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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2. 2023

엘 찰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첫눈에 반한 파타고니아 사진첩 #22


초행길에 천사가 되어준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고사목이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이곳은 전설의 땅 엘 찰텐이라는 곳이다. 우리는 이른 새벽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엘 찰텐의 숙소를 떠나 꽤 먼 길을 이동하고 있었다. 그동안 저 멀리 비에드마 호수 위로 해님이 엘 찰텐을 비추었고 피츠로이 암봉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피츠로이 산을 품고 있는 엘 찰텐은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관련 포스트 <파타고니아,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편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엘 찰텐(El Chalten)의 명산 피츠로이(Il monte Fitz Roy)가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피츠로이 산은 쎄로 찰텐(Cerro Chalté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찰텐(Chalten)이라는 이름은 파타고니아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의 언어 Aoniken(lingua aoniken)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이 말은 '흡연하는 산'을 의미하며, 동태평양에서 발원한 습기가 거의 매일 피츠로이 암봉 끄트머리에 인개과 구름이 형성하는데 그 모습이 '담배를 피우는 형상'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산을 원주민 마푸체 사람들은 '신성한 산'으로 여겼다. 피츠로이가 위치한 곳은 아르헨티나 산타크루즈 주의 국립공원으로 로스 글라시아레스(Los Glaciares)와 칠레 쪽에서는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국립공원(parco nazionale Bernardo O'Higgins)의 일부를 형성한다. 피츠로이 산군의 최고봉은 해발 3,405미터에 이른다. 위치는 관련 포스트 <파타고니아,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오래전 이곳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이 '담배를 피우는 산'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지명이 엘 찰텐이며 세로 찰텐(Cerro Chaltén)이라 불렀던 것이다. 원주민 인디오들이 담배 연기 모르고 안개와 구름을 몰랐을까.. 그들의 세계관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많이도 달랐던 것을 전설을 통해 넌지시 알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인간 중심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함께 엮어 이해하는 것. 누구든지 당신의 이익이나 이해만을 위해 생각하며 하지하책이자 불행을 초래하는 일이며, 당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물을 함께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행복해지는 원리랄까.. 여행 중에 만난 새 한 마리에 대한 단상을 이어간다.



엘 찰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첫눈에 반한 파타고니아 사진첩 #22



파타고니아 여행을 하던 어느 날 하니와 함께 엘 찰텐의 숙소를 떠나 피츠로이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중 눈에 띄는 한 장면을 발견했다. 저 멀리 나무 꼭대기 위해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피츠로이 암봉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스토리텔링이 될 거 같은 느낌에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길을 걸었다.



그런데 녀석은 아까부터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앉아 여전히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때부터 숲길을 이동하면서 녀석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박제된 그림자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왜 나의 눈에 띈 것일까..



다시 열어본 담배를 피우는 엘 찰텐의 담배를 피우는 산 피츠로이에 대한 전설이 꿈틀거렸다.



남미일주 여행에서 만난 잉카문명의 신비스러운 건축물 마추픽추에 얽힌 이야기 중에 당시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추픽추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곳에 가 봐야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고 믿었을까.. 사람들은 독수리가 하늘의 전령사라 믿었으며 당신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가는 천사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조류 중에 가장 큰 몸짓을 한 독수리의 임무가 하늘의 전령사라면, 그 보다 너무 작은 새들이나 생김새가 다른 조류들은 하늘이 보낸 제각각의 달란트가 있을 게 아닌가..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남미대륙으로 여행온 두 사람 앞에 등장한 새 한 마리.. 그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이 보낸 또 다른 전령사라고 생각하니 천사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천사가 등 뒤에 두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우리 인간의 상상력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살아오면서 내가 만난 천사들은 우리 이웃에 충만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은 천사들 품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조류를 향하여 '새 대가리' 운운한다. 참으로 새대가리 같은  발상이다. 조류는 우리 인간이 우리 행성에 등장하기 전부터 조물주의 부름을 받은 귀한 녀석들이다. 위키백과의 기록을 살펴보면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조류의 발달



중생대 쥐라기에 공룡으로부터 분화된 조류는 신생대 초기에 진화가 완성되었다고 보는데, 그 증거로는 우선 이빨이 없어지고 각질인 부리를 갖게 되었으며, 체온이 일정해졌다. 발달된 깃털도 났다. 그리고 심실(心室)이 4개인 심장이 있고, 동맥과 정맥이 완전히 분리되며, 뇌가 커지고 눈이 발달하여 시각이 예민해진다. 따라서 색채도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청각도 발달하는데, 물새의 경우는 후각도 발달했을 것이다. 나는 운동이 격렬하므로 신진대사도 격렬해진다. 또 지저귈 수 있게 되고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었으며, 군생하는 종류가 많아졌는데, 계절에 따라 서식처를 옮기는 철새 따위가 생긴 것은 그 이후일 것이다. 새는 날아다니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부는 두 발로 땅 위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타조나 화식조(火食鳥) 따위가 그 예인데, 뉴질랜드의 키위 등은 앞다리가 퇴화하여 날개도 없으며, 펭귄은 헤엄을 칠 수 있다.
이들 조류는 날 수가 없어 지상에 산란하게 되므로 인류에 의해 멸종된 것이 많다. 뉴질랜드의 모아 따위는 인류가 이주하기 전까지는 번성했지만 결국 인류에 의해 멸종되고 말았다. 아프리카에 서식했던 조류도 최대의 알을 낳는 에피오르니스 따위도 인간의 사냥감으로 희생되고, 알은 지상 포유류의 먹이가 되어 멸종되었을 것이다.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조류는 지상에서 생활하며 낮 동안에 활동하므로 인간이 가장 연구하기 쉬운 동물이다. 조강(鳥綱)의 세계적인 종류는 연구자에 따라 아종(亞種)과 종(種)의 견해는 달라도 대체적인 종류는 정해져 있어, 분류학상 가장 세밀하게 조사된 무리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중생대(中生代, Mesozoic Era)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는 황해와 동해의 구분 없이 중국, 일본 열도와 맞붙어 있었다고 하므로 우리가 함부로 부르는 새대가리는 어쩌면 누워서 침 뱉기 같은 표현이 아닐 수 없는 재밌는 현상이자 조류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가소로운 게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자랑할만한 바행기의 발명도 조류의 진화 보다 한참 더딘 최근의 일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지구 역사 45~46억 년의 끄트머리에 살아가면서 함부로 새대가리 운운하는 것일까..



새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사람들 마다 관점이 다를 것이다. 그저 평범한 조류로 생각하면 별 볼일 없는 녀석이 될 것이나. 하늘이 보낸 전령사 내지 천지신명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귀한 풍경인가.. 세상은 당신 곁에 머무는 풍경이나 미세한 소리 하나까지도 그저 된 법이 없다. 나 혹은 당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이자 어떤 때는 산화와 환원 괴정을 가치며 당신을 새롭게 행복하게 만드는 작용을 할 수 도 있다는 것.



그래서 '새의 노래'를 하고 있던 이웃들의 문학 작품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새에 관한 시 모음>으로 인터넷에 등재되어 있었다. 링크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하찮게 여기거나 여겨왔던 '새대가리'에 대한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작품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새에 관한 시 모음




새는

공깃돌.


나무가

하늘 높이

던졌다 받는


예쁜 소리를 내는

공깃돌.


-정운모·아동문학가



참새가슴


참새더러

가슴이 작다고

흉을 보지요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


참새가슴이 커 봐요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겠어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없는 건

보나 마나

욕심으로 커진

가슴 때문일 거예요.


-이성자·아동문학가



까치집


높다란

미루나무에

까치집 세 채


학교도

우체국도 없는

아주 조그만 마을


-양재홍·아동문학가



까치집


바람이 찾아와

까치집을 가만가만 흔들어 주고 있다.


― 맛있는 먹이 물고 이제 곧 엄마가 돌아올 게다.

― 아가야 더 자거라, 아가야 그때까지 조금만 더 자거라.


엄마까치 올 때까지

나뭇가지를 가만가만 흔들어 주고 있다.


-이무열·아동문학가



산까치에게


염소똥만 한 콩알

쥐똥보다 작은 깨알

흙 속에 꼭꼭 숨어 있어도

잘도 찾아내는 산까치야,


배고프면 우리 밭에 앉으렴

대신 어떻게 하면

너처럼 밝은 눈을 가질 수 있는지

좀 가르쳐 주렴.


혼내려는 게 아니야

그냥 물어보는 거야

눈 어두운 할머니께

알려주려고.


-곽재구·시인, 1954-




그래서 산새들은


내 나무

네 나무

따로따로 자기 나무를 가지지 않아서

어느 나뭇가지에나 앉아서

날개를 쉬고


내 먹이

네 먹이

따로따로 자기 곳간을 가지지 않아서

배고프면

어디에서라도

입을 다신다.


백 마리가 함께 살아도

산자락을 갈라서 담쌓지 않고

천 마리가 함께 살아도

하늘을 조각내어 나누지 않는

산새의

산과 같은 온전함

하늘 같은 넉넉함


그래서

산새들은 늘 몸이 가볍다.

숲 속에서도

하늘에서도

바람처럼

늘 몸이 가볍다.


-이무일·아동문학가






소쩍새


소쩍새들이 운다.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뒷산에서도

앞산에서도

소쩍새들이 울고 있다.


소쩍새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일러주시는 그 사이에도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소쩍새들은 목이 닳도록 울어댄다.


아, 아. 마을은

소쩍새 투성이다.


-장만영·시인, 1914-1975



아침 식사


아침 일찍 문을 연

과일가게 주인이

상처가 조금 난

복숭아와 사과 몇 개를

가게 앞 가로수 아래 내놨습니다.


-이게 웬 밥이야?


먹이 못 찾아 배곯던 참새도

절룩거리는 비둘기도

야윈 잿빛 직박구리도

어디선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예쁘지 않아서

사람들이 싹수 않는

상한 과일 몇 알이

오늘의 귀한 양식입니다.


소중한 아침 식탁 앞에

새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지연·아동문학가, 제주도 출생



새들의 도시락


사나운 바람을 견디느라

등 굽은

팥배나무 빨간 열매

콩배나무 까만 열매

새들의 도시락이다


춥고 배고픈 새들 먹으라고

나무가 마련한

맛깔스러운 도시락


새를 기다리는

빨갛고 까만 도시락을

짧은 햇살이 데우고 있다.


-조영수·아동문학가



나무와 새


나무가 무슨 말로

새를 불렀길래


새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을까?


나무가 새에게

어떻게 해 줬길래


새가 저리 기분이 좋아

날개를 파닥이다가

짹재그르 짹재그르 노래 부를까?


-이상문·아동문학가



오월의 산길에서


산길을 오르다가

새알을 보면


보드라운 풀과 나뭇잎으로 엮은

내 품 안에

고이 넣어두고 싶다.


녹색의 물결 굽이치는

오월의 산길에서는

누구나 날개를 활짝 펴는 법


내가 그 고운 아기들의

엄마가 되고 싶다.

졸랑졸랑 뒤따라오는

산새 소리를 듣고 싶다.


-김문기, 극작가이며 시인, 1962-


*이 밖에도 주옥같은 작품들이 링크된 관련 사이트에 빼곡하다. 짬짬이 방문하셔서 감상하시기 바란다.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만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그가 살고 있는 이 숲에서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녀석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담배 피우는 산 엘 찰텐..



아마도 녀석의 선조님들은 대를 이어 이곳 숲 속에 살면서 엘 찰텐 봉우리를 넘나드는 연기를 보며 살았을 테지.. 동태평양에서 불어온 작은 물방울들이 안데스를 너머 엘 찰텐 산군을 넘어가면 빙하를 이루고 빙하는 다시 녹아 호수를 이루며 호수 위에서 다시 증발하며 안개와 구름이 되는 순환이 우리네 삶을 쏙 빼닮았다.



어느 날 여행 중에 만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초행길에 천사가 되어준 이름 모를 새 한 미리.. 녀석은 천사가 틀림없을 거야!!


Ho incontrato un uccello sconosciuto Nella foresta di El Chalten
il 11 Marz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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