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5. 2020

세상 해돋이 풍경의 끝판왕

-화장실에서 만난 황홀한 해돋이

세상일은 함부로 속단할 게 아니었다..!



뻬리또 모레노 손바닥 그림(Cueva de las Manos) 투어를 마치고


먼저 위 자료사진을 설명해야겠다. 본문에 사용된 사진은 크롬 피씨(CHROME PC)에 최적화되어있음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모바일에서 열어본 이미지는 스펙터클 한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역동적인 장면을 만나기 위해서는 피씨를 사용해 보시기를 권유해 드린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세상이라지만, 오프라인의 느낌을 극대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사진 한 장의 출처는 한국의 여행자들에게 낯선 곳이다. 남미 아르헨티나 산타 크루즈 주에 위치한 페리또 모레노 손바닥 그림은 원시 인류가 남기 흔적으로, 원시인들이 살던 동굴의 벽에 남긴 작품들이다. 그들은 이 계곡에서 살았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작품 등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살찌우는 게 무엇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예술의 한 장르가 박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게 9300년 전 혹은 1억 년이 더 된 과거의 흔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이곳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곳까지 오게 된 배경은 관련 브런치에 연재된 원시인들의 행복에 대한 소고를 끝으로 잠시 휴식시간을 가다리고 있다. 관련 포스트를 쓰는 동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를 느끼며 숙성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기나긴 여행이 피로를 누적시키고 있었던 것이랄까. 우리는 이 투어를 끝으로 바릴로체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곳에 가면 지근거리에 위치한 뿌에르또 몬뜨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어를 끝마치고 숙소로 되돌아온 직후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운 까닭


따라서 아내와 나는 숙소에 남겨두었던 짐 보따리를 챙겨 바릴로체로 북상할 준비에 들어갔던 것이다.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여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배낭을 메고 뻬리도 모레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즉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바릴로체로 가는 버스 편이 아예 없는 것이다. 황당했다. 여행자들이 거의 전무한 작은 도시에서 먼 곳으로 이동할 손님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첫차를 기다릴 요량으로 이때부터 버스 터미널에서 죽치고 앉아 이튿날 아침 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기다림은 익숙한 터여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터미널에 비치된 작은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이런 여유는 단박에 사라졌다. 



문 닫고 댕겨라 제발..!




터미널은 자정 이후로 문을 닫고 쉬는 것이다. 터미널 내에 있는 승객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관리인이 다가와 문을 닫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이때부터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뻬리또 모레노 손바닥 그림이 있는 배후 도시는 바람이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걷기 조차 불편할 정도의 바람이 여행자를 밀거나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곳 날씨 사정이 이러한데 가끔씩 오가던 사람들이 문을 닫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다. 바람이 터미널 내부를 휩쓸다시피 돌아나간 자리는 한기가 들 정도 추웠다. 이 같은 일은 늘 있어왔던 풍경인지 터미널 측에서 출입문에 문을 닫고 다니라는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씨알도 먹히지 않아 볼펜을 끄집어 내 낙서를 한 것이다.


"문 닫고 댕겨라! 제발..!



위 영상은 이 도시에서 만난 장면을 짧게 담았다. 영상에 등장한 두 사람의 모습이 아내와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밤을 지새울 장소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희한하지..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터미널 휴게소 옆에 화장실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지 인적이 사라진 그곳에 바람을 막아주는 마침맞은 장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만난 황홀한 해돋이




아내와 나는 이때부터 시쳇말로 '날밤을 까야하는 신세'로 돌변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다. 추웠다. 우리는 가지고 다니는 침낭을 꺼내 넓게 펼친 다음 이불처럼 덮고 체온을 나누었다. (투덜투덜 이게 무슨 짓 인감..!!) 



우리가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동안 딱 두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이 도시의 경찰로 순찰을 돌다가 우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서 왜 이곳에 있는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설명을 들은 이들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부에나스 노체스(BUENAS NOCHES)!!"



좋은 저녁 되세요 혹은 아름다운 밤 보내세요 등의 의미를 지닌 인사말이 곱게 들리지 않는 건 웬일인가. 화장실에서 지내는 밤에 이런 인사말은 욕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바람을 피할 유일한 장소가 이곳뿐이므로 이들의 인사말이 그럴듯한 것이다. 살다 살다 별 꼬라지 다 보는 것이랄까. 



넋 놓고 바라본 신비한 해돋이


그런데 우리가 깔고 앉은 화장실이 해돋이 명소라는 걸 날이 밝으면서 깨닫게 됐다. 이제나 저제나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린 우리 앞에 파스텔 톤의 신비한 해돋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북극의 오로라 같은 모양의 해돋이가 붉은색을 입고 우리를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랬다..!!



#1


#2


#3


#4


#5


#6


#7


#8


세상일은 함부로 속단할 게 아니었다. 잠시 우리 앞에 다가선 불행이 행운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해돋이 풍경의 끝판왕이었다. 만약 우리가 버스를 타고 바릴로체로 떠났다고 가정하면, 평생에 단 한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황홀한 장면으로부터 저만치 멀어지는 것이다. 그사이 바람은 멎고 하늘은 이곳을 찾아준 여행자 앞에 최고 최상품의 선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SUD AMERICA
Perito Moreno Patagonia ARGENTIN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