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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9. 2020

아내를 쏙 빼닮은 쑥부쟁이

-능내리의 만추

볕 좋은 만추의 어느 날..


서울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위치한 남양주의 능내리는 봄부터 겨울까지 아내와 함께 짬짬이 다닌 곳이다. 스케치 여행을 통해 아내는 능내리의 사계를 담고 있었다. 시시각각 아름다운 풍경을 내놓는 능내리의 사계는 만추의 어느 날 전혀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잎을 거의 다 떨군 나무 아래 쑥부쟁이가 만발해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오시면 쑥부쟁이는 물론 구절초와 감국 등 들국화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꽃을 내놓는 계절.. 그런데 능내리에서 만난 쑥부쟁이는 꽃말처럼 애처롭고 아름다웠다. 쑥부쟁이의 꽃말은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이 꽃말에 얽힌 전설은 누가 만들었는지 그럴듯하다. 쑥부쟁이는 을 캐러 간 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라고 해서 쑥부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슬픈 전설이 담긴 꽃이다. 




전설 속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보랏빛 꽃잎.. 꽃대의 기다란 줄기의 목 같은 부분은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 한다. 아직도 여전히 오래전에 짝사랑한 어느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모습으로 본 것이다. 이 꽃의 다른 이름은 권영초, 왜 쑥쟁이, 가새쑥부쟁이로 불리기도 한다. 




국화과의 다년초인 쑥부쟁이는 ‘산백국’이라고 하며, 이와 비슷한 꽃을 피우는 종류를 모두 들국화라고 부른다. 또 쑥부쟁이와 헷갈리는 꽃이 있는데 바로 구절초이다. 겉모습은 쉽게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구절초는 꽃이 희거나 옅은 분홍색을 띠지만 쑥부쟁이는 대부분 보라색의 꽃을 피운다. 




이런 쑥부쟁이가 가을이 오시면 들과 산은 물론 동네 어귀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이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도배하다시피 해 놓은 대도시에서는 쑥부쟁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떠난 능내리의 스케치 여행에서 만난 쑥부쟁이는 조금 달랐다. 




이파리를 다 떨구어가는 참나무 아래서 잎을 헤집고 나오거나 뒤집어쓴 채 이방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토양이 척박해 보이지도 않는데 녀석들의 키는 '기다림'이라는 꽃말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납작하게 엎드려 보랏빛 꽃잎을 내놓은 이들은 다른 꽃말 '그리움'을 쏙 빼닮았다. 주로 음지에서 자란 녀석들이 양지를 그리워하면서 만추의 땡볕 한 알 조차 소중하게 여긴다고나 할까..




아내는 스케치 여행 혹은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 당신이 좋아하는 수채화가 언제 빛을 발하게 될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또 그려도 당신의 그림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응원을 했다.


"당신은 언제 어느 때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존재야..!!"



누구나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게 있다면 쑥부쟁이의 꽃말 그리움과 기다림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꽃말은 당신을 지키는 비수처럼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을 사노라면 지켜야 할 가치가 하나둘씩 사라지게 마련이다. 처음엔 보물처럼 여겼던 가치가 점점 퇴색해 가면서 종국에는 시쳇말로 '별 볼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면 쑥부쟁이의 전설보다 더 슬픈 것 같다. 



당신이 젊은 날 품었던 그리움 혹은 기다림이 빛을 잃고 유성처럼 사라지게 되는 것이랄까. 판도라의 상자를 쏙 빼닮은 쑥부쟁이의 꽃말이 만추의 능내리에서 저물어 가는 볕을 쬐고 있었다. 



그 곁에서 언제 빛을 볼지 모르는 아내의 드로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빛을 안 보면 어때..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누군가를 또 무엇을 그리워하며 기다림으로 사는 게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쑥부쟁이의 전설은 슬프디 슬픈 일이다. 그런데 쑥부쟁이에 둘러싸여 열심히 드로잉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곱고 아름답다.  



-이탈리아 남부 뿔라아 주 바를레타에서 쓰다.

LA NOSTRA VIAGGIO IN COREA
Aster yomena_Tardi l'autun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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