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4. 2020

죽기 전에 생각날 꿈같은 여행지

#2 하얀 비단결에 싸인 아침 

어느 날 작별의 시간을 맞이하면 나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요즘 지구별은 우울하다. 마음 둘 데 없고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일들이 연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다. 사정은 달랐다 그러나 우리 내외가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떠났을 당시만 해도,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먼 나라.. 꿈나라로 떠민 것이다. 그때 우리 앞에 나타난 풍경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치 신비로운 세상이었다. 뽀얀 비단결에 쌓인 아침 풍경이 우리를 말끔히 정화시키며 황홀경에 빠뜨린 것이다.


지난 여정 하얀 비단결에 싸인 아침 편에 이렇게 썼다. 요즘 지구별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의 뿔리아 주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목격됐다. 한밤중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거리를 메꾸다시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인적이 뚝 끊긴 것이다. 



사람들이 붐비던 지근거리의 카페는 문을 걸었다. 공원도 문을 걸었다. 사람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주제 하던 성당도 가끔씩 깨진 종소리를 울리는 것을 제외하면,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가끔씩 엠블란스는 경적을 울리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우리는 그때마다 "또 한 사람이 죽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과 두 주 전만 해도 엠블란스의 경적은 치료를 목적으로 누군가 호출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꼬로나비루스 때문이었다. 경광등을 반짝이며 쏜살같이 딜려가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떤 생명은 죽음 앞에서 촌각을 다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우울함 그 자체인 것이다. 




거의 매일 매시각 컴 앞에서 접하는 브런치에서 조차 밝고 환하며 명랑하고 쾌활한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지구별은 우울모드는 고사하고 초상집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수 백 명 이상이 유명을 달리하는 데 거기서 깔깔대면 제정신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은 위로받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을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삶과 죽음.. 프로이트는 “모든 생명의 목적은 죽음”이라 말했다 죽음이야 말로 생명의 필연적 조건이자 삶을 보다 더 고귀하게 만들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죽음이 당신을.. 나를.. 우리를 찾아온다면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포스트를 끼적거린다.





아내와 나는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 리오 네그로 강의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강가 언덕 위에서 바라본 오르노삐렌 삼각주 위로 뽀얀 안개가 커튼을 드리우고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뿌에르또 몬뜨에서 이곳 북부 빠따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로 이동한 직후부터 매일 아침 리오 네그로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누군가 우리를 불러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아침산책을 나가는 것이다.



우기가 끝나가는 리오 네그로 강가에는 마르지 않은 이슬들이 뽀얀 안갯속에서 삐져나온 빛을 받아 영롱한 모습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샛노란 풀꽃들과 강변의 잡초들은 그들의 친구들로 리오 네그로 강을 꿈같은 풍경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강 이름을 리오 네그로(Rio Negro_검은 강, 검은빛을 띤 강)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수심이 깊지 않은 리오 네그로 강바닥에는 건강한 수초들이 넘실대고 있는데 강바닥은 모두 굵은 자갈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자갈들은 지근거리에 위치한 오르노삐렌 화산이 토해낸 것들로 삼각주 바닥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강바닥에 깔린 자갈들이 검은색이었으므로 강가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검은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자갈을 천천히 천천히 매우 느리게 안단테로 애무하듯 흐르는 곳. 그 간지럼을 훔쳐보던 풀꽃들은 새색시처럼 곱디곱다. 나는 이곳을 세상에 숨겨진 천국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느 날 시간 저편으로 긴 여행을 떠날 때..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천국이 어느 날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천국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삶의 질 또한 달라질 것이다. 천년을 살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사는 것도 장차 다가올 피치 못할 운명 때문이 아닌가..



만약.. 내 앞에 삶의 모습을 전혀 다르게 바꿔줄 장면이 드리워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리오 네그로 강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로스 라고스 주의 오르노삐렌의 뽀얀 비단결에 싸인 아침을 떠올릴 것이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되, 나의 가난한 자아는 아내와 함께 거닐었던 그 강가에서 행복해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내게 다가온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우리가 거닐었던 그곳은 미리 맛 본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죽기 전에 생각날 꿈같은 여행지는 계속된다. 


IL NOSTRO VIAGGIO IN SUD AMERICA
Hornopiren Los Lagos Region CILE
il 09 Marzo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봄이 오시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