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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0. 2022

피렌체, 마법의 도시로 변한 12월

-죽기 전에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



   어느닐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에서 만난 풍경 속에서 르네싱스(Rinascimento)의 본고장이 왜 사람들로부터 유명세를 타고있는지 단박에 알게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당시 짧은 시간동안은 잠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잠시 뜸하긴 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는 한 해 300만명에 달한다고 하므로 우리 행성에 살고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잊지않고 찾는 명소임에 틀림없다. 



워낙 많이 알려진 도시여서 일일이 피렌체(피렌체라 쓰고 '퓌렌쩨'라 읽는다)의 역사 등에 대해 언급하는 게 부적절해 보일 정도이다. 우리는 이 도시를 죽기 전에 딱 한번만 살아보고 싶어서 인생후반전 전부를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스토리텔링으로 빼곡한 이곳을 단 며칠 동안 둘러본다는 건 도무지 성에 차지않을 뿐만 아니라 고도에 깃든 이야기들은 한시도 숨을 돌릴 틈을 주지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탈리아 비자(visto per residenza elettiva)를 발급받고 퓌렌쩨의 중심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곁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 바로 앞에 집을 얻었다. 그리고 날이 밝는 즉시 거의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퓌렌쩨 곳곳에 발도장을 찍고 다니곤 했다. 마치 생전 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들처럼 먹고 또 퍼먹은 시간여행을 통해 허기를 채우곤 했던 것이다. 



그 중 미켈란젤로의 흔적은 기본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생생한 예술작품과 단테가 사랑한 베아뜨리체의 흔적 등으로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길증을 풀곤 했다.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 우리를 목화솜처럼 포근하게 감쌌으며 누군가 퓌렌쩨를 읊조리면 오래되고 친근한 고향집을 보는 듯 했다. 



포스트를 열면 이곳을 찾은 세계의 관광객들이 아르노강 저편으로 사라지는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하기 위헤 모여드는 명소 미켈란젤로 광장 한켠에 마련된 계단에 연인들끼리 혹은 삼삼오오 일생들이 모여앉아 르네상스의 고도 퓌렌쩨를 만끽하고 있는 풍경이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일몰의 흔적과 고도를 감싸고 도는 아르노강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을 가슴에 담고 하나 들씩 자리에서 일어나 뽄떼 베끼오(Ponte Vecchio)를 건너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을 지나 두오모롤 이어지는 중앙통로(Via Calimaruzza)를 따라 걷게될 것이다. 



다수의 관광객들의 동선은 주로 이러하며 어떤 사람들은 뽄떼 베끼오 주변의 잘 차려진 리스또란떼서 이탈리아 요리 삼매경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 한편 다수의 관광객들은 우리가 살고 있던 메디치 예배당 근처의 먹자골목에서 싸돌아 다니느라 허기진 배를 채울 것이며, 토스카나 주의 명물 비스떼까(La bistecca alla fiorentina)를 눈독 들일 것이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 불야성을 이루는 이곳에서 시간여행을 즐기며 하루를 보내게 될 것. 이때 사람들은 르네상스 요리(cucina rinascimentale)를 만나며 미켈란젤로의 도시의 또 다른 맛을 즐기게 될 것이다. 르네상스 요리의 맛을 잠시 들여다 볼까..




Storia della cucina rinascimentale

르네상스의 요리 이야기


르네상스 시대의 식습관(le abitudini alimentari del Rinascimento)을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르지않는다. 글쓴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 최초로 리스또란떼서 일한 경험이 있는 곳이 이곳 퓌렌쩨의 미켈란젤로 광장 근처에 위치한 오래되고 유명한 리스또란떼였다. 



겉보기와 달리 이 리스또란떼에 예약을 하고 입장을 하게 되면 근사한 중세풍의 살롱을 만나게 된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중세 때는 물론 현대에도 이탈리아 요리의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지면과 시간 등을 요구하므로 삶 전체를 칼럼에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요리의 종류와 풍미 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급 리스또란떼를 찾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몇몇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른바 부르조아 계급이라 할 수 있다. 어쩌다 보통 시만들이 리스또란떼를 찾을 수 있겠지만 요리의 세계는 그들에게 가혹하다. 우리의 표현에 따르면 "고기도 먹어본 넘이 잘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요리는 주로 그러하더라. 



어떤 사람들은 토스카나 주의 주도 퓌렌쩨를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컵라면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그분들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요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 리스또란떼서 먹은 조식 혹은 석식은 나의 입맛에 잘 맞지않았다. 너무 짰다. 쁘리미를 담당하던 요리사 1인이 만든 스파게티를 포르께따(forchetta, 포크)에 돌돌 말아 입속으로 가져간 직후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뱉어버릴 정도로 맛짜가리 1도 없었다. 



그런데.. 꾸치나의 요리사들과 살롱의 까메리에레(cameriere)는 물론 셰프까지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그 즉시 핑게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속으로 


"무슨 요리의 간을 이띠구로..궁시렁궁시렁.."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입맛은 매우 촌스러웠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곳의 음식 맛은 중세로부터 이어진 것이며 짠맛을 중화시키는 건 달콤한 맛이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중세로부터 이어져온 것들이었다. 



중세 요리의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양의 우유와 유제품의 사용이었다면, 마침내 버터가 라드만큼 중요한 지방 재료가 되었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크림인 '우유 껍질'과 함께 모든 종류의 포르맛지오(Formaggio,치즈)들이 식재료로 사용됐다. 이전 시대의 유산은 구운 고기, 속을 채운 파스타, 케이크, 파스티, 그리고 금으로 장식되거나 색깔로 덮인 '살아있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현대 이탈리아 요리는 르네상스 때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가정식 식단'에서는 그들의 선조 부르조아가 먹던 차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후추 등 향신료가 등장하면서 요리의 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늦깎기로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내게 톡 쏘는 짠맛이 르네상스 시대를 겨우 맛 보게 했을 뿐이랄까.. 퓌렌쩨에 12월이 오시면 나의 요리 입문 추억과 함께 보다 달콤한 시간이 다가온다. 




피렌체, 마법의 도시로 변한 12월

-죽기 전에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서 일을 하거나 하니와 함께 살았던 추억 가운데 12월은 특별하다. 12월이 오시면 이 도시 전체는 마법에 휩싸인 채 이방인들을 맞이하게 된다. 



어린 미켈란젤로가 골목골목 뛰어다니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을 도시 곳곳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성탄 트리(Albero di Natale)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두오모로부터 뽄떼 베끼오 다리까지 이어지는 중앙 통로와 단테와 베아뜨리체의 만남이 이루어진 뽄떼 산타 뜨리니따(Ponte Santa Trinita)로 이어지는 통로(Via del Parione)의 풍경은 압권이다. 



이런 풍경들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12월이 되면서 연초까지 이어진다. 마법의 도시로 변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성탄트리 속으로 빠져들며 한 해를 보내곤 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살아보고 싶었던 미켈란젤로의 도시가 선물한 최고의 작품이 12월에 탄생하는 것이다. 그 현장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자니 퓌렌쩨가 자꾸만 나를 향해 손짓을 한다. BUON NATALE..!!




*르네상스의 요리 이야기(Storia della cucina rinascimentale) 출처: https://www.taccuinigastrosofici.it/ita/news/moderna/busi---curiosita/Storia-della-cucina-rinascimentale.html



Le fonti per comprendere le abitudini alimentari del Rinascimento si possono attingere dalla fiorente “letteratura di cucina” per le classi nobili, e dagli Statuti delle città per la borghesia e i contadini.

L’arte del cucinare toccò in Italia vette senza pari in Europa, con pratiche e piatti che restarono però d’ispirazione medievale, con il perpetuarsi del gusto dolce e salato mischiati assieme, e presentati  teatralmente.

Gli addetti al servizio della tavola erano dei professionisti, e nella gerarchia il cuoco (spesso di umili origini), veniva dopo il trinciante, il bottigliere, lo scalco, cariche rivestite di solito da persone di estrazione sociale elevata. Il cuoco doveva realizzare al meglio le ricette che gli venivano ordinate, conformandosi ai gusti del padrone o dei suoi ospiti illustri, ed alla regola che privilegiava tutto ciò che era raro e costoso, in nome del fasto e del lusso che contraddistinguevano la tavola di un uomo superiore. Per gli allestimenti dei banchetti ci si avvaleva della collaborazione di artisti e artigiani tra i più noti dell'epoca, che trasformavano il pasto in una vera e propria messinscena teatrale.

Anche in questo periodo la gastronomia fu soggetta alle stesse prescrizioni religiose del Medioevo, e perciò obbligata all'alternanza dei giorni di grasso e di magro. Lo sviluppo di una cucina "magra", ricca ed elaborata, divenne perciò una sezione importantissima dell’arte culinaria del cinquecento.

Del passato restò l'abbondante uso delle spezie, anche se sensibilmente attenuato, ma leggendo i testi di cucina dell’epoca si può dire che il gusto dominante fosse quello dolce. Infatti, lo zucchero, ingrediente di distinzione sociale per la corte, opportunamente elaborato portò all’invenzione della “moderna” pasticceria e della confetteria: l’arte delle marmellate e dei dolciumi d’ogni tipo.

Se uno dei tratti sorprendenti della cucina medioevale era l’uso assai parco di latte e latticini, fu con il Rinascimento che il burro divenne finalmente una materia grassa d’importanza pari allo strutto, e formaggi d’ogni tipo assieme alla “pelle del latte”, ossia la panna fino ad allora ignorata, entrarono fra gli ingredienti delle ricette.

Dell’epoca precedente rimasero come eredità gli arrosti, le paste ripiene, le torte, i pasticci in crosta, e gli animali "come vivi" (ricomposti e rivestiti del loro piumaggio) decorati con oro o ricoperti di colori.

Un altro elemento proveniente dal passato, fu l'uso delle salse leggere, a base di frutta o di piante aromatiche, con leganti o addensanti come mollica o pane abbrustolito, farine varie, mandorle o uova.

Nella gastronomia rinascimentale italiana vi fu una grande scelta d’umidi e guazzetti, oltre ad una fioritura straordinaria di paste tirate e farcite, da superare di gran lunga la produzione straniera, che all'opposto non valorizzava la pasta nella propria cucina.

Gli agrumi rimasero elemento aromatizzante basilare, e la frutta acquistò una posizione preminente fra le pietanze servite in apertura del pasto. Verdure, legumi e insalate, godettero di una certa attenzione, acquistando un proprio ruolo, grazie soprattutto al massiccio ricorso agli aromi locali.

In quest'epoca si andò notevolmente rafforzando l'uso della carne macellata, specialmente del manzo e del vitello, e nacque una vera e propria passione per le frattaglie e le interiora degli animali.


L'albero di Natale della città più bella del mondo_FIRENZE
il 05 Dicembre 2022,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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