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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2. 2020

아내가 귀여워 보였다

-너무 고왔던 2020년 아드리아해 새해 첫 해돋이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징조인가..?!!


사진은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풍경으로 아침운동 중에 만난 바를레타 항구의 방파제 모습이다. 일출을 담기 위해서는 이곳 방파제 위로 올라가야 했다.


새해 첫날 아침은 조금 달랐다. 평소 아침운동 시간을 앞 당겼던 것이다. 새해 첫 해돋이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서 날이 밝자마자 바닷가로 나갔다. 이날 해돋이 시각은 대략 오전 7시 15분경이었으므로 해돋이 시간을 참조한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날씨가 궁금했다. 간밤의 표정대로라면 바닷가의 날씨 또한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무시로 변하는 짓궂은 날씨가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해돋이를 먼발치서 바라보거나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드리아해를 잘 조망할 수 있는 방파제 위에 서면 단 몇 분만에 파도에 떠밀리다 시 피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날 아침은 달랐다. 




걸어서 방파제까지 가면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바람을 느낄 수 없었고 하늘은 맑았다. 밤새 새해맞이 축제가 들뜨있던 시민들의 모습은 거의 자취를 감춘 채 이곳저곳에는 폭죽의 잔해들이 뒹굴고 있었다. 세상이 다 조용해진 것 같았다. 집을 나서는데 저만치서 발그레한 기운이 느껴졌다. 곧 새해 첫 해돋이가 시작될 조짐이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방파제 입구에 도착하니 아드리아해가 붉은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바닷가는 바람이 조금 일렁이고 있었지만 이런 정도는 평소와 별로 다름없는 날씨였다. 수평선 저 멀리 약간의 구름이 끼어있을 뿐 하늘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우리네 삶도 그럴 것..



구름이 낀 날에는 소나기를 동반하거나 부슬부슬 비가 오실 것이다. 또 어떤 때는 장마가 시작되어 걷잡을 수 없이 비바람에 흔들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날씨는 우리네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날씨라면 새해 첫 해돋이를 가슴 깊이 품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랄까.



새해가 되면 해돋이 명소를 찾아 떠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사람들은 새해맞이 폭죽놀이를 끝으로 조용해졌다. 이날 방파제 위에서 한 쌍의 연인이 방파제 위에서 포옹을 하고 기나긴(?) 키스를 하는 장면만 포착되었을 뿐이었다. 




그들 포함 방파제 위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돋이가 곧 시작될 것을 알리는 빛깔이 수평선 위를 점점 더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새해 첫 해돋이가 수평선 너머에서 턱걸이하듯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면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은 태양의 침묵은 꽤 오래 걸리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새해 첫 해돋이가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내 가슴에 안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건만 해가 바뀌는 날이면 소원을 빌게 되는 것이다. 우리네 설날이 그러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양력설을 쇠면서 풍속도도 많이 달라진 것이다. 2020년 새해가 밝으면 아내와 나에게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얼렁뚱땅 만들어진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5년을 훌쩍 넘긴 것. 우리가 피렌체서 사는 동안 아내가 사정상 한국으로 떠난 것도 이유가 있었다. 다시 1년 후.. 그러니까 2020년에 그려야 할 숙제를 안고 홀홀 단신 한국으로 떠난 것이다. 




그동안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신체검사를 정밀하게 하고 처방을 받는 등 한국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일정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이탈리아로 귀국하면 우리네 삶의 후반전 혹은 연장전의 휘슬이 불릴 것이었다. 그때 아드리아해는 우리에게 또 다른 꿈을 선물해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방파제 위에서 바라본 새해 해돋이를 통해 불현듯이 스치는 기억들이 주로 이러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해돋이 모습은 얼마나 고운지 아내의 고운손과 뺨은 물론 미소까지 쏙 빼닮았다. 오래 전의 모습이었다. 또 아내는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는데 용케도 모두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매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표정만으로도 안부가 전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새해가 밝은 다음 안부 전화에서 귀여운 음성이 들려왔다. 닭살이었다.



"자기.. 나 건강 위한 소원 빌었찌..?!"



예전 같았으면 맞장구치며 귀엽게(?) 응수를 했을 텐데.. 그냥 씩 웃으며 한마디로 대답한 것이다.


"당근이쥐..!!"


세상의 단맛 쓴맛 짠맛 씬 맛 매운맛 감칠맛 등 맛이란 맛을 다 보며 늙어가는 데 글쎄.. 마치 소녀처럼 깔깔대며 당신을 위한 기도를 묻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아내가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어떤 의사들이 내놓은 처방은 형편없었다. 



그들이 내놓은 처방전에 따라 이탈리아 귀국을 늦추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아내의 처방전에 내가 끼어든 것이다. 아들 넘이 의사라 해 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래전 한의로 인술을 베푸신 아버지로부터 들은 비방을 아내한테 권유한 것이다. 




즉효였다. 그 직후부터 치도가 나타나기 시작해 한국의 짐보따리를 챙기는 기분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부터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 귀여워 아드리아해를 품은 새해 첫 해돋이를 쏙 뺘 닮은 것이다. 무슨 좋은 징조는 처음부터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뜸을 들이며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랄까.. 새해 첫날 해돋이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운 새해 첫날이었다.



L'ALBA ADRIATICO_IL PRIMO GENNAIO
il Primo Gennai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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