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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17. 2023

이탈리아, 자목련 필 때 그녀 생각

-NOVARA,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어느 봄날


한 송이 꽃을 내놓을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 멀리 보이는 뾰족한 타워는 이탈리아 북부 삐에몬떼 주에 위치한 노봐라(Novara)의 상징인 바실리까 디 산 가우덴찌오(Basilica di San Gaudenzio)이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눈코 뜰세 없이 바쁘게 열심히 일할 때 잠시 쉬는 시간에 숙소 주변에서 만난 풍경이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노봐라 역 근처에도 봄이 오시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차림은 여전히 두툼하다. 가로수들이 새싹을 내놓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식물과 동물들의 삶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세상을 대하는 관점이 턱 없이 다르다. 심지어 여자사람과 남자사람의 사고방식도 천양지차라고나 할까..



숙소로 돌아와 뒤뜰을 바라보니 미루나무에 연두색 새싹이 난리법석이다. 노봐라 시내서 조금만 벗어나면 봄의 색깔이 보다 선명해진다. 겨우내 우중충한 빛깔을 쏟아내는 세상에서 만나는 생기 가득한 연두색 혹은 초록색.. 지난 여정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길냥이> 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직후에는 평소 보다 더 자주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에 심취하곤 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언제 어디를 가나 현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그때 느낀 영감으로 요리로 만드는 한편 데꼬라찌오네(Decorazione, 장식)에 응용하는 것이다. 틀에 박힌 장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악품'을 접시 위에 재현하는 것이랄까.. 



   이날 수로 곁에는 이탈리아 더들 강아지가 보들보들 꽃을 내놓고 볕을 쬐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봐 왔던 산골의 버들강아지 보다 생김새는 조금 달랐지만 봄의 전령사답게 눈이 마주쳤다. 바쁘게 지내는 동안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늘 봐 왔던 풍경이지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탈리아, 자목련 필 때 그녀 생각

-NOVARA,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어느 봄날



   서기 2023년 4월 17일 이른 새벽,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노봐라서 챙겨 온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그곳에는 자목련이 핏빛으로 소답스럽게 꽃을 내놓고 있다. 수로 곁에서 만난 자목련이다. 자목련은 백목련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목련이란 이름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한다. 선명한 자주색 꽃을 내놓는 건 자목련.. 새하얀 꽃을 내놓는 건 백목련이며 종류별로 보면 자주목련, 산목련, 중국목련 그리고 섬나라(?) 목련이 있다. 이들 중 우리나라에서 주로 목격되는 목련은 백목련이며 어쩌다 자목련을 만날 수 있다. 연꽃의 이름에서 유래된 목련은 연꽃이 혼탁한 물에서 아름다운 꽃을 내놓는 데서 종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늘그막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 요리사의 덕목은 맛있는 요리를 통해 매출을 극대화하는 데 있지 않다. 그건 경영자의 몫이거나 오너셰프가 되었을 때 마인드라고나 할까.. 요리사의 덕목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당신의 생각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데 있지 않고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하는 배려심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안 생긴다면 요리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영리를 목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요리사인지 장사꾼인지 모를 경우의 수가 생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히 여겨야 할 식재료들이 어느 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버릴 개 아닌가.. 



   말 못 하는 자목련을 앞에 두고 의인화를 시켜보니 '출산의 고통'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남자들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알 수 없는 출산의 고통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남미 안데스 고원에 살고 있는 원주민 케츄아인들은 지구의 여신이며 대지의 여신이자 농업의 신으로 추앙받는 파챠맘마(Pachamama (anche Pacha Mama o Mama Pacha) 혹은 마마 파챠가 있다. 가톨릭에서 추앙하는 성모 마리아 같은 분이랄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맨 먼저 사랑하는 일부터 출산의 고통을 이겨야 새로운 생명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이다. 뭐.. 다 아시는 사실이지만 어머니가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기르듯 요리의 세계도 이에 못지않다. 아이의 존재감을 어머니만 아시는 것이랄까..



한 송이 꽃을 내놓을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토록 핏빛 꽃망울과 꽃송이를 내놓았을까.. 



   나는 이탈리아 요리사 이전에 포토그래퍼였다. 세상에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소통 방법을 가지고 있다. 커뮤니티를 돌아보면 수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걸 볼 수 있다. 웹서핑을 재밌게 하는 일들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주장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는 한편 싸움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나는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평생을 사진을 취미로 생활하고 있으며, 사진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이때 만난 핏빛 자목련..



사람(동물)들은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식물의 세계..



빈가지에 새싹을 내놓고 꽃봉오리를 통해 꽃을 내놓는 일이 예사로운 일인가..



   겨우내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봄볕이 따사롭기도 전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가 어느 날 꽃을 피우는 것. 이런 일이 출산의 고통과 비교하면 "에이.. 식물이 무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만, 하니는 봄날이 되어 온 산을 물들인 진달래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핏빛 꽃봉오리를 내놓을 때란다.



이틀 전부터 내리던 봄비는 한밤중을 너머 새벽까지 추적거리며 꽤 많은 양의 비를 뿌리고 있다. 창가에 추적거리는 봄비는 참 아름다운 소리를 연출하고 있다. 

노트북 앞에는 빗소리에 걸맞은 하니의 사진이 놓여있다. 자주색 패딩재킷을 입은 그녀는 청계산 청계골에서 진달래가 피기 전에 내놓은 꽃봉오리를 만지며 포즈를 취한 사진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가 유독 핏빛 꽃봉오리를 내놓은 진달래를 좋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당신 조차 왜 핏빛 꽃봉오리를 좋아했는지 표현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면 살수록 어렴풋이 느끼는 여자의 삶 속에 잉태된 출산의 고통이 깃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인간이 겪는 최고의 고통이 출산의 고통이란다. 출산의 고통은 어떻게 진화했나라는 자료에 따르면, 골반의 변화는 약 500만~7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발 걷기를 하면서 산도, 즉 아기가 출산을 위해 나오는 경로의 중간 부분이 비틀어졌다. 그러면서 인간의 골반은 좌우로 넓어지고 앞뒤로는 좁아진 형태, 즉 더욱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는 문이 점점 좁아진 것이다. 



   어머니의 골반이 작거나 태아의 머리가 크면 도무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이 아기를 낳다 숨졌다. 그런데 궁금한 질문 하나. 그렇다면 태아의 머리를 작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진화했다. 아기가 어머니의 몸에서 충분히 성장하기를 기다리면 곤란하다. 조금 일찍 낳는 편이 차라리 안전하다. 하지만 너무 일찍 낳으면 아기에게 좋을 것이 없다. 가장 최적의 시기에 낳아야 한다. 간신히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최후의 순간에 출산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출산은 일종의 난산이다. 




자목련을 앞에 두고 봄비 오시는 날 그녀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바단 자목련뿐만 아니라 세상의 풀꽃들이나 식물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몸짓을 통해 출산의 고통을 안다. 그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가 아닐까.. 취미로 사진을 오래 찍고 세상과 소통하는 사이에 끼어든 이탈리아 요리를 통해 새삼스럽게 이웃을 배려하는 작은 마음가짐이 생겼다. 



수로 곁에서 만난 뭇새 또한 같은 운명을 타고났겠지.. 자목련이 필 때면 불현듯 그녀가 생각난다.


Quando ho visto Magnola Liliflora, ho pensato a lei_NOVARA
Il 17 Aprile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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