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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0. 2023

시에나의 달콤한 속살 맛보기

-SIENA, 중세의 시간이 멈춘 도시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한 시에나(Siena)는 왜 높은 언덕에 터전을 잡았을까..?!!



   지난 여정 <SIENA, 중세의 시간이 멈춘 도시> 편에서 피렌체서 시에나까지 이어지는 도로 사정 등을 잠시 엿봤다. 피렌체는 우리가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곳이며 소원을 이룬 곳이다. 어느 날 하니와 함께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Stazione di Santa Maria Novella) 앞을 지나친 건 시에나로 떠나기 위해 역전 근처에 위치한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 중이었다. 처음 피렌체와 시에나를 여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경로를 표시해 두었다.

   

자료사진에 표시된 것처럼 퓌렌쩨서부터 시에나로 가는 시간은 대략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시에나는 대략 5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 토스카니 지방의 수도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도시는 뛰어난 역사적 예술적 정치적 유산을 지닌 중세 도시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런 까닭에 1995년 역사적 중심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Nel 1995 il suo centro storico è stato inserito dall'UNESCO nel Patrimonio dell'umanità)



시에나의 달콤한 속살 맛보기

-SIENA, 중세의 시간이 멈춘 도시



피렌체를 다녀가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시에나는 평지에서 아르노 강(Fiume Arno)을 끼고 있는 퓌렌쩨와 달리, 남쪽으로는 아르비아 강(fiumi Arbia)의 계곡 사이에 있는 넓은 언덕 위에 건설된 특이한 도시이다. 


오늘날 유명세를 타고 있는 퓌렌쩨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가 시에나 두오모(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ta Maria Assunta)를 모델 삼아 건축했다고 하므로, 당시 퓌렌쩨 공국의 시샘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교황청의 권력 앞에 아부를 일삼던 토후족들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를 가나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시에나에는 1472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의 본거지이며, 정치 문화적 예술적 중심지라는 역사가 잠시 후에 우리 앞에 등장하며 여행자를 설레게 하고 있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르네상스의 고도 퓌렌쩨서 남긴 기록들 전부를..



    서기 2023년 4월 10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아침이 밝았다. 한밤중부터 추적거리던 봄비가 아침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봄비는 분이기 만점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시간이 멈춘 중세의 도시 시에나를 바라보고 있자니.. 사람들은 어디에 있던지 어떻게 살아가던지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에나 공국을 시샘하던 퓌렌쩨공국의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이곳을 여행하면서부터 서서히 알게 됐다. 시에나의 건축물들은 퓌렌쩨에 비해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건축물의 양식이 많이도 달라 보였다.



시에나는 중세를 휩쓸던 흑사병(패스트균(Yersinia pestis)으로 인구 10만의 사람들 중 2/3에 해당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급기야 1554년 경쟁도시였던 인접한 피렌체에 흡수되고 만다. 이때부터 도시의 발전이 멈추게 됨에 따라 중세의 풍모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페스트균이 시에나 시민들의 목숨을 대거 앗아간 데는 위생문제가 한몫 거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급한 바 시에나는 평지에서 아르노 강(Fiume Arno)을 끼고 있는 퓌렌쩨와 달리, 남쪽으로는 아르비아 강(fiumi Arbia)의 계곡 사이에 있는 넓은 언덕 위에 건설된 특이한 도시이다. 시에나의 운명을 결정지은 건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강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퓌렌쩨와 달리 시에나는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높은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에나를 여행하면서 시에나 공국의 속살과 다름없는 달콤한 풍경을 만나게 됐다. 언덕 꼭대기에 수돗물도 아닌 우물이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허드렛물이나 목욕물은 몰라도 초소한 식수만큼은 넉넉하게 마시고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마실물은 우물(광천수)에서 길러 마실 수 있었겠지만 생활용수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흑사병(페스트) 유행성 감염 질환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재난이 있었지만, 사망자의 수만 본다면 중세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흑사병이 가장 큰 규모의 재앙이었다. 이 병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지구촌을 휩쓸었던 코로나 사태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코로나 사태도 그랬지만 흑사병의 유행은 중국에서부터라고 말한다. 서울 아산병원의 질환백괴에 따르면 이후 이 질환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지역을 건너 흑해, 크림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하다.


크림 반도의 카파는 지중해를 무대로 동방 무역을 하던 제노아 상인들이 오랫동안 경영한 도시였습니다. 1347년 이 성채를 포위 공격 중이던 타타르군은 영내에 흑사병이 발생하자, 환자들의 시체를 일부러 성벽에 내버린 후 철수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일종의 세균전과 같은 발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내로 전파된 흑사병은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무서운 역질을 피해 본국으로 철수한 이탈리아인들이 상륙한 순서에 따라 흑사병이 메시나, 제노아 등지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원래 이 질환은 쥐벼룩에 의해 전파되는 옐시니아 페스티스라는 균의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흑사병이 그토록 맹위를 떨치게 되는 것은 칭기즈칸의 서방 원정과 더불어 이동한 아시아 쥐들이 유럽에 원래 살고 있던 쥐들을 구축하고 번창하였기 때문이라는 생태학적인 가설도 있습니다. 즉 흑사병의 숙주가 되는 새로운 쥐와 쥐벼룩의 수가 갑자기 증가하였기 때문에 흑사병이 창궐할 수 있었다는 학설입니다. 



이 균에 감염되고 약 6일간의 잠복기가 지나면 환자는 흉부 외 통증, 기침, 각혈, 호흡 곤란, 고열을 호소하게 되며, 환자는 대부분 끝내 의식을 잃고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내출혈로 인해 생기는 피부의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어깨 밑, 서혜부, 목과 귀 뒤에 생기는 달걀 크기의 종창을 동반하는 림프절성 페스트입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불가항력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위 기록에 따르면 흑사병의 주된 원인은  쥐벼룩에 의해 전파되는 옐시니아 페스티스라는 균의 감염이었다. 그러나 한 발 더 들어가면 공중위생이 엉망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세균이 번식할 수 있는 최적의 원인을 사람들이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웃의 퓌렌쩨서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쓴 <데카메론_Decameron>은  퓌렌쩨와 인접한 피에솔레에서 1350년경에 쓰기 시작하여 1353년에 집필을 마친 100편의 소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음탕한 이야기들로 유명한 중세의 우화적인 작품으로서 에로틱한 것부터 비극적인 것까지 소재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기지, 재담, 짓궂은 장난, 세속적인 비법 전수 등의 다른 화제도 이 소설집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이다. 보카치오가 피에솔래(FIESOLE)로 이동하여 작품을 쓴 배경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내 중심에서부터 먼 곳이자 퓌렌쩨로 흘러드는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시에나 여행기를 끼적거리면서 퓌렌째와 피에솔레를 소환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때문이다. 중세의 향기를 지닌 두 도시 중에 보다 중세에 가까운 흔적을 간직한 시에나는 큰 희생을 치른 끝에 오늘날에도 당시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랄까. 곧 시에나 공국이 비록 큰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이 도시에는 기적 같은 광천수가 사시사철 철철 흘러넘쳐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시에나 두오모가 바라보이는 골목길을 따라 삐아싸 델 깜뽀(Piazza del Campo)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오래된 중세의 향기가 특별한 도시.. 



골목길에 진입한 직후 만난 특별한 양식의 건축물은 까떼리나 다 시에나(Caterina da Siena_Caterina di Jacopo di Benincasa, (Siena, 25 marzo 1347 – Roma, 29 aprile 1380) )로 불리는 성인을 기념하는 장소로  당신은 이탈리아의 종교, 신학, 철학자, 신비주의자였다고 전한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녀는  1461년 교황 피우스 2세에 의해 성자로 임명되었고,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의 의사로 임명되었다. 또 1866년 교황 비오 9세, 1939년 교황 피우스 12세에 의해 아시시의 성 프란시체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고 하므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니가 사색에 잠겼던 아름다운 건축물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이제 발길을 삐이싸 델 깜뽀로 옮기는 중.. 머지않아 우리 앞에 기적의 현장이 등장할 것이다.



하니가 들어 보인 토스카나 주의 사진첩 속에 여행자를 기분 좋게 하는 시에나의 달콤한 속살이 가득하다.


Una città in cui il Medioevo si è fermato_SIENA IN TOSCANA
Il 10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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