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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2. 2023

1만 년 전 원시인들의 편의점

-Cueva de las Manos, 원시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원시사회에서도 편의점이 존재했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의 나라..?!!



남미 찰레에서 아르헨티나 국경을 너머 손 바닥 그림 동굴(Cueva de las Manos)이 있는 배후 도시 뻬리또 모레노(Perito Moreno)로 가는 길.. 그리고 다시 빼리또 모레노에서 꾸에바 데 라스 마노스로 이어지는 길.. 장차 등장할 숙제(?) 때문에 한 눈 팔지 말고 주변을 잘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미리 일러두기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면서 둘러본 풍경은 낯설다.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이지만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둘로 나뉜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칠레가 주로 산지와 강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아르헨타나는 허허벌판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팜파스(Pampas) 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1만 년 전 원시인들이 살았던 리오 삔투라스는 계곡을 이루고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장차 등장할 풍경 속에서 1만 년 전에 그곳에 원시인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남긴 암각화는 엊그제 그려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모습이었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작품은 주로 엄마와 아이들이 그린 작품이며, 남자들은 사냥에 나섰을 때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저 유추해 낼 뿐이라고 했다. 



꽤 많은 자료사진 중에 한 장을 더 골라 담았다. 누군가 다시 가 봐도 이 모습 그대로이다. 이틀 전에 누군가 그린 듯한 손바닥 그림은 주로 왼손인데 '오른손잡이'가 그렸다. 광물을 이용해 스텐실(Stencil graffiti) 기법으로 손 모양을 찍어낸 그림이다. 손바닥 그림 곁에는 동물의 형상도 포함됐다. 형상으로 보아 안데스 지역에 살았던 라마(Lama) 혹은 바꾸냐(Vicugna) 추측된다. 그리고 사람의 형상도 보인다.



손 모양을 찍은 음각화는 BC 5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양각은 BC 180년경, 그리고 사냥에 관련된 그림은 10,0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추정치는 스탠실의 안료에 사용된 도구의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연대를 추출한 것이다. 



손바닥 그림은 사냥으로 잡아온 동물의 뼈(골수를 뺀)를 이용해 동물 기름과 주변에서 채취한 미네랄(흙)을 적당히 배합해 안료를 만들고 오른손으로 찍어 입으로 훅~불어서 손바닥 그림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주 동굴의 깊이는 24m이고, 입구는 15미터이며, 높이는 대략 10m에 이른다. 동굴은 안쪽으로 들어가며 차차 낮아지고 최종적으로 2m에 달한다.



입국 심사가 끝나고 뻬리또 모레노로 가는 길은 바람이 몸씨도 불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특유의 팜파스 지형이 길고 넓게 펼쳐지면서 장차 우리가 만난 손바닥 그림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암각화가 그려진 목적지까지는 눈에 크게 띄는 비경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원시인들이 살았던 동굴 주변에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흙들이 계곡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사냥에 나섰던 원시인들이 걷거니 뛰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므로, 1시간에 3km를 걷거나 뛰었다면 이들의 행동반경은 30km나 되었을까.. 어떤 때는 사냥을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동굴로 돌아갔을 것이며, 또 어떤 때는 생각보다 많은 동물을 사냥했을 수도 있을 것. 아무튼 손바닥 그림을 보고 난 후 상상력은 점점 더 극대화되었다. 지웠다 또 상상..



지난 여정 <파타고니아, 1만 년 전 손바닥 그림> 편에서 살펴본 글을 다시 한번 더 복습하며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이 살았던 동굴로 이동하고 있다.  현재 위치를 구글지도에서 캡처해 보니 이러하다.


위 지도출처: 구글지도(링크)를 확인해 보시면 놀라운 장소가 나타난다. 지금도 설레는 장소..


우리는 칠레의  헤네랄 까르레라(Il lago Buenos Aires/General Carrera호수를 건너 아르헨티나의 뻬리또 모레노(Perito Moreno)에서 1박을 한 후 현지의 택시를 타고 꾸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_리오 핀투라스 암각화)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거리는 118km이고 1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본문에 등재된 여행 자료사진은 뻬리또 모레노에서 꾸에바 데 라스 마노스로 향하는 자동차 속에서 만난 귀한 풍경들이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지형에 등장한 알록달록한 풍경들.. 고불고불한 비포장 도로가 인상적이다.




1만 년 전 원시인들의 편의점

-Cueva de las Manos, 원시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



우리는 마침내 손바닥 그림 동굴이 있는 계곡에 도착했다. 이 계곡의 지형을 잘 봐 두시기 바란다.



1만 년 전 원시인들이 살았던 동굴 주변의 계곡의 풍경은 이러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더 이동하면 드넓은 팜파스 지형이 눈에 띈다.



원시인들의 삶의 터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때 평원에서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동물들을 만났다. 앞서 잠시 살펴본 동굴벽화에서 만난 동물과 흡사하다. 참고로 비꾸냐 자료사진을 비교해 보니 비꾸냐(Vicuña, 이하 '비꾸냐'로 칭함))가 맞는 듯.. 안데스 주변에서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 중에는 비꾸냐와 라마(llama 혹은 Lama) 그리고 알파카(alpaca)가 있다.



동굴벽화를 참조하면 이들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는 비꾸냐들이 주로 사냥감의 표적이 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원시인들이 이 녀석들을 사냥하는 데는 여간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으면 안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큐에서 본 평원에 사는 동물들은 '달리기 선수'이며 그들의 주 무기나 다름없다. 그리고 녀석들이 평원에 사는 이유는 주변의 맹수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과 다름없다. 나지막한 마른 풀숲으로 몸을 숨기는 적들이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랄까..



그렇다면 고양이처럼 납작 엎드릴 수도 없는 인간의 신체 특성상 녀석들을 사냥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동굴벽화를 수놓은 손바닥 그림과 원시인들의 생활상이 늘 궁금했으며 숙제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일단 손바닥 그림은 차치하고 달라기 선수인 비꾸냐를 어떻게 사냥했을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굴벽화가 있는 계곡으로 기록을 살펴보며 재차 삼차 수차 다시 원시인들의 사냥법을 유추해 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계곡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동굴벽화가 있는 계곡으로 가는 입구의 비포장 도로..



저 너머에 1만 년 전 원시인들이 살았던 주거지가 위치해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속도를 낮추어 서서히 목적지로 이동한다.



한 굽이만 더 돌아가면 원시인들의 주거지가 나타날 것이며 동굴벽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원시인들이 살았던 주거지에서 조금 전 평원에서 만난 비꾸냐 무리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알록달록한 미네랄들이 쌓여있던 언덕까지 거리는 대략 30km에 이른다. 이동할 수단도 없고 사냥에 필요한 무기도 없었을 원시사회.. 그들이 식량원인 비꾸냐를 어떻게 잡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오늘날 페루에서는 야생 비꾸냐를 사냥하는 밀렵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페루의 라 레뿌블리까(La República)의 기사에 따르면 페루에 서식하는 낙타과 야생동물 비꾸냐(Vicuña)가 격리기간 동안 밀렵꾼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200여 종의 야생낙타들이 목이 잘리거나 그들의 서식지인 초원에서 가죽이 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는 아야꾸초(Ayacucho) 주의 코로나19로 인한 긴급한 상황으로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노린 밀렵꾼들에 의해 발생했다.



Vicuña ayacuchana es arrasada por cazadores furtivos durante cuarentena 


Cientos de ejemplares del indómito camélido aparecieron degollados y sin piel sobre las pampas que alguna vez fueron su hogar. Peligra la fiesta del chaccu.

Alrededor de 200 ejemplares de vicuña (Vicugna vicugna) fueron asesinados y despojados de sus pieles a manos de cazadores furtivos que aprovecharon la ausencia de vigilancia por el estado de emergencia en Ayacucho.  

De acuerdo al tesorero de la Asociación Regional de la Vicuña de Ayacucho, Gregorio Cajamarca, el cruel ataque de los cazadores se registró la semana pasada en varios distritos ubicados al sur de la región. Las localidades afectadas fueron Pichccachuri, Sol de los Andes, Cabana Sur, Taqracocha, Totora e Illapatas.



밀렵꾼들이 보호종인 야생 비꾸냐를 사냥한 건 총이었다. 아울러 이들이 밀렵한 비꾸냐는 알파카처럼 고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털을 취하여 옷감을 만드는 것이다. 비꾸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영상을 참조하면 비꾸냐 사냥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녀석들에게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원시인들은 그런 비꾸냐의 단점을 파악했을 거 같다. 그렇다면 원시인들은 어떻게 비꾸냐를 사냥했을까..



우리는 마침내 1만 년 전 원시인들이 살았던 동굴이 위치한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은 정말 아름다운 비경을 지녔지만 원시인들에게는 얼마나 혹독한 삶이 이곳에서 연출되었을까.. 



그런데.. 원시인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며 비꾸냐를 사냥할 수 있는 묘수가 보였다.



현대인인 내가 잔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적절히 이용해야 했을 것. 비꾸냐는 평원 팜파스 지대에서 살아가지만 누군가 녀석들을 쫓으면 일정한 경로를 따라 무리를 지어 도망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비꾸냐의 습성을 파악한 원시인들은 평원 곳곳에 매복을 하여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나타나 비꾸냐 무리를 혼돈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 이때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원시인들이 비꾸냐를 한 곳으로 몰아간 곳은 그들이 살고 있던 계곡이 아니었을까..



저만치 손바닥 그림 동굴벽화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실이 보인다. 절벽 아래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서명을 하고 동굴로 출입을 하게 된다. 물론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비꾸냐들이 계곡의 절벽 쪽으로 쫓기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할까..



주로 평지에서만 풀을 뜯고 달리던 녀석들이 절벽 쪽으로 쫓기게 되면 녀석들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곧 운명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퇴로를 차단하고 소리를 지르는 원시인들을 뒤로하고 녀석들은 내리막길에 접어들 것이며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지며 매복 중인 원시인들의 흉기에 목숨을 빼앗길 게 아닌가.. (영상: 볼리비아서 비꾸냐 사냥하는 사람들)



녀석들의 심성은 너무 착하여 자기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원시인들을 공격하지 못하고 동굴벽화의 주인공으로 남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랄까..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바꾸냐 사냥법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부터 꽤 먼 거리에 위치한 언덕에서 미네랄을 취하여 요리애 사용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며, 불을 사용하여 고기를 익히는 동안 발생한 기름으로 안료를 만들어 스텐실 기법으로 손바닥 그림 등을 그렸다는 것.



이들이 사용한 안료(顔料)가 동굴벽화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서 만난 풍경과 흡사하고, 동굴로부터 대략 멀게는 30km나 떨어진 지역에서 채취한 안료는 사냥한 동물을 불에 구울 때 발생하는 기름에 혼합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시인들은 양념을 채취할 때를 제외하면 그들이 살고 있는 계곡과 동굴 주변이 오늘날 '편의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서기 2023년 5월 11일 저녁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 위치한 손바닥 그림 동굴과 계곡을 둘러보며 별의별 상상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날 현대인에게는 비경으로 보이는 이 계곡이 원시인들의 삶에는 결코 녹녹지 않았을 거 같다. <계속>


Le tracce delle vite lasciate dagli uomini primitivi_Cueva de las Manos
il 11 Maggi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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