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요리사가 겪는 말 못 하는 고충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해 봤을까..?
해마다 봄이 오시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그곳은 내 생애 마지막 혼을 불어넣었던 곳이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곳. 나는 그곳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됐다. 처음엔 호기심 반 노후대책 반 등으로 발을 들여놓은 곳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삶에 대한 생각은 물론 행동 조차 전혀 달라지게 됐다. 이탈리아 요리 세계는 단지 음식을 맛깔나게 빚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심성을 보다 더 곱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 세계는 겉보기와 달리 수도자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요구하고 있었다. 먼저 정직해야 했다. 음식을 타인에게 접대하는 요리사의 첫째 덕목은 정직함이었다. 당신을 찾아온 손님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혹은 식재료가 인체에 유익해야 함은 물론 전혀 해롭지 않아야 하는 것.
아울러 요리사는 항상 청결해야 한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기도처와 별로 다르지 않다. 주변은 항상 정리 정돈되어있어야 하고 티끌 하나 날리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 또 요리사는 박애정신으로 충만해야 한다. 당신이 만든 음식 혹은 요리가 인간의 몸과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
만약 요리사가 이러한 최소한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단지 음식을 만들어 팔아 연명하는 장사꾼에 비교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요리사를 총괄하는 셰프가 된다는 것은 이런 과정 등을 무수히 겪거나 이겨낸 인격체를 말하므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자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 것. 따라서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되면 맨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박애정신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아울러 당신의 행위를 통하여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면, 스스로 쌓은 요리 세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될 것. 비록 길지 않은 수련 기간이었지만 어느 봄날 디플로마를 거머쥔 직후 내가 몸 담았던 요리학교 교정을 천천히 돌아봤다.
이곳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Regione Emilia-Romagna) 주의 파르마(la citta' della Parma)에 위치한 렛지아 디 꼴로르노(La Reggia di Colorno)의 정원 모습이다. 한눈에 알 수 있듯 정원은 대칭을 이루고 있는 흠잡을 수 없이 빼어난 모습이고, 뒤쪽으로 빠르꼬 두깔레(Parco Ducale (Parma))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이곳은 사진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장소로, 이탈리아 요리 혹은 요리사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꿈을 꾸게 만드는 요리학교가 위치한 곳.
렛지아 디 꼴로르노 궁전 거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이 학교의 이름은 이탈리아 요리학교 알마(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라는 곳이다. 글쓴이가 잠시 몸담았던 곳. 오늘은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요리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대해야 하는 것에 앞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 과정을 경험으로 짧게 들려주고 싶다. 가끔 둘러보는 이탈리아 요리 혹은 요리사에 대한 정보가 환상 이상으로 부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글쓴이의 브런치를 통해 본 내용을 접했다면 꼭 참고해 주시면 좋겠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입학 혹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준비과정이 있다. 이 과정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당신이 꿈꾼 이탈리아 요리사 혹은 요리 세계는 단박에 무너지게 될 것. 특정 국가의 문화와 역사 등을 배우려면 언어가 필수적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백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문화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많은 차이가 난다. 예건데 돌치(Dolci) 종류만 해도 이탈리아 전역에 수천 가지가 넘는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이탈리아 요리를 떠 올릴 때 겨우 스파게티나 피자밖에 모른다면 굳이 이탈리아 요리를 배울 필요는 없을 것. 요리 공부를 통해 오만가지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 능력은 현지인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글쓴이의 충고이자 요리 유학에 실패한 사례들의 결과물이다.
어쩌다 웹서핑을 하다 보면 어학원이나 요리학원 등지에서 이탈리아 요리 학교에 입학시켜 주겠다며 꼬드기는 광고를 보게 된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요리사의 현란한 몸놀림을 본 직후 "나도 이탈리아 요리사가 되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분들은 십중팔구 이 같은 광고에 현혹될 것.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다.
위와 같은 광고를 하는 곳에서 가르치는 이탈리아어는 요리사에게 필요한 가장 초보적인 동사나 관련 식재료 용어가 전부나 다름없다. 또 단기간에 습득한 기초적인 언어체계는 현장에 도착하는 즉시 새까맣게 멀어지거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오만가지(?) 요리를 만들어 내는 주방에서의 소통법은 일상생활과 매우 다르다. 이를테면 명령법이 주로 쓰이고 대화는 매우 간결하고 빠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방에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준비? 시작! 이것저것 혹은 이렇게 저렇게 등으로 빠르게 소통하게 되는 것. 이런 경우의 수는 손님이 많은 리스또란떼일수록 정도가 더 심하여 초보 요리사들은 당신이 설 자리 조차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언어 준비를 하지 못했거나 소홀한 당신에게 주어지는 임무는 어떤 게 적합할까..?
놀라지 마시라. 언어 소통이 안 되는 초보 요리사에게 주어지는 대우는 특별하다 못해 눈물겹다는 거 잘 아셔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건 매우 단순한 노동이며 어깨너머로도 요리를 배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 만약 어느 날 당신이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떠나 마늘이나 양파나 까고 있던지, 혹은 파나 다듬고 과일이나 상추나 씻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경우의 수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요리 유학에 나섰던 동료들 혹은 선배들로부터 수집된 사례라는 거 명심하자. 그렇게 수개월 이상 현장 실습을 하고 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얼굴이나 몸통이 반쪽으로 변하게 되는 것. 원치 않았던 다이어트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주방 일이 힘들었다기보다 소통을 하지 못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든 결과물이었던 것.
뿐만 아니다. 함께 일하는 이탈리아 요리사들의 경력을 보면 기가 한풀 꺾이게 된다. 동료들의 동년배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경력은 저만치 앞서있는 것. 우리와 학년제가 다른 이탈리아에서는 일찌감치 요리를 전문으로 배워 요리사의 길을 걸으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요리사들을 매년 1천 명 이상씩 배출하는 요리학교가 있는 나라에서 요리가 빛을 발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요리 강국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하늘의 도우심이 있었던지, 이 과정을 극복하고 디플로마를 거머쥐니 어느 날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칭찬을 듣는다고 해서 어깨가 절로 으쓱해질 나이는 물론 사정도 아니었다. 함께 공부한 동료들의 나이는 대략 아들 딸과 비슷한 나이였다. 나는 이런 과정 등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통해서 음식 혹은 요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요리 수업을 통해서 자아를 뒤돌아 보게 되는 것. 잘 정리 정돈된 어느 궁전의 정원에 발을 디디면 음식뿐만 아니라 자아를 잘 다듬는 일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만든다. 이탈리아 요리학교가 넌지시 내게 일러준 가르침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남은 보다 더 귀해 보이기 시작한다. 요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거..!
ALMA_이탈리아 요리 학교 LA REGGIA DEL COLORNO_ALMA, CUCINA ITALIANA
La Reggia di Colorno PARMA_ITALIA
ALMA la sc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