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따 아레나스 마젤란 해협의 망중한
바쁜 일상이 다 지나고 나면 나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가끔씩 가슴이 답답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탁 트인 공간을 바라보면 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 든다. 속이 시원해진다. 좁은 공간에서 느끼던 억눌림이 일시적으로 해방된 것.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유년기를 되돌아보니 그랬다. 어린아이가 무슨 일 때문에 속이 답답한 일이 생기겠는가..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을 뒤돌아 보면 주말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것 같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백양산(白楊山,642m)을 오르는 것. 다시금 생각해 봐도 어린이에게 매우 무리한 것 같은 등반이었지만, 힘들여 오른 산꼭대기에 서면 세상이 다 내 품 안에 안긴 듯했다.
그곳에 서면 발아래로 저 멀리 서면(西面) 너머로 부산항이 불쑥 솟아올라 보이고, 뒤로는 낙동강 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곳. 김해평야가 길고 널따랗게 뻗어있었다. 그땐 그리스 희랍 신화에 심취(?)해 있었던 터라 나는 세상 어디든지 다 가 보고 싶었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진 부산항 너머로 하루라도 빨리 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오면 형들의 백지도에 새겨진 내 위치를 보고 또 확인해 보는 것이다.
유년기의 버릇 내지 습관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아메리카 대륙의 남단 저 끄트머리 뿐따 아레나스(Punta arenas)에서 아내와 나는 인류문화사에 위대한 선을 그은 한 사람을 기억해 내며 무시로 그가 남긴 족적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그의 족적에 따라 이름 붙인 마젤란 해협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마젤란은 이 해협을 발견하기 전까지 천신만고의 노력 이상의 죽을힘을 다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활짝 피울 무렵 이들은 목숨을 걸고 세계일주 항해에 나섰던 것. 1492년, 콜럼버스가 얼렁뚱땅 남긴 신대륙의 기록은 마젤란 함대에 큰 도전을 일으켰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은 그저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신대륙이란 북극해로부터 남극해까지 이어진 방대하고 드 넓은 땅이었던 것.
마젤란 함대가 위대했던 것은 아메리카 대륙을 재발견한 것 외에도 이들의 탈출구가 되어준 마젤란 해협이 존재했던 것이다. 만약(과거는 '만약'이란 게 없지..) 이들이 이 해협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본국으로 향한 귀환 일자는 보다 더 늦추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며, 그 보다 더 큰 어려운 일들이 그들 앞에 놓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젤란 함대에 불어닥친 가장 큰 위기와 함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준 게 마젤란 해협이었다. 훗날 그들은 이 해협을 지나면서 해협 근처를 항해하며 봤던 불빛을 일러 '불의 땅(Terra del Fuoco)'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이 불의 땅이며, 그곳에서 나의 유년기와 인간의 운명 등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있는 것.
주지하다시피 마젤란 함대는 자신을 포함해 265명을 태운 다섯 척의 함대를 이끌고 지구별 최초로 세계일주라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1520년 11월 28일, 마젤란 함대는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해협을 발견하게 됐다. 훗날 사람들은 그 해협을 마젤란 해협(Stretto di Magellano)이라 불렀던 것. 오늘날 우리는 그의 업적 등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최소한 500년 전만 해도 세계일주란 목숨을 걸어야 할 판국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휴대폰을 소지하고 비행기표 한 장이면 세계일주는 끝..이랄까.
마젤란의 도전은 어느 해협을 발견한 후 귀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신대륙에 대해 콜럼버스가 겨우 간만 봤다면 마젤란 함대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지구별 한 바퀴를 도는데 반드시 필요한 항로가 그들 앞에 놓인 것. 그들 앞에는 드 넓은 태평양이라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마젤란 혹은 마젤란 함대가 이런 과정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은 항구 곁 어느 선술집에서 이렇게 말했을 테지 아마도..
"우리.. 이런 거 하지 말자.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아니나 다를까. 역사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드 넓게 펼쳐진 망망대해 속에서 100일 이상의 항해로 초주검이 된 그들 앞에 한 섬이 목격됐다. 마젤란 함대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늘날 서태평양의 괌(Guam) 섬에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마젤란 함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위기 봉착하게 된다. 됐었다. 1521년 3월 6일, 괌 섬에 발을 디뎠지만 마젤란은 그해 4월 27일 필리핀 원주민과 싸우던 중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함대는 패잔병 18명이 초라한 몰골로 스페인으로 귀환하게 되는 것. 이들의 세계일주에 소요된 날 수는 1,080일이었으며 마젤란이 죽던 그해 9월 5일까지 247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됐다. 그나마 이들이 천신만고 끝에 귀환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든 항로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 이른바 마젤란 해협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떤 꿈이던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꿈의 반대편에는 마젤란 함대가 겪은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늘 따라붙게 될 것.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가르쳐 주는 이가 없다는 것. 그것을 극복하는 건 전적으로 당신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아무런 도전이 없다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당신 스스로 내 스스로 우리 스스로 쓴다.
Punta Arenas Patagonia
Stretto di Magellano CIL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