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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4. 2023

오이김치, 고춧가루 없이 담가봤더니

-이탈리아서 즐기는 우리나라의 향수


고춧가루가 안 들어가는 김치.. 맛은 어떨까..?


   서기 2023년 5월 13일 오후(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봄비가 찌질 댄다. 봄비 속으로 교회(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분위기 있는 날. 이런 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끼적거리는 일은 참 행복하다. 존재감뿐만 아니라 이웃과 소통하는 즐거움이란 옛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던 디지털 세상의 묘미랄까.. 우리가 인류 최고의 문명을 누릴지라도 아날로그 세상이 음식 맛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지 않을까.. 


이를 테면 김치나 겉절이를 담가도 시뻘겋게 묻어나는 고춧가루가 있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먹기 전부터 눈요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잊고 살던 백김치 혹은 동치미를 떠올렸다. 하니와 함께 맛있게 먹은 단골 맛집 혹은 지인이 살고 있는 춘천에서 맛보았던 동치미는 물론 유소년기 때 어머님이 만들어 주셨던 동치미까지 떠올리며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오이김치를 만들어 본 것이다. 먼저 춘천의 소양호수 곁에 위치한 남촌 막국수 집의 일화를 소개하며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오이김치 맛을 볼 것이다.



세상에 마약 막국수도 있다


한밤중에 깨어나 사진 한 장을 눈앞에 두고 보니 침이 절로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야참이 급 당기는 것이다. 사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강원도 특산품이라 말할 수 있는 막국수의 맛깔난 풍경이다. 사진을 펴 놓고 보면 당시의 느낌들이 주저리주저리 느껴지면서 시장기를 폭발시킨다. 당시에 느꼈던 막국수의 맛이 입안에 돌기 시작하면서 행복한 고문(고민 아님)이 시작되는 것. 



아내와 함께 강원도 쪽으로 산행이나 스케치 여행을 떠나면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들렀던 곳이 우리만의 단골 춘천 남촌 막국수집이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소개해 드리는 막국수집은 춘천시 근화동 당간지주길에 위치해 있다. 요즘은 너무 유명한 맛집으로 알려져 있어서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단번에 찾을 수 있고 리뷰글을 만날 수 있다. 이 맛집은 대를 이어 막국수를 빚어내는 곳이다. 


주인 내외는 5060 혹은 6070 세대.. 우리 세대이다. 우리나라가 어렵게 살던 시절 막국수를 팔아 생계를 이어왔던 것이다. 아이들은 막국수를 판 돈으로 학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놀 곳도 마땅치 않었던 시절..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의 일을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주로 그러했으므로 어깨너머로 배운 막국수 요리 리체타는 이 집안사람들 모두가 훤히 꽤 차고 있다. 손님들이 막국수의 특징을 물어보면 술술술 설명이 곁들여진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나름 요리법을 터득(?)한 비밀 가운데 남촌 막국수가 지향하고 있는 요리법과 무관하지 않다. 



이 맛집은 손님들로부터 입소문이 퍼지기 전부터 춘천시민들이 애용하던 맛집이었는데 대를 이어 영업을 하게 됐다. 이 집의 딸내미와 며느리는 주로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고 주방에서는 아들과 사위 아버지 어머니가 요리를 만들어 낸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오래된 집 벽에 붙어있는 촌스러운 차림표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동치미.. 시원하게 적당히 발효된 국물 맛은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어느덧 두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내놓는 반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찬은 딱 두 가지.. 동치미와 열무김치 그리고 막국수 육수가 노란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이게 전부이다. 이곳에 남촌 막국수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10년 15년.. 도 훨씬 더 된 후의 일이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넌지시 깨닫게 된 것이랄까.. 이렇게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오이김치의 모티브가 시작됐다.




오이김치, 고춧가루 없이 담가봤더니

-이탈리아서 즐기는 우리나라의 향수



이탈리아에는 오이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지금 보고 계신 이 오이는 참외 크기만 하며 통통하고 짝달만 하다. 따라서 같은 무게를 구입해도 수가 적은 편이다. 



녀석을 깨끗이 목욕(?) 시킨 다음 한 녀석 한 녀석 천천히 껍질을 벗겼다. 식감 때문이다.



참고로 알아두시기 바란다. 오이는 상큼하고 섬세한 맛과 향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사랑받는 식재료이다. 오이의 놀라운 효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오이는 신의 채소라 불리기도 한다. 300그램짜리 오이 한 개에는 비타민 C 하루 권장량의 14%가 들어있다. 비타민K는 62%, 마그네슘은 10%, 칼륨은 13%가 포함돼 있다. 반면에 지방은 없고 탄수화물이 11그램, 45칼로리에 불과하다. 칼로리는 적고 영양소가 많은 것. 


뿐만 아니라 항산화제가 풍부하고 우리 몸의 해독을 돕는 작용을 한다. 뿐만 아니다. 뼈를 튼튼하게 하고 혈당 수치를 낮추는 등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왜 신의 채소로 불리는지 단박에 알게 된다. 여성들이 오이를 이용해 맛자지를 즐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춧가루를 생략한 오이김치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확인 들어간다.


이날 구입한 오이는 2kg이었다. 적당히 잘 다듬은 오이를 커다란 볼에 담고 천일염 세 줌(큰 세 숟갈 정도)을 흩뿌렸다. 작은 시계는 연출한 것이다. 소금을 절이는 시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소금을 흩뿌린 직후부터 10분이 경과하는 즉시 흐르는 물에 헹구게 된다.



그동안 주걱으로 저어주다가 한 번씩 까불어 준다. 대략 7번 정조 뒤적이거나 까불어준 후 흐르는 물에 헹군다.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게 오이를 잘 절이는 팁이다.



물에 헹군 오이 하나를 입에 넣어보면 간이 적당히 배었음을 알 수 있다. 상큼한 맛이 입안 가득..ㅜ



이렇게 헹군 오이를 채에 받쳐 물기를 제거하고 양념에 들어간다.



양념을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둔 청양고추 한 줌을 절인 오이에 투입한다.



고춧가루 대신 투입된 매콤하고 알싸한 청양고추를 쏭쏭쏭.. 작게 썰어 올리고..



그다음 찧은 마늘 큰 두 술을 넣고 우리나라서 공수해 온 새우젓과 갈치 속젓을 각각 큰 한 술씩 넣었다.



마지막으로 올리브유 두 큰 술과 설탕(원당) 한 큰 술을 넣었다. 백설탕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뒤적뒤적.. 잘 섞어주면 백 오이김치가 탄생하는 것. 한 알 집어 입에 넣어보니 기막힌 맛이 연출됐다. 단골 맛집에서 먹던 동치미 맛은 물론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동치마 맛과 흡사한 맛이 탄생했다. 맘마미아!!



이날 담근 백 오이김치는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잘반 이상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치는 새빨간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제 맛일 거라는 상상 이상의 착각이 이렇게 허물어졌다.



어쩌면 당분간 그 귀한 고춧가루를 한국에서 공수해 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기화가 닿을 때마다 대한민국의 맛깔난 고춧가루는 여전히 짐가방 속에서 이탈리아 요리사의 부르심을 기다릴 것이다.



오이김치 요리가 끝난 직후 작은 접시에 담은 녀석의 비주얼 속에 빨간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빨간색이 없어 왠지 허전해 보이는 접시 속에서 짙은 향수가 묻어나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 공원을 산책하면서 봄비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비도 비 나름 요리 또한..



다시 이틀 후면 오이를 구입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당분간은 고춧가루를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 하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La nostalgia del nostro Paese, per noi è piacevole qui in Italia
Il 13 Maggi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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