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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17. 2022

그녀와 함께 꼭 가 보고 싶었던 곳

-신께서 파타고니아에 숨겨둔 아름다운 도시 코자이케

너무도 간절했던 시간..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


   서기 2022년 7월 17일 아침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오래된 파타고니아 여행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그곳에는 보랏빛과 하얗고 옅은 분홍빛이 도는 초초(Lupines)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 드리워진 이곳은 북부 파타고니아의 명소 꼬자이께의 리오 심프슨(Rio sympson) 강변의 풍경이다. 

하니와 함께 파타고니아 여행을 시작하면서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이 찾아들어 거의 한 달간 침대에 드러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당시의 기록을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편에 기록해 두었다. 끔찍한 경험이자 차마 딛기지 않은 기적이 내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때 내가 걸을 수만 있다면 '그녀와 함께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어느 날 나 홀로 카메라를 메고 꼬자이께 주변을 돌아보다가 만난 비현실적인 풍경들.. 그곳은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충만한 곳이었다.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하니와 함께 그곳을 반드시 찾아가고 싶었다. 너무도 간절했던 시간들.. 그 장소를 여러 차례 여러분들과 공유하기로 한다.




미리 읽어두는 글


내 친구 뚤리오에게

너무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게 됐소. 나는 우여곡절 끝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현재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아마도 별일이 없는 한 나는 이곳에서 살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나의 아내는 이번 주말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돌아올 예정이랍니다. 그것도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라 꽤 긴 시간 동안 내 조국의 생활 대부분을 정리하고 돌아올 예정이오. 


나는 그동안 당신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며 사진첩을 열었습니다. 그 속에 차마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기록되어 있었던 거지요. 당시를 회상하니 단박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당신이 베푼 친절 이상의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거지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어째.. 당신이 베푼 은혜는 한 올도 다치지 않고 사진첩 속에 오롯이 남아있는지.. 



당신의 아내 마리아와 아들내미 그리고 우리 내외 다섯 명이 나누어 탄 차 속에서 당신은 주로 나를 배려했지요. 먼 나라에서 여행 온 이방인에게 무시로 베풀어준 친절.. 꽤 긴 시간이었지만 전혀 불편한 내색은커녕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일 모르는 바 아니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나와 아내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합니다. 또 그때마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지요. 아마도.. 그때 두 분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았다면, 최소한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주검을 목전에 둔 상황과 다름없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내게 큰 희망을 불어준 사건이 당신과 함께한 드라이브였습니다. 



당신은 그저 작은 친절을 베푼 것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내겐 절박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이 없었다면 절망 끝에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지요. 


내 친구 뚤리오.. 당신과 탑승 동행자들은 그 같은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사진 한 장을 카메라에 담을 때마다 나는 고통의 몸부림을 쳐야만 했소. 조수석에 앉아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허리는 찢어오는 듯했고, 누군가 골수에 뾰족한 바늘을 쑤셔대는 아픔이 이어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당신과 마리아가 우리에게 베푼 은혜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여행 때문에 견디고 또 견뎠지요.



내 친구 뚤리오.. 그런 당신이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여러 차례 우리를 데리고 최고의 풍광을 선물해 주고 있는 동안 서서히 새로운 삶의 기운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삶을 포기하다니요..! 


나는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길 위에서 나 혼자 걷기 연습을 통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지요. 그때마다 몇 발자국도 걷지 못해 길 위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울 힘도 없었지요. 소리를 지를 힘은 더더욱 없었으니 말이죠. 



아내는 매일 저녁 습포 마사지를 했으며 병원에 들러 검사를 해 봐도 아무런 처방도 받지 못한 채 다시 숙소로 돌아오며 절망의 한숨만 쉬었답니다. 여행 중에 거의 한 달을 침대에 누워 지냈으니 아내는 또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했을까요.. 


내 친구 뚤리오.. 그때 당신은 우리에게 "잠시 바람이나 쇠자"라고 했지요. 지금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제안한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대서양을 건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꼬자이께로 갈 수만 있다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을 조수석에 앉히고 싶습니다. 우리가 봤던 천국 같은 풍경 속으로 내가 당신을 안내하고 싶은 거지요. 친구여.. 그때까지 부디 몸 건강하시고 가내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오랜 벗

Yookeun Chang으로부터 




나는 위의 편지를 솔직한 마음을 담아 친구가 안내한 잊지 못할 드라이브 편에 썼다. 글이 발행된 후 브런치 이웃 여러분들의 따뜻한 성원이 쇄도했었다. 깊은 감사의 말씀드린다. 그리고 이 포스트는 후속 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이 계속될 때 나는 실제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한편 만약 내가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보라색 초초(lupines)가 흐드러지게 핀 계곡에 꼭 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기적같이 되살아난 나는 스스로에게 한 약속에 따라 묵직한 카메라를 다시 어깨에 걸쳐 메고 리오 꼬자이께(Rio Coyhaique) 계곡으로 향했다. 거의 한 달만의 일이었다.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숙소에서 2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면 칠레의 7번 국도(Carretera Austral) 변에 도착한다. 우리가 묵었던 꼬자이께는 뿌에르또 몬뜨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다가 차이텐에서 이 도시에 진입하면서 두 개의 강 사이로 진입한다. 우측은 리오 심프슨(Rio simpson)의 강이 흐르고 좌측은 리오 꼬자이께(Rio Cohaique) 강이 흐르는 것. 리오 심프슨은 수량이 풍부하고 길게 이어진 반면, 리오 꼬자이께는 수량이 적은 작은 강이다. 



우리가 차이텐에서 이동하여 이 도시를 처음 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도 두 줄기의 강 때문이었다. 먼 데서 바라보면 두 줄기의 강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듯 절벽 사이에 도시가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친구 뚤리오의 도움으로 도시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다시 올라서자, 저 멀리 리오 꼬자이께 계곡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그때 나는.. 나의 형편에 전혀 걸맞지 않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런 기회가 찾아든다면.. 나는 반드시 그 계곡을 찾아갈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이런 풍경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지만, 전혀 듣보잡 여행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 기회가 찾아든 것이다.




나는 기적같이 회생하여 어느 순간부터 숲 속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은 리오 꼬자이께 계곡에는 몇 가구가 살고 있지 않았는데, 지천에 널린 초초 때문에 어지러울 정도였다. 천상의 꽃이라 불러야 마땅한 꽃들이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이다. 나를 기적적으로 살려낸.. 하늘이 베푼 최고의 향연이랄까.. 



나는 이때부터 초초 삼매경에 빠져 허우적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내는 그것도 모른 채 숙소에서 이제나 저제나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었다. 한 달 내내 드러눕다시피 한 사람이 잠깐 바람 쇠러 나간 줄 알았더니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므로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것. 초초 삼매경에서 깨어나 숙소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단단히 삐쳐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내가 만난 신세계를 아내에게 낱낱이 일러바쳤다.

나: 여보.. 기막힌 데를 발견했어. 낼 나랑 함께 가 보자고.. 고고고고고!! (씩 ^^)

아내: 허리는 괜찮아? 얼마나 걱정했다고.. 고고고고고!! (삐침ㅠ)



계곡은 키 큰 수풀이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숲 속은 적당히 어두웠으며 뭇새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먼 나라.. 꿈나라.. 꽃피는 나라.. 졸졸 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는 졸고 자빠진 보랏빛 초초를 쉼 없이 일깨우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내가 일어나지 못했다면.. 기사회생하지 못했다면 나와 전혀 무관한 풍경이 아무도 모르는 풀숲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을 게 아닌가.. 사람들은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천국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개똥밭을 그리워하는 모순에 빠져 사는 것. 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국보다 개똥밭이 더 좋아..!!



개똥밭으로 가는 길은 좁았다. 한 때 이곳으로 사람들이 휴식처로 삼았는지 모르겠다. 또 원주민 몇 가구가 이 계곡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한 여행자를 반기고 있는 것. 이 시간만큼은 내가 접수한 미지의 세상이자 개똥밭이었다.(물론 개똥은 보이지 않았다.) 봄이 무르익기 시작한 리오 꼬자이께는 인적을 거부한 채 단 한 사람의 출입을 허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 그 계곡 속에 천상의 꽃 보랏빛 초초가 신기루처럼 자꾸만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초초의 요정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하늘나라에 청원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지신명이 하는 일은 늘 인간의 계획 밖에 있는 것. 우리가 계획할지라도 실천은 하늘의 몫이라지 않는가.. 사실이 그러하지 않다면 내가 미쳤거나 누군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렸을 것.. 보라색 꽃이 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지만.. 내가 다시 걸을 수 없었다면, 이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꿈도 꾸지 못한 채 사람들로부터 일찌감치 잊혀 갔을 것이다. 간절한 소망..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 꼭 찾아가고 싶었던 계곡에서 아내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 포스트가 발행되는 시간은 아침나절.. 혹시 짬이 생기면 한 두 편 더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끼적거릴지 모르겠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면서 짬짬이 귀국 준비를 했다. 다음 주 중에 한국행 뱅기를 타고 오랜만에 조국의 땅을 밝게될 것이다. 그때 생각난 게 파타고니아 여행 당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아픈 기억들이자 천지신명의 보호 하심을 몸소 체험했던 기적의 신유은사 체험이다.



세상은 가끔씩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통해 신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것이랄까..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그곳에는 항상 하인리히 법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당신이 만든 작은 흠집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는 것이랄꺼..


오늘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을지언정 하늘은 늘 쪽문을 열어놓으시고 당신을 기다리신다.



하늘의 천사들이 당신과 늘 함께 동행하고 있다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려있을 것이다.


귀국을 코 앞에 두고 그동안 내 곁을 스쳐 지나간 행불행을 돌아보고 있다. 그러나 내 삶에는 결코 불행이 없었다. 행운이 늘 함께한 것이다. 파타고니아 여행 당시 체험한 신유은사가 그저 된 일이 아닌 것처럼,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는 행운은 당신의 마음가짐이자 하늘을 늘 가슴에 품고 동행하는 일일 것이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땅 내 조국으로 향하는 여정이 일상처럼 그저 담담한 것도 운명의 한 조각일 뿐이겠지..


다만, 모처럼 노트북을 내 조국으로 이동시켜 그곳에서 독자님들과 이웃분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설렘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든다. 보고 싶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아우님들아 그리고 형제자매들아.. <계속>


Una bella città nascosta da Dio in Patagonia_COYHAIQUE CILE
il 17 Luglio 2022, La Disfu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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