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7. 2023

SIENA,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

-SIENA, 중세의 시간이 멈춘 도시


조물주가 창조한 인간의 본성은 어디까지일까..?!!



   서기 2023년 6월 7일 아침나절(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서 하니와 함께 다녀온 중세의 도시 시에나를 열어보고 있다. 시에나는 이탈리아의 여느 도시와 달리 남다른 풍모를 지니고 있다. 한 때 지중해 주변(세계)을 지배했던 민족의 사실상 본거지나 다음 없는 기적의 도시.. 그 현장을 만나보기 전에 로마 탄생의 비밀부터 알아봐야 한다. 



시에나의 역사 속으로


로마 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두 명의 쌍둥이 형제이며, 그중 한 명은 로마시의 설립자이자 첫 번째 왕이었다. 설립일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로 기록되어 있으며, 잔설에 따르면 이들은 아네아스(Enea)의 자손인 레아 실비아(Rea Silvia)와 화성의 자손이었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장군인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Quintus Fabius Maximus_Quinto Fabio Massimo Verrucoso)의 설에 따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아에네아스(Aeneas)의 후손은 로마의 남동쪽에 위치한 알바 롱가(Alba longa)라는 지역에 정착하여 살았다. 누미또레(Numitore)와 아물리우스 (Amulius)라는 형제는 씨족의 상속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동생인 아물리우스는 누미토르의 장자권을 무시하고 무력을 써서 씨족의 우두머리가 된 후, 심지어 형의 딸내미 레아 실비아(Rhea Sivia, 혹은 일리아 Ilia) 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 Roma)의 제사장으로 삼아 결혼을 못하게 함으로써 누미토르의 가계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신전의 제사장은 성직자라는 종교적 위치 덕분에 사회에서는 존경받았지만, 평생 동정과 신전의 불을 지킬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물로스와 레무스는 빨라티노(Palatino) 언덕에서 늑대에게 길러졌다고 전해진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를 시작으로 로마황제들이 여기에서 살기를 좋아했으며 그 궁전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가축을 치는 시종 파우스툴루스(돼지치기)는 갓난아이들을 제거하라는 아물리우스의 명에 따라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Tevere) 강에 띄워 보냈다. 



한편 비탄에 잠긴 실비아는 테베레 강에 투신자살 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을 실은 바구니는 얼마 후 강가로 떠밀려가 멈추어 섰다. 때마침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늑대 어미는 칭얼거리는 아이들에게 젖을 물렸으며, 그리고 딱따구리가 다른 먹을 것을 날아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이 믿기시나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시 로마인들은 여러 전설들 가운데 이 전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전하며 실제로 오늘날 로마의 중심은 빨라티노 언덕이 중심이 되고 있다. 바로 곁에 꼴로세오(Colosseo, 콜로세움)가 지어져 오늘날까지 로마를 기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여정 <시에나, 살아 숨 쉬는 중세의 화석> 편에서 이렇게 쌌다. 시에나 중심에 다다르면 곳곳에 전설의 상징 로물로스와 레무스 그리고 늑대가 눈에 띈다.




SIENA,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

-SIENA, 중세의 시간이 멈춘 도시



히니와 나는 시에나 여행 중에 꽤 오랫동안 머문 곳이 시에나 두오모 대성당(Duomo di Siena)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단박에 시선을 확 당기는 시에나 두오모 대상당은 유신론지이든 무신론자이든 그 누구든 인간이 형상을 한 사람들이라면 말을 잇지 못한다. 말잇못..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눈(시선)을 위한 음악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들인 예술품 앞에서 인증숏을 날리고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을 흘려듣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눈앞에 등장한 작품을 보면서 조물주의 정체성이 인간에게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 만물 중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 행위.. 관련 사이트에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Il Duomo di Siena, la cui mole si innalza nella omonima piazza, costituisce uno degli esempi più insigni di cattedrale romanico-gotica italiana. Secondo la tradizione, quella attuale sostituisce una prima chiesa dedicata a Maria, eretta intorno al sec. IX, sorta nel luogo in cui si trovava un tempio offerto a Minerva.


Sempre da notizie prive di una precisa documentazione, apprendiamo che l’edificio fu consacrato nel 1179, alla presenza del papa senese Alessandro III Bandinelli, dopo l’avvenuta pace col Barbarossa.Nell’aprile 1259 si registra un pagamento di sei soldi a magistro Nichole de Opere Sancte Marie. 



Si tratta probabilmente di una prima menzione di Nicola Pisano, fra gli artisti più innovativi del XIII secolo, cui dobbiamo il celebre pulpito, oggi collocato nel transetto sinistro del Duomo. Il figlio Giovanni, magister dell’Opera negli anni tra il 1284 e il 1297, sarà la figura chiave nella costruzione della parte inferiore della facciata. 



A Giovanni Pisano appartengono anche le sculture di profeti, sibille e filosofi che anticamente decoravano la facciata e ora custodite all’interno del Museo dell’Opera (sostituite, nel corso del XIX e XX secolo, da copie).


Nel tardo 1262 è documentata l’acquisizione di una domus destinata ad ospitare la sede dell’Opera e il laboratorio dei maestri, ove vengono lavorati i marmi usati nella costruzione del Duomo. Durante il 1263 si acquistano piombo per la copertura della cupola e rame per la mela che la coronava. La cupola è quindi compiuta a questa data (la lanterna è un totale rifacimento in stile del 1667).




성모 마리아 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시에나 두오모는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고딕 대성당의 가장 유명한 예술품 중 하나이다. 현재의 교회는 마리아에게 바쳐진 첫 번째 교회로 불린다.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서기 1179년 바르바로사(Operazione Barbarossa)와의 평화 협정 이후 시에나의 교황 알레산드로 3세 반디넬리(Rolando Bandinelli) 앞에서 헌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기 1259년 4월, Nichole de Opere Sancte Marie는 소액의 금원을 지불받았다. 이것은 아마도 13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인 니콜라 피사노(Nicola Pisano)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일 것이다. 



니콜라 피사노는 오늘날 성당의 왼쪽 통로에 위치한 유명한 설교단 건축에 힘을 쏟았다. 서기 1284년에서 1297년 사이의 기간 동안 예수작품의 대가였던 그의 아들 지오바니는 파사드의 하부를 짓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한 지오바니 피사노(Giovanni Pisano)는 고대에는 파사드를 장식하고 지금은 무세오 델 오페라(Museo dell'Opera del Duomo)에 소장되어 있는 예언자, 시빌, 철학자들의 조각품이다. (하략)

(번역: 역자 주)




우리는 인간이 만든 위대한 예술품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여정을 이동하는 동안 다시 만나게 된 아름다운 건축물..



도무지 인간이 만들었다고 쉽게 믿기지 않은 건축물 앞에서 자꾸만 뒷걸음질을 한다.



오늘날 우리 행성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믿고 있는 내 조국 대한민국.. 



우라가 잘하고 있는 예술품이 디지털 세상이라면 이탈리아는 아날로그 세상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현재를 만든 과거의 흔적들.. 신께서는 곧 다가올 미래에 어떤 세상을 준비하고 계실까.. 참 궁금하다.


Fossile medievale che respira_Siena, Toscana in ITALIA
Il 07 Giugno 2023, La Disfida di Barletta in ITA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파타고니아, 천국서 맞이한 첫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