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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5. 2020

봄비 오시던 날의 아스라한 추억

-내 속에 잠든 자아가 기지개를 켰다

자연의 현상과 너무 닮은 자아의 모습..!!



하늘이 새까맣다. 조금 전 집을 나서기 전까지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갈까 말까.. 이 같은 경우의 수를 여러 번 겪어서 이미 이골이 난 상태지만, 하늘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쉽게 속단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서기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는 새벽부터 봄비가 주룩주룩 보슬보슬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너무도 기다렸던 봄비였지만, 막상 봄비가 오시니 마음속에서 전에 쉽게 찾을 수 없던 반응이 일어났다. 자꾸만.. 자꾸만 빗소리를 통해 과거로 빠져드는 것이다. 비는 그런 것일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단지 봄비 때문에 나도 모르는 현상이 멜랑꼬리타분하게 나의 마음을 진하게 적시는 것이다. 그때 내가 열어본 노래는 성재희 씨와 문주란 씨 등이 부른 보슬비 오는 거리였다. 희한하지.. 그 많고 빼곡한 '비의 노래' 가운데 하필이면 이 노래를 선곡했을까.. 노랫말은 이랬다.




보슬비 오는 거리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이 젖어들어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물뿐인데
아.. 타버린 연기처럼 

자취 없이 떠나버린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보슬비 오는 거리에 

밤마저 잠이 들어
병들은 내 사랑은 

한숨뿐인데
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 견디게 괴로워서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없네



노랫말 하나하나를 되새겨 보았다. 그러자 이미 기억 속에서 한 점도 남김없이 하얗게 지워져야 했을 오래된 추억들이 슬픈 노랫말과 멜로디를 타고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는 것이다. 나는 최소한 50년 전으로 되돌아 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별다른 감흥 없이 그저 애틋한 노래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보슬비를 타고 따라온 선율을 이해하면서 나의 유년기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부모님은 물론 여러 추억들이 고스란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 어린이는 보슬비가 추적추적 오시던 날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 창문은 뽀얗게 안개가 서려있었다. 어린 녀석은 안개가 서릴 때마다 작은 손바닥으로 유리창에 서린 안개를 걷어내며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금방 닦아낸 유리창 너머로 보슬비는 그치지 않았다. 녀석의 짜증은 점점 더 깊어지고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제발.. 빨리 비가 그쳐야 할 텐데.. (그게 니 맘대로 되나..?!!ㅋ) 비가 그쳐야 동무들과 놀 수 있는데.. (글쎄, 그게 니 맘대로 안된다니까!ㅋ)야속한 봄비는 그칠 줄 모른다. 어린 녀석에게 비는 정말 나쁜 넘이었다. 그런 어느 날 녀석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수 같은 비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친구들과 비를 흠뻑 맞고 돌아다녀도 비가 싫지 않은 것이다. 가끔씩 한기를 느끼며 몸을 후덜덜 떨어도 비가 좋은 것이다. 어린 녀석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비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비는 그저 자연의 한 현상이 아니었다. 비란 대기 중의 수증기가 뒤 엉겨 작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현상이다. 한 개의 빗방울이 되기 위해서는 10만 개의 구름방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구름이 모여 있다고 해서 곧장 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려면 몇 가지 원인이 필요했다. 



찬 기운과 더운 공기가 교차하는 전선(前線)이 형성되어야 하고, 여름철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아래와 위로 뒤바뀌고 섞이면서, 또 지형적으로 높은 산이 있거나 태풍이 불 때 비가 온다고 한다. 비를 이렇게 이해하면 얼마나 삭막할까..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 비는 다시 눈물로 변했다. 배철수 씨는 비를.. 빗물을 사랑의 눈물로 비유했다. 믿거나 말거나.. 친구들 혹은 아내와 함께 노래방에 가면 나를 통해 이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백성(?)들이 숱했다. 이랬지..!



빗물

-배철수


돌아선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저리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꿈속이라도 

따스한 풀가에서 

쉬어가소서 

그대 몰래 소리 없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차가운 

눈물 


말없이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애타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떠날지라도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오리다 

그대 몰래 소리 없이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차가운 

눈물





나는 아침운동을 갈까 말까 망설이던 생각을 즉각 마음을 고쳐먹는 한편 우산을 들고 바를레타 방파제로 향했다. 빗방울이 여전히 한 둘씩 떨어지는 가운데 바를레타는 먹구름에 휩싸여있었다. 금방이라도 장대 같은 비를 퍼부을 것 같은 날씨가 등 뒤로 펼쳐지고 있어서 발을 옮길 때마다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리고 방파제에 들어서 마자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전화기 속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라고 했다. 저 멀리 아드리아해 수평선 너머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완주를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우산이 오그라들 정도로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쳤다. 머리와 카메라만 겨우 가린 채 철수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방파제 입구에서 만난 귀여운 풀꽃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 것이다.



풀꽃들: 와.. 카메라 할아버지다아~(왁자지껄 시끌벅적.. 그러자 한 녀석이 몸을 비틀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나무란다.) 야~아 할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아저씨라 불러.. 알았찌!

나: 안녕, 잘 있었니 얘들아! 괜찮아, 친구라 부르면 더 좋고..^^

풀꽃들: (동시에)네~^__^

나: 너무 이쁘구나. 그 사이 노란 꽃잎을 내놓았네..

풀꽃들: 저도요! 저도요..(왁자지껄 시끌벅적) 그런데 아저씨 비 오시는 날 왜 나오셨어요?

나: 그야 물론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었지..^^

풀꽃들: 와.. 신난다~(왁자지껄 시끌벅적) ^__^



그냥 봄비가 부슬부슬 보슬보슬 오신 것뿐인데 내 속의 자아는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빗방울들은 현관문에 서린 안개를 지우듯 나의 자아를 일깨우며 잃어버린 세월 저 너머에 있던 추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하얗게 지워졌어야 마땅할 오래된 기억들.. 빗방울들이 다시 마른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보슬비 오는 거리에 추억이 젖어들어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물뿐인데 아.. 타버린 연기처럼 자취 없이 떠나버린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 보슬비 오는 거리에 밤마저 잠이 들어 병들은 내 사랑은 한숨뿐인데 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 견디게 괴로워서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없네


글쎄, 이런 맘 누가 아누..!



PRIMAVERA PIOGGIA DI PRIMAVERA
il 14 Febbraio 2020, Citta' di Barletta
Foto di yookeun Chang_Gep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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