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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2. 2019

아드리아해 일주일간의 기록

-변덕이 개죽끓는 듯한 바다

누가 바다더러 넓은 마음으로 비유했던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서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거의 매일 아침운동을 한다. 운동량은 하루에 두세 시간씩 정도인데 걷기 운동을 통해 체력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곳은 산이 없는 대신 아드리아해를 낀 바다가 있어서 운동을 나서는 순간부터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낀다. 산이 주는 느낌과 또 다른 느낌을 매일 선물 받는 것이랄까. 



2019년 12월 4일 화가 단단히 난 듯한 아드리아해



나는 바다로 가든 산으로 가든 그 어떤 곳으로 이동하든지 늘 카메라를 몸에 지닌다. 오래된 습관이다. 따라서 매일 같거나 비슷한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매일 달라진 풍경을 찾아내는데 익숙해져 있다. 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세상에 널브러진 쓰레기 한 톨을 보는 것보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한 모퉁이에서 꽃을 피운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는 일이다. 



2019년 12월 06일 안개 낀 평온한 바다, 바를레타 내 외항 풍경



2019년 12월 07일 문어 낚시꾼의 망중한 


위 자료사진은 문어를 잡는 낚시꾼의 모습으로 이들이 손에 든 낚싯대가 이채롭다. 낚싯대는 가는 쇠파이프를 길게 이어 끄트머리에는 쇠갈퀴를 달았다. 쇠갈퀴와 함께 문어가 좋아하는(이들 생각에) 닭발이며 오징어를 꽁꽁 묶어두었다. 공부 잘한다는 문어가 그 미끼를 먹으려고 달려들어 입질이 시작되면 당기거나 후려쳐서 문어를 낚는 것이다. 두 장의 사진 중 아래의 낚시꾼은 연세가 82세로 하루를 방파제에서 문어 낚시로 소일하는 분이셨다.


이 같은 습관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날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세상사에서도 여유를 찾게 만들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덩달아 가세하는 게 천지신명의 가호나 다름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늘 곁에서, 혹은 등 뒤에서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는 것이다. 



2019년 12월 08일 너무 평온한 바를레타 내항과 풀꽃들의 향연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거처를 옮긴 후 이곳에 살고 있는 지인들은 그런 나를 마치 경제적 여유가 엄청난 것으로 말하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나의 여유로운 마음 씀씀이가 그들에게는 금수저를 지닌 사람으로 읽혔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게 세상사 겁도 없이 욕심도 없이 지내는 나를 통해 은근히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12월 09일 바를레타 내항과 맑고 투명한 빛깔의 바닷속을 들여다보다



특히 그들의 부러움은 다른 게 아니었다. 이들이 살고 있던 작은 도시 바를레타에서 그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평범한 풍경들이, 어느 날 나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었던 사실에 즈윽이 놀라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당신의 고장을 세상에 퍼 나르는(?) 내가 고마웠던지 집 앞을 지나면서 꼭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금방 사라진다. 



2019년 12월 11일 아드리아해의 몸부림



나의 놀이터(브런치 글쓰기 혹은 페북에 업데이트 하기)에 끼적거리고 있는 작업에 방해가 될까 싶은 염려 때문이었다. 그들의 나에 대한 배려는 주로 이랬다. 그들은 나에 대해 포토그래퍼, 셰프, 저널리스트, 여행자 등 여러 대명사를 붙이지만, 정작 나를 "짱~"이라고 부른다. 나의 성(Chang)을 기억해 내고 내게 볼을 맞추는 것이다. 




대략 이런 풍경으로 5개월이 경과하자, 나는 어느덧 바를레타노(Barlattano_바를레타인)로 변해갔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 동네에서 만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아침운동을 나서는 것이다. 관련 브런치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최근에는 운동 코스를 방파제로 주로 향한다. 어느 날부터 파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드넓은 5대양 6대주의 바다의 파도가 별로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본 파도의 모습은 너무 심심했던 나머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의 카메라에 기록된 바다의 모습, 즉 파도의 모습은 대략 일주일을 주기로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바다는 넓은 마음의 대명사였다. 하해(河海)와 같은 넓디넓은 마음 씀씀이가 깃든 은혜에 대해, 큰 물의 집합체인 강과 바다를 끌어다 쓰는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 비친 바다는 아드리아해는 변덕이 개죽끓는 듯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뭍을 향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은 이들의 몸부림이 너무 좋아진 것이다. 이들은 불통의 세상에 사는 게 아니라 소통의 세상에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정중동의 잔잔한 바다가 잠시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나흘만 지나면 변화를 그리워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변덕이 개죽끓는 듯한 바다가 어느 날 내 가슴에 쏙 파고든 것이다. 오늘 다시 바다로 나선다.


LA ONDA ARRABBIATA, PUGLIA
il 11 Dicembre,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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