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노삐렌,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감동의 순간들
가슴이 메마른 당신에게 하늘이 허락한 최고의 선물..?!!
안데스에 운무가 잔뜩 끼었고 실낱같은 가는 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는 이곳은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북부 파타고니아에 위치한 오르노삐렌(Hornopirén)이라는 곳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절경이 하필이면 태평양 건너 먼 나라 한국에서 온 두 여행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 만물 중 유독 인간에게만 허락된 최고의 선물이 이런 것일까.. 하니와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숙소를 비워두고 바닷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우기와 건기가 자리 바꿈을 할 때 생기는 매우 특별한 경관이 연출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당시에 기록된 사진첩을 열어보면 당시의 감동이 마구 밀려든다.
신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매우 특별한 감정의 현상.. 우리는 기뻐도 눈물 좋아도 눈물 분노의 눈물 슬퍼도 눈물.. 돌이켜 보면 살아가는 동안에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름다운 광경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울컥 감정에 복받치는 사람을 보면서 누군가 곁에서 "이런 데서 찌질 대는가"라고 속으로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감정이 폭발한 경우의 수를 통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까..
눈물의 씨앗 혹은 눈물의 의미는 대중가수들로부터 혹은 시인 등으로부터 수도 없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네 삶 속에 녹아든 감정들이 문학작품이 되거니 노랫말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라고 말했다. 보다 젊었을 때는 그저 지나쳤던 감정들이 철이 들고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보다 더 깊이 성찰하다 보니 감수성이 보다 더 예민해진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의 의미를 담은 정수라 씨가 부른(1985년) 노랫말을 돌아봤다. 노래 제목과 달리 빠른 멜로디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이순의 문턱에 접어든 그녀가 다시금 노랫말을 살펴보면 많이도 달라진 당신의 감수성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정수라
그때 괜히 울적했던 것이
그리움인 줄 알았다면
나는 오로지 그대만을 좋아했을 거야
마음도 못주고 헤어진 그때
열아홉 나이로 내가 무엇을 알아
그저 그렇게 (자자신만 했었지)
그때 나를 너무 좋아했던 그대 진실을 알았다면
우리 서로가 지금까지 사랑했을 거야
마음도 못주고 헤어진 그때
열아홉 나이로 내가 무엇을 알아
좋은 시절은 그냥 잃어버렸지
내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이제 떠나가버린 그 시절에 꿈이 여기 놓여 있었나
내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이제 떠나가버린 그 시절에 꿈을 잊기 위한 것일까
마음도 못주고 헤어진 그때
열아홉 나이로 내가 무엇을 알아
좋은 시절은 그냥 잃어버렸지
내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이제 떠나가버린 그 시절에 꿈이 여기 놓여 있었나
내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이제 떠나가버린 그 시절에 꿈을 잊기 위한 것일까..
서기 2023년 4월 초하루..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파타고니아 여행 기록을 들추어 보며.. 장차 나에게 닥칠 운명을 전혀 모른 채 일주일 동안 이곳 바닷가와 오르노삐렌 삼각주 곳곳을 돌아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처음 보는 절경에 취해있었다고나 할까..
위 노랫말 속에서는 여전히 눈물의 의미에 대해 반문하고 있다. 이제 갓 사춘기에 접어든 감수성이 뛰어난 한 여성 혹은 남성이라 할지라도 겪을 수 있는 눈물의 의미겠지만, 그땐 돌아서면 잊히는 것. 보다 더 많은 숙성과정이 필요한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참고 또 참고 살았던 어느 날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될 것이다.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물 불 안 가리고 싸돌아 다닌 결과 꼬자이께(Coyhaique)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거의 한 달 동안 숙소에서 꼼짝없이 머물며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위험한 일도 있었다.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생긴 일이었는데.. 그 직전에 우리 앞에 놓인 절경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했지만, 한 달 동안 하니는 극진한 간호를 했으며 절망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안간힘을 쓰며 재활을 노렸지만 차도가 없던 차에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렇지만 병원의 진단은 흡족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온 다음 통증이 있는 허리에 뜨거운 찜질이 계속됐다. 숙소에서 물을 뜨겁게 데워 패트병에 담아 수건에 감싼 다음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찜질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숙소에서 몇 발자국도 떼지 못할 정도로 허리의 통증은 극심했다. 나는 짬짬이 극심한 통증을 무릅쓰고 숙소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며 거리를 늘리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숙소로부터 꽤 멀리 위치한 시립공원묘지까지 극심한 통증을 무릅쓰고 도착했다. 묘지 뒤편에는 절벽이 있었다. 여행 중에 그녀는 물론 내게도 절망적인 순간이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아니 기적이 일어났다. 공원묘지에 들어서면서 저만치 앞에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을 바라보고 겯는데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닌가.. 세상에나..!! (소설이 아니라 살화입니다.ㅜ)
그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깡충깡충 제자리걸음으로 뛰어보았다.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오 주여..!!) 울고 싶어도 울 힘조차 없던 내게 하늘이 감격의 눈물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 즉시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니에게 한 걸음으로 달려가 사실을 말하자 얼마나 기뻐하며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는지..
하니가 샛노란 풀꽃을 한웅큼 뜯어 손에 쥐고 있는 풍경은 일부러 연출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이곳 여행지에 심취해 있던 모습 중 하나이다. 그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오늘 오후 당시를 회상해 보니 눈물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무 기뻐도.. 너무 고통스러워도 너무 행복해도 너무 분노하는 등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던 감정을 적당하게 평정하는 안전밸브 같은 게 하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랄까..
우리는 오르노삐렌 삼각주에 밀물이 들어 덩그러니 놓인 작은 보트처럼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늘 우리와 동행하고 있는 또 다른 힘을 느끼고 사는 것이다. 자주 언급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늘 함께 하며 그분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랄까..
비근한 예를 들면 우리 집에 놓인 인덕션 혹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압력밥솥의 메커니즘과 다름없는 게 눈물의 의미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압력밥솥에 안전밸브가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끔찍한 일이 곧 일어날 것이다. 압력밥솥의 압력을 감지하지 못하고 계속 압력이 팽창하면 마침내 폭발하며 큰 사고로 이어질 게 아닌가. 수소폭탄으로 변한 압력밥솥..ㅜ
뒷짐 지고 바닷가를 산책하는 그녀의 손에 풀꽃이 들려있다. 지천에 널린 풀꽃들 중에 그녀가 선택한 몇 송이의 풀꽃들.. 1년을 작정하고 떠난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단 한 번의 문제가 발생한 이후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녀의 감수성은 여전히 오르노삐렌에 머물고 있었다.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작품으로 태어난 오르느삐렌의 바닷가..
그녀의 극진한 정성에 감동한 하늘과 풀꽃 요정들이 힘을 합쳐 감동을 선물하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 게 '눈물의 힘'은 아닐까..
눈물은 하늘이 내려주신 최고의 명약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맛있는 약..!
Lacrime? La medicina più bella del mondo_Hornopirén CILE
Il Primo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