도 시쳇말로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 짝사랑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선택을 하고부터 두 번 다시 뒤뜰 담벼락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한차례 전국체전 부산시 예선전에서 그녀와 혼성팀을 이룬 게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했던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 짝사랑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도 사춘기에 겪는 여자들이 모르는 남자들만의 열병이랄까. 그녀는 지금쯤 어느 손자의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여전히 단발머리에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예쁜 여학생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같은 심정을 잘 노래한 디제이 디오씨의 노랫말이 썩 가까이 다가온다. 남자들이 겪는 사춘기의 열병 혹은 비애가 그런 모습이다.
-Artista: DJ DOC
어제 널 닮은 여자애를 봤어
물론 네가 아닌 줄 알았으면서도
왜 자꾸 보게 되는 건지
왜 또 너 생각이 나는 건지
가끔은 너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외로워 참 괴로괴로웠나
아프고 힘들 때 그리고 외롭다고
느낄 때 오늘처럼 비라도 오는 밤이면
우리같이 듣던 CD-VIDEO
네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널 생각나게 해 날 힘들게 해 우리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나
이제와 나 후회해봐 오늘 밤도 잠못드네
뒤척이네 널 그리워하네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오늘 우연히 너 얘길 들었어
너 다른 사람 만난다며 (그래야겠지)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 술 한잔 했지)
널 지우려 애써 보지만 여전히
난 너에 대한 그리움만 (널 잊어야 한다는 부담)
오늘도 잠 못 드는 이 밤
(변해가는 세상 변해가는 사람들 그 속에 우리 둘)
우리들이 정말 사랑했었나 왜,
우린 헤어졌나 그렇게 돼버린 우리 사연
그렇게 끊어진 우리 인연 생각해 봤자
후회해 봤자 잊자 잊자 지워버리자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널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어)
힘들어 많이 힘들어 너도 힘들었을걸
생각하니 많이 맘이 아파 네가
정말 보고 싶어 널 안고 싶어
하지만 이젠 그럴 순 없어 이런
내 현실에 비참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비가 와 잠도 안 와 이럴 때 정말
너 생각이 나 그러다 복받쳐올라 자꾸 눈물이 나와
노래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0xSlARIUBK0
오늘 아침(현지 시각), 나는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운동 겸 산책을 나섰다. 최근에는 해변보다 방파제 쪽 코스를 주로 택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방파제와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가 황홀경을 불러일으키며 좋아진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파도를 노래한 시인 유치환 님의 노랫말에 따라 파도는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자 짝사랑이 극에 달했을 때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다고나 할까.
무시로 뭍으로 드나들며 할퀴어봤자 꿈쩍도 않는 것. 그 파도를 카메라에 담으며 오래전 내가 겪었던 짝사랑을 떠올렸던 것이다. 혼자 씩 웃었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건만 사춘기 때 형성된 자아는 변함없이 당시의 짜릿한 짝사랑의 흔적을 기억해 내는 것. 참 희한한 일이다.
이날 아침, 그곳에서 어느 낚시꾼을 만났다.(위 영상) 또래의 그는 작은 바스켓에 물고기 몇 마리를 낚아두었는데 행복해하며 짧은 인터뷰를 남겼다. 하루 열 댓마리 혹은 수무 마리 남짓한 물고기를 잡는 동안 너무 행복하단다. 그런데 낚싯밥을 잘못 문 녀석들의 입장은 크게 다를 것. 그들은 결코 어느 낚시꾼을 좋아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내가 만약 짝사랑한 여학생에게 고백을 한 후 퇴짜를 맞았을 경우의 수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게 아닌가. 물론 성공할 수도 있었겠지..ㅋ 세상사 참 묘하다. ^^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ONDA ROMPERSI_abbarbagliaménto
15 Novembre, La mattina Barletta PUG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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