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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8. 2020

중독성 강한 겨울의 설악산

-세 번만 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곳

나의 소원은 어떻게 하면 이루어질까..?!!



이틀 전 아침운동 중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전에 통화를 끝낸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통화 내용은 맛있었다.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실을 물건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돼지족발이 생각난 것이다. 그래서 케리어의 짐 무게를 감안하여 조금만 가져가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반대를 할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의중을 떠보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NO!!라고 대답했다. 돼지족발을 잘 익은 김치에 싸서 먹으면 기막힌 줄 모르는 사람 없을 것. 또 갈치속젓에 찍어먹으면 세상에 태어난 게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소주 한 잔을 걸치면 신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유가 뭔가..




아내가 피렌체서 한국으로 일시적으로 떠난 이유 속에는 건강상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잘할 수 없는 처방전이 한국에 있었던 것이다. 주치의로부터 건네받은 한약 등이 당신의 몸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굳센 믿음 때문이었다. 



당신은 스스로 허약한 체질이라지만 내가 볼 때는 여간 야물어 빠진 게 아니었다. 우리말에 '골골 팔십'이라는 말이 그저 된 게 아니다. 곁으로 보기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당신 스스로 자기 몸을 잘 다스려 오랜동안 건강하게 잘 산다는 말이다. 아내가 그런 축에 속했다. 매사에 철두철미했다. 그런 당신이 내게 전화를 걸어 돼지족발 운운한 것이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당신의 가장 큰 약점은 당신의 능력을 과신한다는 점이다. 




까이꺼 돼지족발 그게 뭐라고 NO!!라고 했는가 하면 케리어의 무게 때문이었다. 비록 비행기에 실을 무게는 정해져 있지만 가방을 채울 족발의 무게가 당신을 괴롭힐 것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아이고 팔이야, 아이고 어깨야, 아이고 등골이야.." 할 텐데 그걸 제가 하란 말인가.. 그래서 이탈리아에 천지 빼까리로 널린 게 돼지 부산물이며, 돼지족발을 가져오려면 아예 5킬로그램 정도 가져오라고 뻥을 쳤다. 그랬더니 "그럴 줄 알았다"나 뭐라나.. 




서두에 아내와 통화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 아니다. 이렇듯 약골의 아내는 싸돌아 다니는 여행이나 산행에서는 결코 약골이 아니라 강골이며 진골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예컨대 조금 전까지 골골 앓아누웠다 해도 "설악산에 가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무섭게 "응 나 괜찮아졌어.. 산에 가도 될 거 같은데.."라며 태도가 돌변하는 것이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산행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기도


서울에서 한밤중에 출발한 우리는 어둠을 뚫고 경춘가도를 따라 달린 끝에 44번 국도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두어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서둘러야 했다. 머리에 헤드렌턴을 끼고 한계령 휴게소 뒤편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 할지라도 한계령-끝청-중청-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산행코스는 익숙한 길이었다. 




비록 시작은 힘들지망정 대청봉으로 갈 때  가장 수월한 코스이자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끝청에 서면 서북능선은 물론 내설악과 한계령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것. 그곳에 서면 오래전 유년기 때 봐온 어머니와 할머니의 기도가 생각난다. 우리 7남매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던 모습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쉼 없이 기도를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정화수를 떠다 놓고 기도를 올렸고 정화수는 찬장 한 곳에 보관되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린 우리를 데리고 초파일만 되면 가까운 산에 위치한 사찰로 갔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주신 두 분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다. 생각만 해도 보고 싶고 너무 그립다. 두 분의 기도 덕분에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녔을까.. 


아내의 기도는 산행이나 다름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당신 속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를 덜어내며 걷는 것이다. 끝청에 한 걸음 더 다가서자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 발아래로 굽어 보인다. 그 사이 아침햇살이 서북주릉 위로 드리워진 것이다.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 설악산이 고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봉정암의 전설


여자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건 겪어본 사람들만 안다. 어머니라는 위대한 이름은 아무나 되는 것 같지만 누구나 될 수 없는 운명의 길이다. 축복에 비견되는 의무까지 갖추게 되는 것이랄까.. 세상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태어나서 성장할 때까지 또 그 후까지 자식 사랑에 변함이 없다. 




그런 자식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알아들으려면 철이 들어야 겨우 알까 말까 한다. 그때쯤이면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백발로 변해있고 머지않은 장래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어머니들의 소원은 첫째도 내 새끼, 둘째도 내 새끼, 셋째도 내 새끼.. 오직 새끼에 대한 일념뿐이다. 



지금은 기도처가 오만군데나 널려있고 기도 방법도 다양하지만 한 때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세 번만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기도처가 있었다. 그곳은 끝청봉에서 내려다보면 설악산에 빙 둘러싸인 내설악 용아장성에 위치한 봉정암이라는 곳이다. 



끝청 능선에서 바라본 내설악 봉정암의 눈 덮인 모습


설악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무 잘 아는 이곳은 부처님 뇌 사리를 모신 사찰이다. 전설에 따르면 봉정암을 세 번만 다녀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 아내와 나도 이곳을 세 번 이상 다녀왔다. 신심이 뛰어난 불자가 아니어서 그랬던지, 우리의 기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던 기억이 새롭다. 




봉정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 군데 코스를 이용해야 한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계곡길을 따라가는 코스가 있다. 또 우리가 걷고 있는 끝청 능선을 따라 중청까지 이동한 다음 다시 소청 산장을 거쳐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다. 그런가 하면 설악동에서 천불동 계곡을 따라 희운각을 거쳐 소청 산장으로 이동하는 길이 있다. 




그런가 하면 설악동에서 공룡능선을 따라 희운각 코스로 가는 매우 힘든 여정도 있다. 우리가 이용한 코스이다. 보다 수월한 코스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주로 많이 이용한다. 트래킹이 쉬운 코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스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기어야만 하는 깔딱 고개에 직면한다. 




이독제독.. 힘들 때 더 힘든 곳으로


골짜기가 끝나갈 즈음에 등장하는 이 길은 너무 가팔라서 땅바닥을 기다시피 올라야 하는 길이다. 이때쯤 되면 당신들이 가슴에 지니고 간 소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시도된 오체투지 앞에 나타나는 현상은 당신의 몸뚱이뿐이다. 



시쳇말로 '자식이고 나발이고' 내 몸 하나 추스리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설악산 어느 코스를 선택하더라도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어머니 할머니들의 새끼들을 향한 지극한 기도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참 아름다운 기도처인 것이다. 




내가 건강해야 남을 돌볼 수 있다


아내의 기도도 이와 쏙 빼닮았다. 한방에서 자주 쓰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이란 말이 있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인술을 베푸신 아버지께서 자주 사용하셨던 말씀이다. 아내는 이 같은 처방을 산행으로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힘이 들면 더 힘든 곳으로 걸음을 옮겨 힘든 것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산이 당신께 주는 값진 선물인 것이다. 어머니의 삶이 위대함으로 불리는 건 값싼 포장지가 아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의 삶이 주로 이런 모습이랄까.. 행복은 먼 데 있지 않고 가까운 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지만, 어머니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을 일찍 깨닫지 못했다. 내 앞에 놓인 삶의 무게 조차 지탱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알량한 변명이 시간이 꽤나 흐르고 난 뒤에 조금씩 먹히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속에 나만의 오지랖이 작용한 것이다. 백발의 나이에 말이다. 돼지족발.. 그거 안 먹어도 우리 몸을 지켜줄 단백질 등 영양소는 천지 빼까리로 널린 나라가 이탈리아란 나라란 걸 모를 리 없다. 괜히 케리어 무게만 늘리는 일을 통해 당신이 다칠까 염려되어서 NO!!라고 말했던 것이다. 



사랑해야 찾게 된다


희한하지.. 이렇게 일러두었지만 어느 날 내 잎에 돼지족발이 짠~하고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주로 그랬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나 할까.. 그런 일이 생기면 즉각 나의 브런치에 실어 세상에 공표할 것이다.ㅋ 




어쩌면 아내는 내 생각 때문에 돼지족발을 가져오고 싶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걸 너무도 잘 아는 마당에 '한국의 맛'을 공수해 오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거리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 세상 끝까지 하늘 끝까지라도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끝청 능선을 따라 중청봉에 올랐다. 발아래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이동했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발아래에 있는 것이다. 산행의 끄트머리에 늘 이런 맛이 존재하듯 아내의 기도와 세상 어머니의 기도 또한 이런 맛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열심히 발품을 판 결과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곳이다.



대청봉에 올라 기념사진 몇 장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겨울의 설악산은 세상 그 어떤 곳 보다 아름답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의 혼과 선조님들의 기상이 한데 어우러진 곳. 곧 설날이 다가올 텐데 그때 먼 나라에 계신 분들은 운명처럼 고향땅을 기억해 낼 것이다. 



그 기억 속에 우리의 산 설악산이 그려질 것이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찾게 되는 곳. 중독성이 매우 강한 이 산이 어느 날 우리를 불러 세운 건, 우리의 마음속에 잔재한 해묵은 찌꺼기를 다 털어내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발아래로 동해 바다와 속초시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아내여.. 아내 님이시여.. 기왕에 가져오실 거라면 생선회 한 접시만 가져다주오. 모듬으로..!!



LA NOSTRA VIAGGIO IL MIO PAESE
il Monte seorak Gangwon-do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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