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 않는다 뒤뚱거릴 뿐이다
어쩌다 이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었을까..?!
종려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이곳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항구 내항의 모습이다. 가끔씩 날씨가 좋은 저녁나절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위 자료사진) 좌측으로 등대가 보이는데 선박들은 주로 그곳에 정박한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시설물이 내항을 보호하는 방파제이다.
바를레타는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해 있고 방파제 너머로 아드리아해가 펼쳐져 있다. 사진이 촬영된 이날은 바람도 없는 잔잔한 바다이지만 바다는 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거의 매일 저곳 방파제를 한 바퀴 돌아오는 아침운동을 한다.
아침운동을 빼먹는 날도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파도가 넘실 거리는 날에는 운동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드리아해는 변덕이 심하여 어떤 때는 사나운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이 같이 평온하고 착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야생 오리가족 3개월간의 기록
어느 날 운동 코스를 바꾼 후 기다랗게 뻗은 방파제 입구(오른쪽)에 들어서자 눈에 띈 게 오리가족이었다. 오리가족은 전부 네 마리였다. 그중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한 마리가 수컷이자 가장으로 보였다. 나머지 세 마리는 암컷으로 그중에 한 마리는 필시 가장의 아내가 틀림없어 보였다. 이들 가족의 거처는 바닷가 방파제 입구 아래쪽이었다.
그곳은 한 때 용천수를 흐르게 하는 하수관을 묻었던 곳으로, 지금은 하수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시로 변하는 바다의 날씨가 지형을 계속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오리 가족은 그 틈바구니에서 비와 바람은 물론 거친 파도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땡볕을 피해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야생 오리들은 그들 스스로 이곳에서 둥지를 틀고 살았는데, 언제 어떻게 이곳에서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그런 어느 날 목격된 바에 따르면 가끔씩 시민들이 이곳을 지나치면서 빵조각을 던져주는 것이다. 그리고 자구책으로 바닷가에 떠밀려온 알 수 없는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또 이들 곁 바닷가에 있는 해초(파래)를 뜯어먹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길냥이들이 무리 지어 나타나 이들 가족을 위협하곤 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또 어떤 날은 가장이 보이지 않아 누군가로부터 해코지를 당한 것 같아 매우 우울하기도 했다. 방파제를 따라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이들과 이웃이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새해 1월 현재까지 가끔씩 기록된 자료를 선별해 정리해 봤다.
2019년 11월 07일, 오리가 바닷가에도 사네..!
신기한 일이었다. 오리들은 대개 호수나 강 주변에 무리를 지어 서식하는 것을 봐 왔다. 또 물웅덩이 주변에서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이 바닷가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들 오리가족이 살고 있는 곳에 용천수가 쉼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녀석들은 그곳에서 목을 축이는 것이다.
2019년 11월 15일, 오리가족의 비상식량은 식용 파래
야생화된 오리들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어쩌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조각 외 이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이들은 수시로 바닷가로 출장(?)을 다니며 먹이를 찾아 나서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유심히 관찰한 어느 날 바닷가에서 자라는 식용 파래(alga verde commestibile)를 뜯어먹는 모습이 발견됐다. 아침운동을 다니면서 언제인가 파래를 채취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당장 사라졌다. 오리가족의 별식이 파래였던 것이다.
2019년 11월 26일, 오리가족이 비바람을 피하는 방법
지난 늦가을부터 12월은 이들에게 가혹한 날씨가 이어졌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가 하면 내항의 파도 또한 넘실거리면서 매우 사나운 날씨가 이어졌다. 이런 날은 운동을 잠시 쉬지만 오리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들이 살아갈 집을 마련해 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우였다. 이들은 한때 방파제 밑으로 용천수가 르를 수 있도록 하수관을 만들어 놓은 곳을 지붕 삼아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리가족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2019년 12월 11일, 이재민 신세가 된 오리가족
야생은 이런 것일까.. 어느 날 오리가족에게 시련이 닥쳤다. 거센 비바람은 물론 파도가 그들의 터전을 휩쓸고 간 것이다. 내항에서 떠밀려온 모래와 톱밥 찌꺼기가 작은 공간을 막아버린 것이다. 졸지에 이재민이 된 오리가족들은 어디 몸을 숨길만한 장소가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2019년 12월 12일, 날씨가 반짝 개다
하늘은 오리가족 편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던 비바람과 파도는 한풀 꺾이고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방파제 위의 꽃다지가 샛노란 꽃잎을 내놓고 오리가족을 굽어보고 있었다. 오리가족의 망중한이 이어지고 있었다.
2019년 12월 13일, 오리가족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오리가족의 가장이 바닷가에 버려진 방파제 구조물 위에 올라있고 그 곁으로 가족들이 유영을 즐기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이곳을 오가는 동안 관찰된 바에 따르면 이들을 위협하는 길냥이가 출몰하면 바다로 피신을 한다. 어떻게 학습했는지 물을 싫어하는 길냥이를 따돌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리가족을 위협하는 길냥이 혹은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이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때 본모습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들은 결코 뛰지 않았다. 다만 뒤뚱거릴 뿐이다. 오리가 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들은 위험을 느끼면 뜀박질 이상의 프로펠러 질을 한다.
위험이 닥치면 즉시 물 위로 이동하고 그때부터 물갈퀴를 열심히 저어 위험지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결코 땅 위에서 오리발을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아내가 곁에서 이 같은 모습을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흠.. (어떤) 인간보다 더 낫네!!ㅋ"
2019년 12월 21일, 위험천만했던 오리가족
오리가족에게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쳤다. 이날 운동에 나서면서 바닷가를 살폈는데 그곳에서 길냥이 무리들이 사자 무리처럼 바닷가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틀 전 바람이 몹시 불고 파도가 넘실거리며 해변은 쓰레기들이 널린 가운데 예닐곱 마리의 길냥이가 저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평소에 못 보던 모습이다. 나는 녀석들의 동선이 오리가족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눈치채고 오리가족의 안부가 걱정됐다. 따라서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다행이었다. 길냥이들의 습격은 수포로 돌아갔고 오리가족들은 작은 섬(?)으로 피신해 있었다. 최대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이다. 너무 대견했다. 우리네 삶도 이와 별로 다리지 않아서 위기가 닥칠 때 탈출구 내지 대피법 등을 사전에 터득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서기 2020년 1월 15일, 오리가족 삶의 터전에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기 때부터 새해가 밝아오면서 오리가족이 살고 있는 터전은 여러 번 바뀌었다. 비바람과 파도에 실려온 모래가 지형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맨 처음 용천수가 흐르던 곳에 생활쓰레기 일부가 널려있었다. 그런데 새해가 밝아오면서부터 이들이 살아가기 마침맞은 장소로 변한 것이다. 시야가 확 트여서 길냥이들의 위협을 사전에 잘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살고 있는 장소가 너무 깨끗해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야생 오리가족을 못살게 굴던 날씨는 저만치 물러가고 봄볕이 녀석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날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겨울은 봄을 잉태하는 법이지.. 우기가 물러가면서 오리가족의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있었다.
서기 2020년 1월 18일, 오리가족 주변이 완전히 달라졌다.
겨우내 잘 견딘 덕분일까.. 하늘은 오리가족 편이 분명했다. 비바람과 파도를 피해 드나들었던 둥지 앞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남주작 북현무의 운치 있는 풍경을 선물 받았다. 그동안 이들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털빛이 더 고와진 게 도드라져 보이고 오동통 살까지 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이들이 무단점유(?)한 터전이 그들만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누구라도 방파제 입구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들이 이룩해 놓은 터전을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갈매기들도 도시의 비둘기들도 오리가족 근처로 함부로 다가서지 않는다.
나는 방파제 위에서 용천수가 쉼 없이 흐르는 도랑 옆에서 쉼을 얻는 오리가족을 사랑스럽게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나의 진정한 이웃 한 무리가 아드리아해 연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 야생에 적응한 오리가족들이 너무 대견한 것이다.
LA STORIA DELLE ANATRE DALLA BARLETTA
La Spiaggia della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